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한국방송통신대학교'를 검색하고 아래로 내리면 내가 '브런치 추천작가'로 소개되고 있다. 마치 방송대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여서 살짝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싫지는 않다.
이번 학기에 방송대에서 수업하는 과목은 총 6과목이다. 각 과목별로 15개의 강의가 제공된다. 한 학기에 90개의 강의를 들어야 하는 과정이다. 그러니 1년에 2학기로 계산하면 나는 1년에 180개의 강의를 듣는다. 매년 180개의 강의를 들으며 나의 삶이 조금씩 나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이전에는 방송대에서 제공하는 강의는 학습 평가에 적용되지 않았었는데 작년부터 일부 과목에 대하여 형성평가라는 제도가 생겼다. 형성평가는 한 강의의 80% 이상을 들으면 20점을 부여하는 제도이다. 아마도 강의의 중요성을 높이고자 하는 방송대의 새로운 정책일 거라고 생각한다. 작년에 시범적으로 일부 과목에 적용하였던 형성평가 제도가 올해부터는 전 과목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강의를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고 강의를 듣지 못하면 20점을 얻을 수 없다는 어려움은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강의만 제대로 들으면 별도의 평가 과정 없이 20점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옛날에 대학 다닐 때에 출석 점수를 받는 것과 비슷한 제도라도 본다.
방송대에서 과목당 만점은 100점으로 책정되어 있어서 형성평가 20점을 제외하면 80점의 평가를 더 받아야 한다. 형성평가를 제외한 나머지 80점은 중간평가 30점과 기말평가 50점으로 나뉘어 있다. 중간평가는 주로 출석수업과 과제물 제출로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일부 과목은 출석수업이 없이 과제물 제출로만 이루어지고 있다. 나의 경우에 이번 학기에는 총 6과목 중에 3과목은 출석수업을 하고 나머지 3과목은 과제물 제출로만 중간평가가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방송대에서 점수를 얻기가 가장 힘든 평가가 기말평가이다. 기말평가는 50점으로 점수 배분도 가장 클뿐더러 더 큰 어려움은 평가가 객관식 시험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대학에서 평가를 할 때에 객관식 시험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에 방송대의 기말평가 방식은 다소 특이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는 객관식 시험이 주관식 시험보다 쉽지 않냐고 할 수 있겠으나 그게 그렇지 않다. 주관식 시험에서는 주어진 문제를 정확히 알지 못할 때에 문제의 주변부 내용이라도 시험지에 써서 제출하면 교수님이 동정 점수라도 줄 수 있는데 객관식 시험에서는 그렇지 않다. 사지선다형에서는 틀리면 그대로 틀리는 것이다. 어떠한 방식으로도 동정 점수를 줄 수가 없다.
한마디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점수를 딸 수가 없다. 점수를 따지 못 하면 졸업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30여 년 전에 방송대에 다닐 때는 방송대에 입학하여 정상적인 기간에 졸업하는 비율이 10%도 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객관식 시험 때문이었다. 이렇게 어려운 기말 객관식 시험이 종전에는 70점이 배당되어 있던 것이 올해부터 50점으로 줄어들고 형성평가로 20점을 얻을 수 있게 되었으니 앞으로의 졸업률이 조금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렇다고 중간평가가 쉬운 것은 아니다. 중간평가는 주관식 평가이다. 출석수업을 듣고 과제물을 제출하면 과제물의 내용이 어느 정도만 되면 보통 기본점수는 받을 수 있지만 어려운 기말고사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중간고사에서 고득점을 받아야 하는데 그것이 어렵다.
주관식 문제는 평가도 주관적으로 한다. 내 생각에는 과제물을 잘 썼다고 제출했는데 실제 점수는 적게 나오는 경우도 있고 시간이 없어서 과제물을 대충 작성해서 냈는데도 높은 점수를 받는 경우가 있다. 기본적으로는 과제물의 내용이 점수를 결정하는 중요 요소이겠지만 실제로 점수가 매겨지는 것은 평가자의 주관적 관점이 많이 작용하는 것이 실상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과 교류를 하게 된다. 나는 항상 내 주관대로 변함없이 생활을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나에게 매우 호의적인 반면에 어떤 사람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어색할 때가 있다. 내가 행동을 똑 같이 하였음에도 이렇게 다른 반응을 받게 되는 것은 나를 대하는 타인도 주관적으로 평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내가 주관적으로 행동하고 싶다면 타인도 주관적으로 반응할 권리가 있음을 인정해 주자. 그렇게 세상은 각자의 주관을 인정해 주며 살아가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