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청서
나는 지난 6개월 동안 많은 일을 다양한 방식으로 처리하며 살아왔다. 기존의 내 사업도 크게 무리 없이 운영해 왔고 올해 새로 편입한 방송대 국어국문학과 3학년 1학기도 F학점 없이 모두 통과하여 현재는 3학년 2학기 강의를 듣고 있다. 이번 학기부터는 출석수업도 면대면 오프라인으로 실시하여 10월 23일에 출석수업을 들으러 가야 한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제대로 하지 못 하던 마라톤 동호회도 이제 서서히 재개되어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을 쉬다가 다시 시작하다 보니 예전 같지 않고 힘이 들었는데 서서히 몸이 회복되어 지난 금요일에는 쉬지 않고 10km를 완주하였다. 오랜만에 10km를 완주하고 나니 몸이 리프레쉬되는 느낌을 받았다.
성당도 이제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어 정상적인 미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나는 예전처럼 복사를 서며 신부님의 미사 집전을 도와드리고 있다. 울뜨레아도 재개되어 한 달에 한 번 모임에 참여하고 있으며 구역모임도 재개되었다.
아침저녁 출퇴근 때에 등산도 꾸준히 하고 있다. 요즈음은 해가 짧아져서 저녁 퇴근 시간에 등산을 하다 보면 하산할 때쯤은 어두워져서 약간 어려움이 있다. 동절기에는 저녁 등산을 쉴까 생각하다가 퇴근 시간을 당겨서 저녁 등산을 계속하기로 마음먹고 일단 퇴근 시간을 6시에서 5시 30분으로 앞당겼다. 해가 더 짧아지면 5시로 더 앞당겨야 될지 모르겠다.
아침저녁 등산을 할 때는 갤럭시 버즈를 귀에 꽂고 윌라 오디오북을 청취하고 있다. 나는 요즘 책을 읽지 않고 듣고 있다. 앞으로 독서를 한다고 하지 말고 청서를 한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독서와 청서는 서로 장단점이 있다. 누군가는 청서는 독서의 범주에 포함하지 않고 최소한 글은 눈으로 읽어야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막상 청서를 해 보니 이 또한 독서 못지않게 글을 접하는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독서와 청서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글을 받아들이는 속도의 차이라는 생각이 든다. 독서는 내가 원하면 빨리 읽을 수도 있고 느리게 읽을 수도 있다. 글의 내용을 좀 더 음미하기 위하여 잠깐 멈추었다가 읽을 수도 있다. 물론 청서를 할 때에도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 잠시 멈출 수는 있지만 독서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멈추는 행위와는 큰 차이가 있다. 청서를 하다가 일시정지 버튼을 의도적으로 눌러 멈추게 되면 이미 뇌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던 나의 사고는 그 궤도를 벗어나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청서는 독서의 장점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그러나 청서의 장점도 있다. 청서는 성우가 읽어 주는 속도에 맞추어 정해진 시간에 책 속의 모든 글을 들을 수 있다. 이렇게 글을 들을 때는 내가 책 속의 내용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않았더라도 글은 계속하여 흘러가서 내가 이해하지 못 한 부분이 있어도 그대로 지나가지만 그 덕분에 많은 책을 들을 수 있다.
나는 하루에 두 시간 정도 등산을 하거나 산책을 할 때에 청서를 하다 보니 접하게 되는 책의 양이 독서를 할 때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아졌다. 또한 성우가 각자의 배역을 맡아 책을 읽어 주어 독서를 할 때 보다 책의 내용을 좀 더 실감 나게 받아들이게 된다. 아울러 책 구매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장점도 빼놓을 수 없다.
책도 너무 많이 듣다 보니 따분해질 수 있어서 장르를 바꾸어 가며 듣고 있다. 소설을 듣고 나서는 자기 계발서를 듣고 다음에는 과학 관련 서적을 듣는 식이다. 최근에 내가 들은 책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토지', '노인과 바다', '소마', '부의 추월차선', '역행자', '부자의 그릇', '오십에 읽는 장자', '김형석의 인생 문답', '왜 아가리로만 할까?', '한산', '브루투스의 심장', '나는 4시간만 일한다', '파친코', '50대에 도전해서 부자 되는 법', '메타버스 새로운 기회' 등이다. 직접 내가 들은 책 제목을 적어 보니 생각보다 많은 책을 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지금도 새로운 책을 계속 듣고 있다. 그동안 독서를 하면서 읽은 책과 비교하면 정말로 많은 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무엇으로 살아왔는가? 6개월 전에 이 제목을 적어 놓을 때의 생각은 어떠하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지금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자면 나는 어떤 특정된 무엇으로 살아온 것이 아니라 위에 적은 것과 같은 일상으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삶은 어떤 특정한 것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많은 일을 다양한 방법으로 해결하고 행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나하나의 소소한 일상이 모여 우리 삶의 대서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