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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trea May 02. 2019

1. 나를 갑갑하게 하는 ‘옷’

경고: 읽고 싶은 사람만 읽으세요.

사람에 따라서 옷의 정의는 달라진다.
어떤 이는 다른 이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고,
어떤 이는 자신의 신체를 도드라져 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옷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옷은 그저 내 몸을 감싸는 것에 불가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가장 후자에 속하고,
변변찮은 몸뚱이를 가리기 위한 수단이자 스스로가 편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여자라고 태어나긴 했으나 쇼핑에 그다지 관심이 없고,
유일한 관심사라곤 책과 액세서리, 필기구 정도이다.
여자 친구들과 옷 쇼핑을 하면 맞춰 줄 수는 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어서 쇼핑 한두 시간 후면 나는 틀림없이 방전이 된다.
그것이 나에게 있어선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내 손으로 옷을 사 본 적이 별로 없다.
늘 엄마에게 질질 끌려다니며 이 옷 저 옷을 강제로 피팅당한 후에야
옷을 겨우 고른다.
  
엄마는 나에게 늘 물욕이 없어도 너무 없다며
아프리카에 가서 살면 딱 어울린다고 한다.
난 그럴 때마다 늘 아프리카 비하 발언이라고 퉁퉁거리지만
실제로 캄보디아에서 살 때 난 옷을 정말 내 멋대로 입고 다녔었다.
그냥 집에 있는 옷으로 내 멋대로 걸치고 다녀서 히피족이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패션센스는 웬만한 다른 곳들보다 뛰어나다고 한다.
그 이유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옷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혹은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외국인들이 오면 한국인 대부분이
깔끔하고 멋스럽게 잘 입는다고 느끼거나
혹은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한 옷을 입고 다닌다고 느끼기도 한단다.
  
이렇게 극과 극으로 나뉘는 데는
어디서 누구를 마주 했느냐에 따라 좌우되긴 하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느낌의 옷들을 입고 다니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지낼 때면 나 역시 멋대로 다니고 싶지만,
엄마의 눈치와 사람들의 눈치가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냥 내가 편하면 그만이고, 감싸주는 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국에선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구나 싶어 진다.
또 그것들이 날 이상하게 갑갑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나에겐 왜 이토록 갑갑하게 다가오며 나만 동떨어진 사람이 된 기분이 들게 하는지 의문이다.
나도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자라왔건만
나의 가치관이 다른 이들과 왜 이렇게 다를까 싶어 지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 것이 아닌가 싶어 진다.
  
아마도 그것은 부모님으로부터 매일같이 들었던
옷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용도로 깔끔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대한 반항심과
그리고 날 때부터 많지 않았던 물욕이 합쳐져
언젠가부터 나의 가치관이 되어 버린 게 아닐까 한다.
  
나를 비롯해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자랐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며 살아왔기에
그것에 대한 반항적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이런 생각의 사회가 된 것이 아닐까
나름의 생각을 해본다.
  
결국엔 어떤 것도 맞고 틀린 것은 없는 그저
다를 뿐이지만 문득 옷에서 느끼는 갑갑함이 언젠가부터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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