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라앤글 Dec 11. 2023

폐경이 되면 좋을 줄만 알았어.

"검사 결과 난소 나이는 47세이고 현 상태로 봐서는 50세 전에 이른 폐경이 되실 수 있겠네요."

마흔네 살이던 2년 전 급격하게 줄어버린 생리양에 뭔가 몸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닐까 하고 산부인과에 방문해서 혈액검사를 받았다. 초음파 검사까지 마치고 진료실에서 의사 선생님은 무표정한 얼굴로 수년 이내 폐경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생각해보지도 않은 단어 폐경. 이제 그 단어가 내 삶에 조용히 침투하기 시작했다.


폐경(閉經)
여성의 월경이 없어짐. 또는 그런 상태. - 표준국어대사전

완경
여성의 폐경(閉經)을 완곡하게 이르는 말. - 우리말샘



생리를 시작하는 것은 초경이라 하고 생리가 끝나는 것을 폐경이라고 했는데 몇 년 전부터 폐경이라는 단어대신 완경이라는 단어를 쓰자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폐경이 폐업과 같이 기능을 다해 문을 닫는 부정적인 의미가 있다고 월경을 완료하는 완경이라는 단어를 써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올림픽도 개회식과 폐회식이 있듯이 문을 닫는다는 폐경이라는 단어에 크게 거부감이 들지는 않는다. 월경을 다 해서 을 닫아 폐하건, 완료해서 할 일을 완했건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실제로 내가 그 끝에 다다르고 있다는 현실만이 크게 다가올 뿐이다.






요즘 평균 초경시기는 초등학교 5학년이라고 한다. 안 쓰고 싶지만 라떼는 평균 초경시기가 중2였다. 예전에 비해 요즘 아이들의 초경시기가 빨라진 건 사실이다. 초등맘이나 지역맘 카페에만 들어가도 5학년 딸아이가 초경을 시작했다고 생리대나 생리팬티의 정보를 묻는 글부터 아이가 언제 커서 초경을 하게 되었는지 대견하다는 의견과 함께 이 힘들고 기나긴 여정을 시작한 여자로서의 안쓰러운 마음을 느끼는 엄마들이 많았다.


친구들이 평균적으로 중학교 2학년에 시작하는 초경을 나는 너무나도 빠르게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5학년 8월 여름방학 때 시작하고 말았다. 아직도 그 쨍하던 여름날의 오후를 잊을 수가 없다. 화장실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선 채로 그저 엄마를 크게 부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는 무슨 큰 일이라도 난 줄 알고 화장실 문을 벌컥 열었다가 선 채로 어쩔 줄 몰라하는 딸을 바라보고는 아무 말 없이 나가셨다. 이내 엄마 손에는 기다란 기저귀처럼 생긴 생리대가 들려 있었고 팬티에 어떻게 붙여야 하는지 짧은 설명만 해 주셨다. 첫 생리대는 부직포처럼 뻣뻣한 일자형에 이름은 FREEDOM 한글로는 후리덤이라고 적혀 있었다. 여자를 구속하는듯한 생리대의 이름이 freedom 이라니 참 아이러니 했다.


당시에는 날개 달린 생리대도 없었기 때문에 생리기간에는 하체를 옥죄는 거들을 입어서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 아닌 흔들리지 않는 자발적 구속을 하고 살았다. 생리통과 더불어 그 옥죄는 불편함은 생리를 더 저주스럽게 만들었다. 몇 년이 지나 엄마의 후리덤에서 날개 달린 위스퍼를 만난 날은 뗀석기를 사용하다 갑자기 손에 망치가 주어진 원시인 보다도 더 큰 충격과 행복을 느꼈다. 위스퍼를 만나고 거들과는 이별을 했고 그 이후 다양한 이름과 여러 종류의 생리대를 만나 취향 것 고를 수 있는 선택의 시대를 맞이했다.


여자들은 모두가 알 것이다. 한 달에 한번 생리를 한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요즘에는 많이 얇아지고 재료도 좋아졌다고는 하나 3일 ~ 7일 정도 생리대를 차고 있는 것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피부 트러블도 생기고 가렵고 찝찝하고 꿀렁꿀렁 생굴 낳는 느낌도 영 거북하다. 요즘에는 삽입형 생리대, 생리컵, 생리팬티등 생리대를 대체할 다양한 상품이 많이 나왔지만 나는 아직도 날개형 생리대를 사용하고 있다. 일주일간의 생리기간에는 복통, 요통, 두통, 밑이 빠지는듯한 통증 등 각종 통증으로 인해 타이레놀을 달고 살아야 했고, 생리 기간이 지나면 또 예민하게 한쪽 배가 콕콕 쑤시는 배란통을 맞이하기도 했다. 배란통이 끝나고 생리가 시작하기 일주일 전부터 호르몬의 노예가 되어 단 음식이 그렇게 당기고 마구 신경질이 난다. 결국 여자는 한 달 내내 생리의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장장 30년 이상을 말이다.


결혼 전에는 빨리 폐경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꽤 많이 했다. 이 지긋지긋한 생리가 끝나버리면 훨훨 날아갈 만큼 몸이 가벼울 거 같았다. 폐경을 잠시 체험할 수 있는 건 바로 임신을 하고부터였다. 아이가 배 속에 있는 몇 달 동안 생리에서 해방이 되고, 출산을 하면 9개월의 생리를 한꺼번에 몰아서 하는 것처럼 오로를 배출한다. 오로가 끝나면 모유수유를 할 경우 완모 때까지 생리가 멈추지만 헬육아 기간에는 내가 생리를 하고 있는지 안 하고 있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폐인이 된 동네 엄마들이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체 "그나마 생리는 안 하니까 좋은 거 같아요"라고 말하는 게 유일한 행복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둘째를 출산하고 완모중임에도 불구하고 35일 만에 생리가 터져버린 나는 정말 거짓말 보태지 않고 헬육아에 생리까지 시작했다고 아이를 안고 엉엉 울었더랬다. 9개월 완모 하며 두 아이를 키우는데 매달 생리까지 하는 건 정말이지 지옥이 따로 없었다. 산부인과 선생님께 이게 뭐냐고 하소연을 해도 산모님 자궁이 튼튼해서 그렇다는 개뼉다귀 같은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자궁이 건강하긴 개뿔. 개나 줘 버리라 그래' 나는 괜히 억울해서 엉엉 울어버렸다.






장장 34년 동안 한 달에 한번 나를 구속했던 월경이 이제 종착역에 다다랐음을 알리고 있다. 평균 주기는 28~30일 정도로 정확했고 7일 하던 것이 5일, 5일에서 3일 정도로 기간도 줄어들었다. 그러다 하루 아니 반나절 "까꿍"하고 사라지기를 몇 달 만에 산부인과를 찾아갔었다. 엄마와 언니가 50세 전에 이른 폐경을 맞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또 친구들보다 초경을 일찍 했기 때문에 나도 50세 전에는 끝나겠거니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이른 폐경이 올 수 있다는 말을 들으니 정말 폐경이 눈앞으로 다가온 것만 같았다. 3개월간 소식이 없으면 다시 한번 병원을 들리라고 하셨지만 아직은 산부인과를 갈 일이 생기지 않아 다행이다 싶은 요즘이다.


굉장히 시원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폐경이라는 것이 바로 눈앞으로 다가오자 매달 날짜를 지나서 소식이 없으면 "혹시, 벌써?"라는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여보, 나 이제 곧 끝나려나 봐" 정확하게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남편에게 하소연해도 남편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그렇지, 남자는 평생가야 이 감정을 모르겠지. 나만 쓸쓸해지고 마음이 허하다. 시원섭섭하려나 했는데 시원보다 섭섭한 감정이 더 크게 느껴진다.



갱년기도 책으로 배웁니다


폐경이 시작되고 갱년기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갱년기 증상 중의 하나가 폐경이라고 다. 평균적으로 45~55세 사이에 갱년기가 시작되고 그 안에 생리이상과 폐경, 홍조, 열감, 불면증, 불안감등이 생기고 골다공증, 심장질환, 뇌질환등이 발생할 확률도 높아진다. 갱년기의 기간도 평균 7~14년 정도로 사람마다 다르고 겪는 증상도 천차만별이라고 하니 보통일은 아닌 거 같다.


요즘 들어 몸의 열감과 우울한 증상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불면증이 더 심해졌다. 어찌 됐건 가장 확실하 생리가 불규칙해지고 폐경에 다다르고 있음이 몸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28일이던 주기가 40~45일 정도로 늘어났다가 느닷없이 12일 만에 다시 시작하고 양도 들쑥날쑥하다. 요즘에는 나 스스로를 달래고 있다.

"그래, 30년 넘게 고생했다. 이제 끝이 다다르니 너도 어찌할 줄을 몰라서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구나" 갱년기 호르몬 때문인지 화장실에서 별안간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별일도 아니고 울일도 아닌데 나에게 있던 무언가와 이별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왠지 서글퍼졌다.


폐경기가 다가오면 조금만 더 늦게 왔으면 좋겠다던 언니들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설마 그럴 리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 또한 지금 날짜가 늦어지더라도 찾아오는 생리가 반갑고 고맙다.

사춘기 때 얼마나 힘든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초경과 함께 시작된 사춘기 격동의 세월도 잘 디어 냈다. 이제 갱년기에 접어들어 폐경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나마 사춘기는 젊기에 견딜만했지만 나이가 들어서 더 견디기 힘들다는 두 번째 질풍노도의 시기를 잘 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다. 그러나 요즘 4~50대는 예전보다 훨씬 젊게 산다고 하니 갱년기를 잘 지내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중년의 삶을 영위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어본다.


그래 생리야 우리 조금만 천천히 헤어지자. 내가 몸을 더 아끼고 보살펴 줄게. 갱년기에 대해 공부도 하고 넋 놓고 흐르는 세월만 야속하다 하지 않을게. 건강한 갱년기를 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해 볼게. 그러니 우리 조금만 늦게 헤어지자. 다음 달에 또 만나자 알겠지?

이전 02화 끈질긴 주부습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