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엄마와 부비부비를 좋아하는 막내딸이 품에 파고 들었다가 엄마가 뜨겁다며 홱 돌아가 버린다.
'그러게, 내 몸이 왜 이렇게 뜨겁지?' 얼마전부터 저녁 시간만 되면 다리부터 뜨거운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얼굴까지 열이 확 오르기 시작한다. 나만 느끼는 열감인가 했는데 딸 아이도 느끼는거 보니 몸이 뜨겁긴 뜨거운가 보다.
"엄마가 요즘 좀 무리했나봐. 몸살 기운이 있나?" 날씨도 추워지고 워킹맘의 분주한 일상으로 몸살이 찾아 왔나 싶다. 다행히 감기증상은 없어서 약장에 있는 몸살약 한 알을 물과 함께 꿀꺽 삼켜 버렸다.
"아이고 우리 마누라 손발이 차더니 이제 몸이 아주 뜨겁네?" 40중반의 14년차 부부임에도 불구하고 포옹을 좋아하는 남편이 저녁 포옹을 진하게 하고는 내 몸의 열기를 느꼈는지 한 마디 한다.
"그러게나 말이야, 왜 이렇게 몸이 뜨겁지?" 마그마가 끓어오르는 지구처럼 내 안 깊은 곳에서부터 뭔가가 부글부글 끓어올라 차츰 피부까지 뜨거워지는 느낌이다. 평상시에는 차가운 음료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데 생수에 얼음을 부어 마셨다. 속은 차가워지는데 몸이 아직 뜨겁다. 아~ 나 요즘 왜 이러지?
날씨가 추워져서 긴 수면잠옷을 입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한다. 극세사 이불까지 야무지게 덮고 자는데 갑자기 몸이 뜨거워짐을 느낀다. 극세사 이불을 발로 뻥뻥 걷어 찼는데도 시원치가 않다. 암흑 속 장농 문을 열어 민소매 잠옷과 반바지를 꺼내 갈아 입었다. 이제 좀 잠을 잘 수 있으려나? 안그래도 깊은 잠을 못 자고 수시로 깨서 시간을 확인하는 수면의 질 최하인 밤인데, 요즘은 잠 들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시간을 확인하고 누워서 잠을 청해 보지만 잠이 들지 않아 몇시나 됐으려나 스마트폰 시계만 계속 눌러본다. 깊은 잠을 못 자니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고 하루종일 피곤한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다. 몇 년전 방문했던 신경정신과를 다시한번 가야 하나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왜 이렇게 피곤해 보여?" 요즘 자주 듣는 말이다. 사무실 언니들에게 요즘 잠도 잘 못자고 몸도 뜨거워지는 증상을 얘기하며 도움을 청했다. 아무래도 나 보다 나이 많은 언니들이니 무슨 방도가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다.
"그거 갱년기 증상인데?"
"네? 제가요? 저 아직 50도 안 됐는데요?"
"갱년기에 나이가 어딨어? 오면 오는거지. 사람마다 오는 시기도 다르고 기간도 달라"
쿨하게 말하고 사라지는 언니의 뒷 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 '내가 갱년기라고? 이제 겨우 마흔여섯인데?'
[갱년기]
인체가 성숙기에서 노년기로 접어드는 시기. 대개 마흔 살에서 쉰 살 사이에 신체 기능이 저하되는데, 여성의 경우 생식 기능이 없어지고 월경이 정지되며, 남성의 경우 성기능이 감퇴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 표준국어대사전
<갱년기>를 검색해 보았다. 보통 쉰 즈음에나 맞이하는 이름이라 생각했는데 나이로는 그렇게 빠른시기도 아니었다. 중2병이 사춘기의 절정이지만 요즘 아이들의 사춘기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시작이라고 하더니 갱년기 시작 평균연령도 낮아졌나 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성숙기에서 노년기로 접어든다고? 내가? 난 아직 젊은데?
그러고 보니 나는 이미 달마다 맞이하는 월경이상으로 산부인과에서 검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게 2년 전이였던가. 당시 난소나이 마흔일곱에 50세 전에 폐경을 맞이할꺼라던 의사선생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 내 몸은 내 생각과 상관없이 늙어 가고 있는거였구나.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내가 몇 살까지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이제 갱년기가 시작이라면 난 뭘 준비하면 되는거지? 사춘기가 시작된 아들을 잘 키워보고자 사춘기 관련 교육서만 찾아 읽어 봤지 갱년기에 대한 책 한권 읽은 기억이 없고 어디서 갱년기에 대한 강의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저 갱년기가 오면 폐경이 되고 우울증도 조심해야 하고 골다공증을 예방해야 한다는 정도밖에 아는게 없다. 이렇게 빨리 갱년기를 맞이할 줄 몰랐다. 알았더라면 갱년기에 관한 책도 미리 읽고, 관련 영상도 찾아 봤을 것이다.
나이 속도에 따라 세월이 흘러 간다 했던가. 시속 46km의 속도를 체감하지 못한체 세월을 흘려 보내고 있었다. 마음만은 이팔청춘이라던, 몸이 이렇게 빨리 늙을지 몰랐다던 어르신들의 말이 그냥 하는 말인줄 알았는데 내 정신세계와는 다르게 몸은 세월을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고 있었다. 러닝머신에서 시속 6km의 빠른 속도로 걷기에도 숨이 차고 시속 10km가 되지 않아도 빨리 달려야 머신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시속 46km는 사람이 뛰어 갈 수 있는 속도가 아니다. 자동차로 달려도 꽤 빠른 속도인데 왜 그 속도를 체감하지 못했을까? 갑자기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
갑자기 다가온 갱년기가 낯설기도 하고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 나는 앞으로 점점 늙어가지 젊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이야 붙들어 놓을 수 있다지만 몸의 노화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나마 근육을 늘리고 체력을 길러 건강한 노후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정도다.
5학년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한다. 나도 사춘기 시절에는 하루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면 뭐든 내 맘대로 할 수 있고 지금보다는 더 멋지고 큰 세상을 맞이할 수 있을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보니 어른의 삶은 어릴때 상상했던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지금은 오롯이 어른의 무게를 견디며 그 세월을 살아가고 있다. 아들은 세월의 속도를 빠르게 돌리고 싶어하고 나는 세월의 속도를 조금만 늦췄으면 좋겠다.
100세 시대. 내 나이 이제 100세의 절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흐르는 세월에 무임승차 해서 물 흐르듯 내 몸을 떠밀려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이야말로 인생 하반기의 플렌을 계획하고 점검할 때가 아닌가. 폐경, 골다공증, 열감, 뇌경색등의 신체적 노화를 대비하고 예방하며 우울증, 불면증 등의 정신적 변화에도 대비를 해야 한다. 사춘기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인이 되어가는 시기라면 갱년기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노년이 되어가는 시기이다.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갱년기와 정면승부를 해야할 것인가? 안그래도 고달픈 인생인데 싸움의 대상을 하나 더 만들어 무엇하겠는가. 어차피 내가 격어야할 갱년기라면 미리 대비하고 최대한 친하게 지내봐야겠다. 늙어가는 신체도 달래가며 몸도 마음도 세월의 직격탄을 맞지 않도록 철저한 대비를 해야겠다.
나에게 찾아온 갱년기도 기꺼이 받아 들이고 나의 몸을 위해 좋은 음식을 섭취하고, 적절히 운동도 하고,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뇌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생각이다.
그러니 세월아, 조금만 천천히 흘러가주렴. 나는 아직 해야할것도, 하고 싶은것도 많은 꿈 많은 40대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