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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앤글 Dec 18. 2023

마음이 아플 땐 약을 먹어도 괜찮아

갱년기 우울증

평일 오후 2시 갑자기 손이 파르르 떨리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내 몸이 왜 이러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내 숨이 가빠지기 시작한다. 이대로 있다가는 큰일이 나겠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7층 사무실을 빠져나간 뒤 계단을 하나하나 걸어 내려갔다. 이마에 식은땀까지 송골송골 맺힌다. 4층 계단에 앉아서 눈을 감은 채로 숨을 골라 호흡을 가다듬어 본다. 다시 떨리는 몸을 이끌고 계단 손잡이에 기댄 채 1층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뗐다.  "휴~" 힘겹게 건물을 빠져나가 벤치에 털썩 주저앉은 채로 하늘을 바라보며 호흡을 진정시켰다.

'내가 왜 이러지?' 갑자기 흐르는 한줄기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며 이제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신경정신과를 가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며칠 뒤 점심시간을 이용해 옆 건물 신경정신과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갔다. 오 마이 갓. 신경정신과에 무슨 사람이 이렇게 많아? 그것도 점심시간에. 놀랄 겨를도 없이 접수를 하고 설문을 작성하라며 태블릿을 넘겨받았다. 대기실 한편에 있는 책상에 앉아 문항들을 살펴보고 체크한다.

비로소 나를 향한 질문과 마주 하게 된 시간이다. 요즘 가장 힘든 게 무엇인지, 잠은 잘 자는지, 자신은 쓸모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는지, 죽고 싶은지까지 수많은 질문을 읽으며 셀프점검을 시작했다.


신경정신과 설문지



순서가 되어 진료실로 들어갔다. 푸근한 인상의 단정해 보이는 선생님이 어서 오라고 맞아 주신다. 여느 병원처럼 등받이 없는 동그란 회전의자가 아닌 조금은 포근해 보이는 소파가 놓여 있었다.

"나작가님은 어떻게 오셨나요?"

"며칠 전 숨이 가쁜 증상도 있었고, 잠을 통 못 자서 힘이 들어요."

여러 가지 증상을 들은 후 선생님은 며칠 전 겪은 증상은 공황장애 증상이고 잠을 잘 못 자게 된 게 얼마나 오래됐는지, 요즘 무엇 때문에 가장 힘이 드는지를 추가로 질문하셨다.

나도 모르게 공황장애 증상까지 겪고 있었구나. 나는 왜 내 마음을 돌보지 못하고 힘들다 생각만 하면서 손을 놓고 있었을까.


선생님은 지금 내가 겨울 한가운데 서 있다고 말씀하셨다.

"나작가님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겨울 한 복판에서 걸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네, 아무래도 노력을 하면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동안 내가 노력하지 않아서 이렇게 힘이 들었던가, 오래된 우울함을 떨쳐 버리려고 나는 무슨 노력을 했던가. 찰나의 순간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본인 스스로 나오기 힘들지요. 스스로 나오기 쉬우면 우울할 사람 없게요? 힘들면 이렇게 말씀하시고 약의 도움을 받으시면 됩니다. 약 먹는 게 나쁜 게 아니에요. 힘든 거 말씀하시면서 약도 복용하면 차츰 나아질 거예요."

내가 노력하지 않은 게 아니라고, 노력한다고 쉽게 우울함을 떨쳐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내 잘못이 아니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한 줄기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가장 적은 용량의 신경안정제 일주일치와 잠을 너무 못 자서 힘드니 급한 불을 끌 때 쓰라며 수면제 다섯 알을 처방해 주셨다.

선생님의 걱정과 달리 처음 받은 약은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지는 않았지만 나를 우울감에서 벗어나게도 하지 못했다. 약은 바로 다음 단계로 상향 조절 됐다.


수면제 한 알


내성이 생기지는 않지만 수면제를 처방하면 환자가 약에 의존하게 될까 딜레마에 빠지곤 하신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며칠 잠을 못 잔 날 처음으로 수면제 한 알을 삼켰다.

처음 먹어본 수면제는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나를 깊은 잠으로 이끌었고 첫 시간을 확인한 순간이 새벽 5시 30분이었다. 이런 잠을 언제 자 봤는지 모를 정도의 완전한 숙면이었다. 수면제의 효과가 이 정도라고? 매일 밤 수면제를 먹고 싶은 욕구를 꾹 누르고 정말 피곤하고 푹 자고 싶을 때 몇 번 더 먹어 봤지만 처음과 같은 효과는 누리지 못했고 마지막 다섯 번째 약은 먹어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몇 주간 신경정신과 약을 복용하며 선생님과 상담을 진행했고 다행히 극심했던 우울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갱년기의 증상 중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갱년기 우울증이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 우울증을 겪지 않는 사람이 없고 현대사회에서는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런 삶 가운데 갱년기 우울증이라는 새로운 감정이 내 삶에 또 들어오고야 만 것이다.

지난 시간의 우울증을 복기해 보았다. 육아가 힘들어 이 순간을 벗어나고 싶었고, 남편이 꼴도 보기 싫게 미워서 보고 싶지가 않았고, 경제적인 어려움에서도 벗어나고 싶었다. 현실적인 문제들이 우울함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에 반해 갱년기가 되고 느끼는 우울함은 특별한 대상이 없다는 것이다. 삶이 공허하다. 마음 한가운데 구멍이 뻥 뚫려 바람이 숭숭 통하는 거 같다. 나는 뭐 하며 살았나, 내 삶은 무엇인가 인생에 허무한 감정이 가득하다. 나아가 자녀들이 커서 부모의 품을 떠나면 빈 둥지 증후군까지 온다고 하니 우울함은 삶의 동반자가 아닐까 싶은 정도다.


그나마 아직은 갱년기 초반이라 간헐적 우울함을 경험할 뿐이다. 폐경기가 다가와서 내 인생은 뭔가 생각하다 눈물을 흘리고 이렇게 나는 늙어가는 것인가 인생이 헛헛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글쓰기를 통해서 나의 우울함을 직시하고 풀어 나가게 됐다는 것이다. 글을 쓰며 나를 좀 더 객관화시킬 수가 있었고 글을 마무리할수록 나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 나가기 시작했다.


갱년기가 시작될 때 마침 글쓰기까지 시작하게 되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어쩌면 나는 스스로 우울함을 극복할 해결책을 찾고 싶었던 게 아닐까?

모든 사람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기에 각자에 맞는 해결책 하나쯤은 마련해 두는 것이 좋겠다. 어떠한 취미 생활이 되었든지 그것이 나를 우울함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하는 도구가 된다면 가장 먼저 스스로에게 내릴 수 있는 처방전이 될 것이다.


셀프처방전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나는 얼마든지 신경정신과의 문을 다시 두드릴 준비가 되어 있다. 몸이 아플 때 증상에 맞는 병원을 찾듯 나 스스로 한 겨울 속을 벗어나지 못할 만큼 마음이 힘들 때는 기꺼이 약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


내 안의 감정들 - 영화 인사이드아웃


또한 우울함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영화 인사이드아웃에서는 내면의 기쁨, 슬픔, 까칠, 버럭, 소심이라는 다섯 가지 감정이 등장한다. 각 감정은 주인공 라일리가 살아가는데 서로 유기적으로 공존하며 주인공을 성장시킨다. 모든 감정은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기에 충분하고 나를 성장시키는 요소이다.


40세는 불혹(不惑)이라 하여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라고 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삶의 지혜가 더해져서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판단력이 생기는 게 아닐까 싶다.

50세는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명을 깨닫는 나이라고 한다. 50대가 되면 하늘의 명을 깨달아 판단을 흐리지 않고 좀 더 올바른 선택을 하는 삶을 살게 되지는 않을까?


내면의 여러 가지 감정들을 인지하고 우울함이라는 감정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울함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불혹 에서 지천명으로 가는 지금. 내 상태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나를 위한 바른 선택을 할 것이라 믿기 때문에 나는 갱년기 우울증이 두렵지 않다.




아내(엄마)가 갱년기라면 공허한 마음을 이해하고 보듬어 주세요. 장미 한 송이, 차 한잔 선물해도 좋고 사랑한다, 고맙다는 카톡 하나가 아내(엄마)의 공허한 마음을 메워줍니다.


갱년기라 우울함을 느끼시는 분은 셀프 쓰담쓰담을 해 주세요. 실제안정의 효과가 있다고 하네요.

그리고 나의 노력에도 우울함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신경정신과 약의 도움을 받으세요. 감기에 감기약, 근육통에 근육이완제, 관절염에 관절통 약의 도움을 받듯 우울할 때는 신경정신과 약을 먹으면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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