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를 두드리는데 엄지손가락 끝이 칼에 베인 듯 아프다. 손가락을 돌려보니 손 끝이 벗겨지고 엄지손톱 옆쪽이 칼에 베인 듯 살이 벌어지는 상처가 나 있다. 또 찾아왔네 이 녀석. 반갑지 않은 이 녀석의 이름은
<주부습진>
주부이기에 찾아오는 것인가, 겨울이기에 찾아오는 것인가, 나이가 들어 찾아오는 것인가. 어쨌거나 지긋지긋한 이 녀석이 또 찾아왔다. 업무상 키보드를 계속 두드려야 하는데 엄지손톱 옆 1mm의 작게 벌어진 틈이 계속 키보드에 닿아 쓰라리고 갈수록 통증이 심하다. 부랴부랴 1층 약국에 가서 "주부습진 약 주세요" 하고 외쳐본다.
"손에 물이 닿지 않게 조심하시고 하루에 2번 발라 주세요"
"손에 물이 안 닿을 수가 있나요"
"그렇죠"
여자약사님도 알고 나도 알고 있다. 현실적으로 우리의 손에 물이 닿지 않기가 어렵다는 것을. 두 여인은 그렇게 마주 보고 겸연쩍게 웃어버렸다.
사무실에서 일하며 기본적으로 1리터의 물을 마시고 다이어트로 신경 쓴다고 물을 더 마시고 있다. 덕분에 화장실도 뻔질나게 들락거린다. 주부습진이 있다고 손을 씻고 나오지 않는 것은 해선 안될 행동이다. 문화인으로서 손가락 사이사이 비누칠까지 야무지게 하고 물로 헹궈 내야 한다. 우리 집 1학년 둘째도 아는 기본 상식이다. 거기서 끝이냐. 그러면 주부습진이 생겨도 할 말이 없지만 아니다. 마른 손가락 사이사이 핸드크림도 야무지게 바른다. 수시로 핸드크림을 바르는데도 불구하고 불쑥불쑥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주부습진이다.
주부의 손에서 물 마를 날이 있을까? 집에 가서도 샤워를 하고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쌀을 씻고 반찬 재료를 씻으며 물과 손은 맞닿아 있다. 그나마 손을 보호하고자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는데, 손을 위해 식세기 이모님을 모셔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아직 1학년인 둘째의 목욕에도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다. 감기, 독감이 유행 중인 요즘에는 특히 손을 더 자주 씻어야 한다. 도대체 손에서 물이 마를 시간은 언제쯤일까? 밤에는 핸드크림을 듬뿍 바르고 크림이 마르면 바세린까지 덧바르고 장갑을 끼고 자는 수고로움도 감수해 보았으나 별 효과가 없다.
내 손을 부탁해!
이쁜 생화 꽃다발도 며칠이 지나면 수분이 빠져나가 말라버린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생화가 말라가듯 몸에서 수분이 조금씩 빠져나가 말라가는 것 같다. 그래서 주름도 생기고 메마른 피부가 갈라지기까지 한다. 수분이 빠져나가 피부마저 이 모양이 된다고 생각하니 늙어가는 게 조금은 서럽기까지 하다. 1학년 둘째의 두 볼은 삶은 달걀처럼 반지르르 매끈하고 피부도 보송보송한데 말이다.
사무실 1층 약국에서 <주부습진 약>을 외쳤건만 바르고 보니 피부질환 크림이다. 전에 주부습진 걸렸을 때도 크림을 하나 샀던 거 같아서 서랍을 열어보니 역시나 다른 색상의 피부질환 크림이 나온다. 서랍이나 열어보고 약국에 갈걸, 갱년기의 깜박증이 주부습진 크림을 두 개로 늘려놔 버렸다. 나이가 들어가며 이런 깜박증까지 더해지니 갈수록 태산이다.
살아가기도 바쁜데 늙어가는 피부를 바라보며 서글퍼 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저 핸드크림 열심히 바르고 주부습진 약도 꼼꼼하게 발라주는 수밖에.
1mm의 작은 상처는 나에게 또 하나의 주부습진 크림과 글감을 하나 던져 주었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이 듦에 대하여 늙어간다는 것에 대하여.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찬 정신세계로 바쁘게 살고 있는 요즘인데 세월 따라가는 신체노화에 지는 것만 같아 기분이 조금 별로다. 내가 무슨 힘으로 세월을 거스를 수 있단 말인가. 이길 수 없는 세월에 한 마디라도 해야 속이 시원해질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