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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앤글 Dec 25. 2023

여보, 우리 이제 친구로 지내자.

갱년기 성생활

'띠띠띠띠띠'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다! 남편이 들어온다! 어서 하는 일을 멈추고 취침모드로 돌입하라!

퇴근 후 자격증 시험공부를 마치고 자정이 다 되어 들어오는 남편을 피하기 위해 행동이 빨라진다. 나는 왜 남편이 집에 오면 반갑게 맞아주지 않고 후다닥 이불속으로 들어가 자는 척을 하는 것일까?





서른두 살 1월에 만난 동갑내기 남녀는 사랑에 빠졌고 서른세 살 10월에 결혼에 골인했다. 신혼 때는 눈만 마주치면 밥상도 물리치고 거사(?)를 치른다고 했지만 우리 부부에겐 그런 일은 없었다. 결혼과 동시에 전업주부의 삶을 선택했던 나의 체력은 쌩쌩했지만 주경야독으로 회사를 다니며 대학생활까지 했던 남편은 늘 피곤했기에 우리는 주말에만 신혼의 삶을 즐길 수 있었다.

늘 나를 만지작 거리는 건 남편. 그렇게 시동을 걸어놓고 뭐라도 할라치면 "피곤해... 우리 주말에 하자"라는 말로 나를 실망시키던 인간. '건들지를 말던지...' 나름 신혼을 즐기고 싶었던 나는 직녀가 되어 주말에만 남편을 만날 수 있었다.


주말에만 만나던 견우와 직녀였지만 직녀의 치밀한 자녀계획으로 49개월 터울의 아들과 딸을 품에 안을 수 있었다. 남편과 한 침대에서 잠을 잔 건 결혼 후 첫 아이를 임신하기 전까지 딱 7개월이 전부다. 원래부터 잠귀가 예민했던 나는 남편의 큰 숨소리에도 잠을 이루지 못했고 점점 심해지는 남편의 코골이에 밤을 꼴딱 새우기 일쑤였다. 혼자의 몸일 때는 남편이 출근하고 낮잠을 자면 괜찮았지만 임신을 하고 나서는 밤에 잠을 못 자는 것이 너무 힘들어 각 방을 선언하고야 말았다.


임신과 동시에 각 방 취침을 통해 나는 밤에 잠을 잘 수가 있었다. 아이를 출산하고는 출근하는 남편을 배려해서 계속해서 각방 생활을 이어갔다. 모유수유를 했기 때문에 남편이 새벽에 우유를 탈 일도 없었고 수유를 위해 일어난 김에 기저귀도 혼자 갈았다. 첫째 아이를 낳아서 둘째 임신 전까지는 아이와 함께 잠을 잤고 둘째를 출산하고 나서는 첫째를 남편 품으로 보내고 다시금 둘째와 잠을 자기 시작했다.


결혼 7개월부터 각방을 쓴다고 하면서 둘째가 있다고 하면 다들 "아이는 어떻게 생겼어?"라고 묻곤 하는데 아무리 각방 생활을 해도 부부는 뜻이 맞으면 같이 하늘을 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하늘을 보아 이쁜 둘째까지 얻었으니 견우와 직녀 생활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첫째를 임신하고부터 아이와 잠을 자기 시작한 나는 잠귀가 거의 소머즈급으로 발달을 했고 아이의 작은 뒤척임에도 눈을 번쩍 뜨고 아이 옷을 여며주고 이불을 덮어주는 행동등으로 인해 잠을 더 이룰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만성피로를 벗 삼아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견우를 만날 생각을 잊었고 본인이 직녀임도 잊고 살았다. 아이들을 키울 때 나는 그저 피곤에 쩌든 보모일 뿐이었다.


서른아홉에 둘째를 출산하고 독박육아를 하며 체력은 더욱 떨어져만 갔는데 반대로 남편은 40대가 되더니 신혼 초와는 다르게 왕성한 성욕의 소유자가 된 듯했다. 급기야 주말에만 직녀를 찾던 견우가 시도 때도 없이 직녀를 찾아 하늘을 보자고 옆구리를 콕콕 찔러댔다.

"제발 좀 저리 가~ 나 힘들어 죽겠어. 잠 좀 자자"

"칫! 우리는 부부야! 맨날 힘들대!"

댓 발 나온 견우의 입을 보고도 나 먼저 살고 보자고 돌려보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면서 잠깐이라도 잠을 자길 원했다. 성욕은 개인차가 있다고는 하지만 나는 정말 두 아이를 낳고 무성욕자가 된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남편에게는 미안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견우와 직녀가 만나지 않기를 바랐고, 움츠러든 견우를 위해 의무방어전을 치르는 직녀가 되기도 했다.


40대 중반에서 50을 향해 가고 있는 지금 직녀는 폐경의 조짐이 보여 생리불순과 감정변화, 몸이 뜨거워지는 등 갱년기 증상을 오롯이 겪어내고 있다. 남편은 본인에게 아무런 변화가 없어서 그런지 갱년기에 무감각했고 아내의 변화에도 별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일 뿐이다.



갱년기 증상

갱년기에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은 불규칙한 생리입니다. 여성 호르몬의 결핍에 의한 증상도 나타납니다. 우리나라 여성 중 50% 정도는 안면 홍조, 빈맥, 발한과 같은 급성 여성 호르몬 결핍으로 인한 증상을 경험합니다. 20% 정도의 여성은 이러한 증상이 더 심하게 나타납니다. 안면 홍조와 함께 피로감, 불안감, 우울, 기억력 감퇴 등의 증상이 동반되기도 합니다. 주로 밤에 증상이 나타날 경우에는 수면 장애를 겪기도 합니다. 그리고 수개월 후에는 에스트로겐의 부족으로 인해 질에 있는 수분이 건조되면서 '질 건조' 또는 '질 위축증'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상태는 성교 시 통증을 유발하며, 감염으로 인한 심한 가려움이 동반될 수 있습니다.
- DAUM 백과 어학사전




갱년기 증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성욕감퇴>이다. 더 감퇴될 성욕이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 신체적으로 통증까지 느껴진다고 하니 견우를 만나기가 더욱 겁이 난다.

생리와 임신기간등 여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남편은 참 속이기가 쉬웠다. 직녀를 향해 야릇한 눈빛을 보낼 때마다

"안돼. 생리 중이야"

"안돼. 배란기야. 임신되면 큰 일 이잖아?"

이 두 가지 버전의 거절 방법을 매달 돌려 써먹었다. 순진한 건지 무식한 건지 배려인지 모르겠지만 직녀의 거절 의사를 존중해 주는 견우였다.



지난주 생리주기 이상과 부정출혈로 다시 한번 산부인과를 방문했다. 생리주기와 마지막 관계 일자를 물어보는 간호사에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을 했더니 "몇 달 전이라고 기재하겠습니다"라고 한다.

견우여, 그대는 직녀를 만난 날을 기억하는가?


초음파 검사와 혈액으로 각종 수치검사를 진행했고 의사 선생님은 빠르면 내년쯤에는 폐경이 올 거 같다고 말씀하셨다. 용종이 있다고는 하지만 자궁에 큰 이상이 없어 안심은 되면서도 폐경이 다가온다는 불안감은 평정심을 잃게 만들었다.

그날만은 자는 척을 하지 않고 남편을 기다렸다가 산부인과 검사 결과를 말해 주었다. 이 철딱서니 없는 견우는 "그럼, 이제 우리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거야?"라는 말로 직녀의 심기를 건드렸다.

아오~ 여자는 이렇게 신체적 심리적으로 갱년기를 겪으며 고생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라는 작자가 고작 한다는 소리가 아무 때나? 아무 때나라고 하였느냐???


철딱서니 없는 남편을 째려보고는 잘 자라는 인사도 하지 않고 둘째가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무 때나 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네. 칠월 칠석이 돼도 못 만날 줄 알아라!'

남자들도 신체적, 심리적으로 갱년기 증상을 겪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우리 집 남자는 예외인가 보다. 아내가 폐경기가 다가와서 심란하다는데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부부의 동상이몽이다.


안 그래도 동갑인 남편과 살아가면서 장난도 늘어나고 편한 친구가 되어가고 있다. 웃음코드도 잘 맞아서 농담 따먹기도 잘하고 툭툭 펀치를 날리며 복싱을 하기도 한다. 만남부터 2년 가까이 서로에게 존대를 하다가 차차 반말로 변했고 요즘에는 ~했니? ~했냐?처럼 말 끝이 짧아지고 있다. 장난처럼 이제 친구네 친구야 라고 말하곤 한다.

동갑인 남편이 편한 요즘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장 가까운 평생 친구가 아닐까 싶다. 지금 같아서는 부부관계도 졸업을 하고 정말 친구처럼 지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여보, 우리 친구처럼 지내자~" 아내의 속 뜻도 모르고 해맑은 남편은 대답한다.

"그럼, 내 옆에 당신밖에 더 있어? 애들 크면 다 떠날 거고 우리 둘 밖에 없어."

내 뜻은 그게 아닌데... 부부의 동상이몽이 더 커져만 간다.



견우야 미안해 - 영화 엽기적인 그녀



"견우야 미안해! 나.. 이제 밤에는 너 안 만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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