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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앤글 Jan 17. 2024

붕어빵 찾아 삼만리

"엄마, 집에 오실 때 붕어빵 좀 사다 주세요"

"엄마, 퇴근하고 가는 길에 붕어빵 파는데 없는데? 알았어~엄마가 더 찾아볼게"


좀처럼 간식을 찾지 않는 첫째가 퇴근길에 붕어빵을 사 오라며 전화를 했다. 차라리 치킨이나 떡볶이를 사 오라고 하지 왜 하필 눈에 띠지도 않는 붕어빵을 찾는단 말인가. 겨울철 대표간식이던 붕어빵 찾기가 요즘 하늘에 별 따기 만큼 어려워졌다.


예전 드라마에서 "누구나 마음속에 상처 하나쯤 있잖아요"라는 대사가 배우의 뭉개진 발음으로 "가슴속에 삼천 원쯤은 있잖아요"라는 말로 희화화 됐다. 이 말은 한 겨울 간식을 사 먹기 위해서 누구나 가슴속에 3천 원 정도는 품고 다녀야 한다는 말로 밈이 되었다.


붕어빵은 물고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는 단위가 "마리"이다. 붕어빵 한 개, 두 개 하지 않고 붕어빵 한 마리 두 마리라고 세곤 한다. 누가 시초가 되어 언제부터 그리 불렀는지는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예전에는 천 원에 다섯 마리 하던 붕어빵이 가격이 슬금슬금 오르더니 요즘에는 2천 원에 세 마리가 기본이 되었다. 물가가 올라 붕어빵 가격의 인상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되었지만 비싸서 못 사는 게 아니라 없어서 못 먹는 귀한 붕어빵이 되었다.


오죽하면 붕어빵을 파는 곳 위치를 알려주는 어플이 다 왔을 정도다.




겨울이 되면 가슴속 3천 원이라는 어플을 이용해서 붕어빵 살 곳을 찾았는데 확실히 예전보다 붕어빵 파는 곳 위치를 찾기가 쉽지가 않다. 아들이 찾는 붕어빵 찾아 삼만리를 하다가 집에서 먼 거리라 결국엔 포기하고 말았다.






붕어빵 하면 떠오르는 마음 따뜻한 추억이 하나 있다.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친구와 함께 학원을 마치고 길거리 포장마차에 들어갔다. 따끈한 어묵 국물을 마시며 친구 500원 나 500원 각출해서 붕어빵 다섯 마리를 주문했다. 갓 구워진 따끈한 붕어빵을 호호 불며 너 두 개, 나 두 개 먹고서 한 마리는 사이좋게 나누어 먹으려는 순간. "우리 이쁜 숙녀들 사이좋게 먹으라고 아줌마가 하나 더 줄게" 하시며 붕어빵을 하나 더 건네시던 사장님의 미소 띤 얼굴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사장님의 배려로 우리의 고픈 배는 든든해졌고 마음마저 따뜻해졌다.


겨울만 되면 붕어빵이 생각나고 붕어빵을 함께 먹던 친구도, 붕어빵을 하나 더 건네어주시던 사장님도 생각이 난다. 붕어빵은 친구와의 소중한 추억이자 사장님의 따뜻한 사랑이었다. 그렇게 좋은 추억이 있는 붕어빵인데 왜 이렇게 보기가 힘들어진 것일까?

이렇게 수요자는 많은데 공급이 부족하다면... 붕어빵 장사를 해 볼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에까지 이른다. 좋은 자리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면 돈을 쓸어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진지하게 고민을 해 본다.


붕어빵 노래를 부르던 아이에게 붕어빵을 사 주지 못해서 아들도 아쉽고 나도 아쉽고, 못 먹으니 더 먹고 싶어 지는 붕어빵 수렁에 빠져 버렸다. 그 붕어빵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이렇게 母子의 애간장을 태우는지 원.






주말에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는데 마침 붕어빵 포장마차를 발견했다. 역시나 줄이 길다. 그래도 목 빠지게 붕어빵을 기다렸던 아들과 함께 긴 대기줄을 마다하지 않고 붕어빵 대열에 합류했다. 역시 핫하디 핫한 붕어빵이다.




아들은 붕어빵의 근본 팥붕어빵을 거부하고 오로지 슈크림붕어빵만을 선호한다.

"팥붕어빵 하나만 먹어봐! 이게 진짜라니까? 팥붕을 먹어야 진짜 붕어빵을 먹는 거야!"

"요즘 사람들은 슈붕 먹지 팥붕 안 먹어요. 팥붕은 엄마나 드세요"

팥붕어빵을 먹는다고 아들에게 옛날사람 취급을 당했다. 그래 니 똥 칼라파워다. 이 말도 옛날사람만 알아들으려나? 어쩔 수 없는 옛날 사람 셀프인증이다.

만나기 힘들던 붕어빵을 팥과 슈크림 골고루 넉넉히 담아서 집으로 향했다. 추운 겨울 길에서 아들과 먹는 붕어빵에서 그 옛날 친구와 사이좋게 나눠 먹던 붕어빵 생각이 났다. 집으로 가는 길에서 팥붕과 슈붕의 근본 대결은 끝이 나지 않았지만 아들과의 이런 시간이 조만간 사라질 것만 같아서 붕어빵만큼이나 귀하고 소중하다.


용돈도 넉넉하고 사 먹을 먹거리도 많은 요즘 아이들이 붕어빵을 얼마나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붕어빵과 친구를 추억하는 것처럼 아들이 성인이 되어 추운 겨울이 되면 엄마와 함께 먹던 붕어빵을 추억해 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붕어빵을 더 찾아봐야겠다. 붕어빵 찾아 삼만리는 계속된다.


"아들아, 꼭 팥붕어빵을 먹어보렴~ 붕어빵의 근본은 팥붕이야. 팥붕을 먹을 때 진정으로 붕어빵의 진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포기할 줄 모르는 엄마는 듣지 않는 사춘기 아들에게 오늘도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외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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