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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앤글 Nov 02. 2023

전집육아 성공기 (1)

전집을 들이기로 결정하다.

띠로리~

1호가 유치원에서 오자마자 능숙하게 리모컨으로 TV를 켠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저녁을 먹기 전부터 잠들기 전까지 TV 곁을 떠나지 못한다.

'고맙다 TV야~' 게으른 엄마는 TV에 아이들을 맡긴 채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중이다.


"엄마~ 나도 학습지 하고 싶어요!"

초등학교 입학하고부터 12년 동안 지겹도록 공부할 테니 유치원 다닐 때는 실컷 놀라고 나름 교육철학 있는 엄마처럼 아이를 방치하고 있는 중이었다. 유치원에서 온 1호가 뜬금없이 학습지가 하고 싶다고 한 이유는 친구들이 재능피자도 하고 구몬도 한다고 자랑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 그거 공부야~ 안 해도 되는데, 초등학교 입학하면 공부 지겹도록 할 거야. 지금은 놀아도 돼"

학습지 알아보는 것도 귀찮아서 나름 그럴듯한 핑계를 대 보았지만 아이가 슈렉 고양이 눈을 하고서는 엄마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뭐, 아들이 원한다면 알아볼 수는 있지. 맘카페에 동내 학습지 정보를 얻어 몇 군데 방문 상담을 받았다. 딱히 맘에 드는 곳이 없던 찰나 마트 앞에서 홍보하는 학습지 부스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 아이가 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요?" 자발적 상담신청이었다. 웬 떡이냐 했을 것이다.


학습지부터 시작해 연계독서 할 수 있는 전집까지 설명이 일사천리다. 센터로 가서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라 권하길래 할 일도 별로 없어 발걸음을 옮겼다.

"어서 오세요 어머니~" 말끔한 정장 차림의 센터장이라는 사람이 나를 한껏 반기고 있다. 아마도 전집영업을 할 모양이다. 어디 이런 거 한두 번 당해보나, 난 그렇게 호락호락한 여자가 아니란 말이다.

우리 집도 1호 100일 때 친정오빠가 선물한 블루래빗 전집과, 시누이가 물려준 빛바랜 전집으로 어느 정도 책의 구색은 갖추고 있었다. 단지 활용을 안 하고 있을 뿐이지. 책은 괜찮습니다요.


"어머니, 아이를 방치하고 계신 겁니다!"

정곡을 찔렸다. 쇼호스트처럼 화려한 언변으로 나를 홀리던 센터장의 마지막 한 마디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무기력에 빠져 책 한 권 제대로 읽어주지 않던 내 마음에 제대로 비수가 꽂혔다.

고고하게 세우고 있던 자존심은 온대 간데없고 당장이라도 거기 있는 전집세트를 다 결재할 판이었다. 일단 며칠의 생각할 시간을 청한 후 정신을 차리고 집에 와서 전집 검색에 들어갔다. 각 출판사 별로 비교해 봐도 오늘 상담받은 곳이 나쁘지 않았다. 꽤 괜찮은 출판사였다.


문제는 블로그나 카페에서 <전집육아실패>에 관한 글이 무수히 많다는 것이었다. 하나하나 읽어봐도 전집으로 책 육아에 성공했다는 글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냥 방치가 된다느니, 돈만 버린다느니 단점이 더 많이 보인다. 그러나 나는 우리 집에 책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우리 집을 도서관으로 변신시키고 싶었다. 어릴 때 집에 책이 가득했으면 하던 나의 소원을 아이들에게 투영해 이루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래, 결심했어! 우리 집에 전집을 가득 채울 거야!"





"여보~ 우리 애들 읽어야 할 책들이 있어서, 전집을 좀 사야 할 거 같아~" 콧평수를 한껏 넓혀 온 우주의 기를 끌어모아 평상시 없던 애교를 부려보았다.

"전집을 꼭 사야 해?" 예상했던 바다. 남편의 대답은 언제나 1 더하기 1은 2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다.
남편 카드로 긁어야 하는 장기전이다. 신성한 책 마저 싸움의 대상으로 전락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작전이 필요했다.


"그래 그럼. 그런데 우리 1호 곧 초등학교 입학하잖아~ 이번주 토요일에 부모교육 있다니까 그것 좀 같이 듣고 오자"

일보 후퇴다. 없던 부모교육도 만들어야 했다. 토요일에 센터로 남편을 데려갈 테니 나한테 했던 것처럼 남편을 꼬셔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했다. 내가 설득하면서 싸우는 것보다 센터장에게 남편을 넘기는 편이 훨씬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난 이미 그들과 한패. 시키지도 않은 자발적 영업사원이 되었다.


남편은 나처럼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꽤나 심각하고 진지하게 설명을 들었고 순순히 센터장의 전집영업에 넘어가고야 말았다. "우리가 꼭 사야 하는 전집을 골라 주세요" 야호! 작전 대성공이다.


당장 시누이에게 물려받은 출간 한 지 10년도 더 지난 색 바랜 전집부터 내다 버렸다. 영롱하고 이쁜 책들이 들어갈 자리를 만들기 위해 책장의 먼지를 걷어내고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았다. 우리 집 도서관을 만드는 일은 나만 신나고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20질의 꽤 많은 전집을 결재했기에 센터에서 책장도 보내 준다고 한다. 장장 36개월이라는 자발적 할부노예의 시작이다.

나는 자신이 있었다. 모두가 전집의 단점만 말해도 내가 성공의 표본이 되고 싶었다. 내가 근래에만 책을 안 읽었을 뿐이지 원래 책을 좋아하는 여자 아닌가. 실천만 못했을 뿐 어떻게 아이들을 책으로 키울지 많은 계획이 있던 여자다. 이제 실천의 때가 온 것이다.


1호가 7세, 2호가 3세이던 2018년 9월에 우리 집에 수많은 전집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반짝반짝 전집들

우리 집 도서관 대 OPEN이다!

전집으로 책 육아를 시작해 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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