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과 비교해 보면 내가 어릴 때는 특별히 놀 것이 없었다. 가장 많이 하고 놀았던 것이 축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축구라고 해서 지금처럼 제대로 된 축구장과 축구 골대 축구공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공터에 아무런 공만 있으면 축구가 되었다. 골대도 특별한 것이 필요 없이 커다란 돌 두 개를 가져다 놓으면 그것이 골대가 되었다.
특별한 규칙도 없이 그저 골을 몰고 가서 상대방 골대로 설정해 놓은 두 개의 돌 사이로 차 넣으면 이기는 게임이다. 그러니 당시 축구게임에 참가한 친구들은 골을 쫒아서 뛰어다니다가 어찌어찌하여 두 개의 돌 사이로 공이 지나가면 얼싸안고 환호하였다.
당시의 축구에서는 공을 멀리 찰 수 있는 친구가 가장 인기가 있었다. 공을 멀리 차서 상대의 골대에 가능한 가깝게 공을 갖다 놓으면 골인을 시킬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상대방 골대 앞에 자리 잡고 있다가 자기 편의 친구가 공을 멀리 차 주면 그 공을 잡아서 바로 골대에 골인을 시켜버리는 친구도 있었다.
축구에 특별한 룰이 없는 때였지만 한 가지 규칙은 지켜졌는데 그것은 핸드링이었다. 축구가 발로 하는 게임이다 보니 손으로 잡아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손으로 잡거나 공이 손에 맞으면 반칙으로 공이 상대방에게 넘어간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처럼 정교하게 핸들링 반칙이 적용되었던 것은 아니다. 손뿐만 아니라 팔에 닿아도 핸들링이라든지 고의가 아닌 상태에서 팔에 닿았을 때는 핸들링 반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든지 하는 정교한 규칙은 없었다. 단지 공이 손바닥에 닿으면 핸들링 반칙이다 라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대학교에 가서 교양 과목으로 체육 시간에 축구를 하게 되었다. 옛날부터 해 오던 습관으로 열심히 뛰며 소리를 질러가며 공을 차는 데 골을 넣을 기회가 생겼다. 그때에도 골을 넣을 욕심에 골대 가까이에서 공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드디어 기회가 왔다. 서로 뒤엉켜 공을 차는 와중에 골대 바로 앞에 있던 내 앞으로 공이 날라 오는 것이 아닌가. 바로 이 때다 하여 공을 잡아 골대 안으로 힘껏 걷어찼다. 골은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나는 환호를 지르며 골 세리머니를 하였다.
바로 그때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심판은 내가 반칙을 하여서 이 골은 무효라고 하였다. 반칙이라니 내가 상대방을 붙잡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손으로 공을 잡은 것도 아닌데 무슨 반칙이란 말인가. 나는 내 앞으로 온 공을 그동안 해 오던 대로 힘껏 차서 골대 안으로 넣은 행위밖에 하지 않았는데 무슨 반칙이란 말인가.
나는 씩씩거리며 심판에게 항의를 하였는데 심판은 내 반칙이 오프사이드 란다. 오프사이드가 뭔데.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용어가 심판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나는 오프사이드가 뭐냐고 따졌지만 나의 무식함만 드러내고 내 골은 인정되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오프사이드에 대한 규칙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대충 상대 선수보다 너무 일찍 들어가 있다가 골을 잡아서 골인을 하면 안 된다는 정도로 알고 있으나 축구 경기를 보는 도중에 심판이 오프사이드 반칙을 선언하기 전에 내가 그 반칙을 인지하여 우리 편이나 상대 편이 반칙을 하였구나 하고 찾아내지는 못 한다.
나중에 오프사이드에 대해 찾아보니 그동안 오프사이드에 대한 규칙도 여러 번 변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복잡한 오프사이드 규칙을 알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이 있음에도 이미 오프사이드에 대한 규칙을 꿰고 있으며 심지어 오프사이드를 의도적으로 유도하는 축구 전술을 펴서 상대방 선수가 반칙을 하도록 유도하기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분명 축구뿐만 아니라 모든 게임에는 그 안에 룰이 존재한다. 그 룰을 알아야 게임을 할 수 있다. 룰을 모르고 게임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나는 잡기에 능하지 않다. 그렇다고 내가 머리가 나빠서 잡기를 못 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학창 시절에 공부를 할 때는 항상 상위권에 속해 왔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내 머리가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잡기를 잘 못한다.
내가 국민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고스톱을 처음 해 본 것이 대학에서 엠티를 가서 했던 것 같다. 나는 고스톱을 할 줄 모른다고 그 게임에 참가하지 않으려 하자 그냥 화투 짝만 맞춰서 하면 나중에 자신들이 점수 계산을 다 해준다고 함께 하자고 계속 권하여 친구들과의 우의를 돈독히 하는 차원에서 참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게임의 룰을 모르고 참가한 게임에서 번번이 패하게 되고 내 자금은 점점 줄어들어 지갑이 텅 비게 되었다. 친목을 목적으로 참가한 게임이었으나 게임의 룰도 모르고 참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바르고 착하게 사는 사람을 두고 우리는 저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야 라고 한다. 그러나 내 사무실이 있는 이곳은 법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사무실이 법원과 검찰청이 있는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보니 주변이 온통 법률 사무소들이 들어 차 있다.
점심에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가 보면 검사, 판사, 변호사, 법무사 등 법과 관련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옛날 금광이 발견되면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처럼 이곳은 법을 매개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살아가고 있다. 한 마디로 법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사람 들이다.
법은 사람이 살아가는 삶이라는 게임의 룰이다. 룰을 모르고 게임을 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법을 모르는 상태에서 삶이라는 게임을 하고 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방식대로 바르게 산다고 살아가다가도 어느 날 오프사이드 반칙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를 듣는 경우가 있다. 무엇이 잘못인지 알지도 못 한 채 소송에 휘말려서 내 사무실 주위에 있는 법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삶이라는 게임의 룰인 법이라는 것이 너무 복잡해서 모든 법을 다 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으나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활법률 정도는 최소한 알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법을 모르고 살아가다 보면 이미 법을 꿰고 있는 누군가의 의도적인 태클에 걸려서 범법자가 되어 정신적 경제적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요즈음은 생활법률에 대한 내용을 주제로 하는 각종 콘텐츠를 쉽게 접할 수 있다. 당장 이곳 브런치에도 많은 법률 전문가들이 글을 올려놓았으며 유튜브를 보면 수많은 콘텐츠가 올라와 있다. 이제 법에 대하여도 관심을 가질 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