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라앤글 Dec 06. 2023

달달함과 쌉쌀함에 나를 맡긴다.

몸이 땅으로 꺼지는 기분이다. 너무 달려왔나? 무엇을? 무엇 때문에?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피로누적인가 싶기도 하다. 특별한 사건 없이 그냥 축축 처지는 그런 날이다.

회사 일도 많고 집에 가서도 쉴 수 없다는 압박과 그냥 왠지 모든 것이 분주하다.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나도 몰래 튀어나온 걸까? 굳이 누가 샐러드만 먹으라고도 하지 않았는데 일반식에도 맘이 편치 않다. 아무도 날 다그치지 않지만, 나 또한 나를 다그치지 않지만 내 맘이 편하지 않다. 몸도 맘도 편치 않으니 이거 원 뭐 어쩌라는 말인가.


폭신하고 푸근한 소파에 몸을 푹 파묻은 채 1시간만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1시간 동안 눈만 감은채 '몇 분이 지났지? 몇 분이 남았지? 왜 잠이 안 들지?' 생각만 하다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잠 못 자는 스트레스는 특별히 없다. 너무 오랜 시간 그래 왔기에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런 포근함에 잠시 긴장했던 육체를 느슨하게는 할 수 있지만 내 정신세계까지 쉼으로 이끌지는 못한다. 병이라고도 할 수 없다. 그냥 언제부턴가 그렇게 살고 있다. 불면증 또한 나의 동반자이다. 잠을 못 이뤄 피곤하지만 이제 그 문제로 괴로워하지는 않는다. 그냥 일상이니까.


짧지만 달콤한 직장인의 점심시간. 혼밥을 좋아하고 혼밥에 익숙하지만 오늘은 먹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없다. 이런 무기력함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오늘 좀 무기력함을 느낀다.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신호인가. 몸의 신호인지, 마음의 신호인지, 생각의 신호인지 모르겠다. 몸과 마음과 생각이 따로 노는 부조화 속에 둥둥 떠 다니는 느낌이다.

눈앞에 보이는 카페로 발걸음을 옮긴다. 먹고 싶은 것도 없다. 참 별일이다.

가장 달달해 보이는 초콜릿케이크와 습관적으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주문한다. "하~" 아메리카노 한 목음에 한숨이 아닌 큰 숨이 내쉬어진다. 쌉싸름한 아메리카노 한 목음 넘겼을 뿐인데 뭔가 릴랙스 되는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하다. 포크를 들어 달달한 초콜릿케이크도 한 조각 입안에 넣는다. 달다 너무 달아. 다시 쌉싸름한 아메리카노 한 목음을 넘긴다. 단쓰단쓰의 무의미한 반복 속에 잠시 휴식을 취해본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달달함과 쌉쌀함이 주는 위로에 나를 맡겨본다.


회사업무, 저녁 차리기, 설거지, 책 읽기, 글쓰기, 둘째 목욕시켜 주기, 책 읽어주기, 첫째와 둘째 하루를 체크하고 대화하기, 공부한 거 체크하기, 운동하기, 물 마시기, 세탁기 돌리기, 건조기로 옮기기, 빨래 개기, 서랍에 넣기, 주방정리, 굴러다니는 머리카락 및 잔쓰레기 치우기, 인스타 관리하기, 브런치스토리 관리하기, 브런치 글 읽기, 댓글달기, 단톡방 글 읽고 쓰기....

하고 있는 일들을 정리해 본다. 내가 어디에 에너지를 쏟고 어디에서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


한 두 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진다. 쓸쓸한 연말에 내리는 겨울비는 우울감을 더 해 준다.

미안하지만 오늘 아이들 저녁은 김밥을 사서 들어가야겠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샤워를 하고 잠이 들건 안 들건 무작정 침대에 누워야겠다. 그냥 누구나 이런 날이 있는 것이다. 피곤함과 무기력함, 스트레스와 분주함에 힘겨운 그런 날. 오늘이 그런 날 중의 하루라고 생각하자. 무엇 때문에 이런 건지 찾아내려고 애쓰지 말자. 고민하고 괴로워하지 말자.


달달한 초콜릿케이크와 쌉쌀한 아메리카노에 잠시 나를 맡긴다. 아무 생각하지 말고 그냥 단쓰단쓰에 나를 맡기자. 그럼 이제 다시 일하러 출발!



매거진의 이전글 Pick Me Pick Me Pick Me Up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