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엄마에게 거는 전화를 뒤로 뒤로 미루던 막내딸은 음식을 한쪽으로 밀어 넣고 겨우 대답을 한다
"별일 없지? 그럼 됐어~ 밥 먹어"
"어.... 엄마 내가 있다가 전화할게요~"
엄마 나이도 어느덧 70 중반. 아픈 곳은 없는지, 밤 새 안녕하셨는지 매일 안부전화를 드려야 할 나이가 되셨다. 정말로 엄마는 얼마 전 심비대증에 심부전 진단을 받아 입원을 하셨고 꾸준히 약도 복용 하신다. 그런 엄마에게 밥이랑 약은 잘 챙겨 드시는지, 운동은 하고 계신지 살갑게 묻고 살필 딸이 필요한데 나는 왜 그러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무신경한 딸 같으니라고 스스로를 꾸짖어 본다.
엄마는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을까? 아이를 낳아 키우느라 치열하게 살면서 내나이 먹는 것만 생각했지 엄마가 나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인생의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아니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릴 적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러하듯이 나 또한 '우리 엄마 같은 삶은 살지 않을 거야, 우리 엄마 같은 엄마는 되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사춘기 때는 왜 그렇게 엄마의 관심이 싫고 엄마의 삶이 답답해 보였는지 모른다. 엄마 또한 그 나이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최선의 삶을 살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다시 회사를 다니기 전에 엄마랑 관악산에 같이 가자고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엄마는 여기저기 등산을 많이 다니셔서 나 보다 산을 더 잘 오르셨다. 생활에 떠밀려 워킹맘이 되었고 엄마와의 등산 약속은 유야무야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아마 지금은 시간이 나도 엄마 건강 때문에 등산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엄마는 지난번 입원으로 몸무게가 45kg까지 빠지셨다. 뼈에 가죽만 붙어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마르고 유약한 상태이다.
엄마가 이렇게 빨리 늙을 줄 알았으면 아프시기 전에, 엄마가 더 늙기 전에 함께 여행을 다니는 건데... 실행하지 못한 과거는 늘 후회로 남는다.
내 나이 스물세 살 대학 3학년 때 통일국토대장정이라는 국토종주를 한 적이 있다. 20박 21일 동안 포항 호미곶을 출발하여 임진각까지 걷는 젊음의 사투였다.
그때의 기억이 너무 좋아서 스물여섯 살 직장인이던 시절에 연차를 내고 혼자만의 걷기 여행을 준비했다. 짧은 3일의 휴가였기에 어디를 걸으면 좋을까 지도를 펴고 생각하다가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 갔던 경주가 생각났다. 관광지라서 여자 혼자 걸어 다녀도 크게 위험할 거 같지 않았고 오랜만에 첨성대, 석굴암 같은 문화유산도 보고 싶었다.
2박 3일의 여행이기에 부모님께 여행일정을 말씀드렸더니 수줍게 약간은 미안해하시며 "엄마도 같이 가면 안 될까?"라고 하신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나의 도보여행에 누군가 함께 한다는 계획은 없었고 더군다나 엄마가 동행하고 싶다고 하실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2박 3일 동안 걸어 다녀야 해서 힘들고 8월의 날씨가 너무 더워서 쉰여섯 엄마가 걷기에는 무리라고 동행이 안 되는 이유를 계속 찾아 나열했다.
막내딸이 국토대장정을 할 때 엄마는 "나도 너처럼 젊었으면 이런 거 한번 해 봤으면 좋았을 텐데... 나도 잘 걸을 수 있거든 부럽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딸이 또다시 걷기 여행을 한다니 따라나서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생각해 보니 그 당시 엄마는 우리 삼 남매를 키우느라 여행 한번 쉽게 다니지 못하셨던 거 같다. 그 나이에 혼자 여행을 실행하시기도 힘들었을 테고 딸이 떠난다니 함께 걷고 싶으셨던 거다.
"밥도 다 사고, 호텔비도 낼게~" 엄마는 나한테 짐이 되지 않게 잘 따라서 걷겠다고 자꾸 함께 가자고 하신다.
나는 잠도 찜질방에서 자고 엄마랑 같이 걸으면 쉬는 시간이 길어져서 많은 곳을 걸을 수가 없기 때문에 제대로 된 여행이 안된다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거듭된 막내딸의 거절에 엄마는 알겠다고 조심히 잘 다녀오라며 딸의 2박 3일 도보여행을 보내 주셨다.
엄마는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얼마나 걷고 싶으셨을까, 얼마나 딸이랑 여행을 하고 싶으셨을까?
그때의 엄마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지금은 함께 도보여행을 하고 싶어도 엄마에겐 너무 힘든 일이고 내 나이도 50을 향해 가고 있어서 생각만 해도 힘이 든다. 엄마가 이렇게 빨리 늙으실 줄 알았다면 그때 경주 도보여행을 함께 하는 건데, 엄마랑 손잡고 걸으며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고 사진도 많이 찍는 건데 후회만 남는다.
엄마는 얼마 전 언니랑 2박 3일 부산여행을 다녀오셨다.
"우리 막내딸도 같이 가면 좋을 텐데... 애들 때문에 집도 못 비우고, 아쉬워서 어쩌나" 엄마는 언니와 부산여행을 하면서 함께 하지 못하는 막내딸 에게 미안해하셨다.
아직은 엄마손길이 필요한 남매를 키우며 워킹맘으로 살고 있는 현실에 맘 잡고 날을 잡아서 엄마랑 여행을 가기가 도무지 쉽지가 않다. 엄마가 더 늙기 전에 한 번쯤 여행을 했으면 좋겠는데... 나중에 더 큰 후회가 되지 않도록 엄마랑 함께 걷고 싶다.
지금의 나 보다 젊고 이쁜 우리 엄마
엄마, 그때 내가 까칠하게 굴어서 미안했어. 엄마랑 함께 경주여행 가기 싫다고 짜증내서 너무 미안했어. 시간 내서 관악산도 오르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 엄마는 나이 들어가는데 나만 바쁘다고 연락 한번 제대로 못해서 미안해. 엄마, 막내딸이 벌써 갱년기야. 그래서 이렇게 눈물을 닦으며 마음의 편지를 보내요. 엄마 내 곁에 오래 있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