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4 단어와 태도
맥락을 보지 않고 단어에만 꽂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하나의 단어에는 무수한 의미가 담겨 있다. 때로는 본래의 의미와 다르게 사용되기도 하고, 하나의 단어가 여러 층위의 해석을 품기도 한다. 대부분의 단어는 맥락 없이 그 의미를 단정 짓기 어렵다. 심지어 형용사조차 상황과 관계 속에서 전혀 다른 뉘앙스를 갖는다.
‘개새끼’라는 말이 비속어에 속하더라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그저 개의 새끼를 뜻할 뿐이다. 결국 단어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단어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놓인 자리와 상황이다. 그럼에도 맥락보다 단어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언어를 하나의 고정된 의미로 이해하려 한다. 그 편이 사고의 부담을 덜어주고, 뇌에 과부하를 주지 않는 편안함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맥락 없는 단어는 완전한 문장이 될 수 없다. 언어는 단어의 집합이 아니라, 관계의 구조라서다.
같은 말을 듣고도 사람들이 서로 다르게 받아들이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경험과 시선을 통해 말과 글을 해석한다. 그래서 맥락조차 완벽할 수는 없다. 아무리 설명해도, 상대가 살아온 세계까지 온전히 공유할 수는 없는 이유에서다.
그렇기에 소통에는 감정적 반응보다 이성적 여유가 필요하다. 문자는 본래 감정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는 도구다. 표정, 말투, 침묵의 길이, 미묘한 떨림 같은 것들을 온전히 전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단어에 즉각 반응하기 전에, 한 걸음 물러나 이렇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이 사람이 진심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단어에 즉각 반응하는 태도는 오해를 낳지만, 맥락을 이해하려는 태도와 질문은 대화를 이어지게 한다. 질문은 멍청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 싶은 의지가 있는 사람들만이 행하는 행위이며, 단정 짓는 사람들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의 도구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질문을 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는 말을 많이 아끼는 편이다. 질문 없이 상대를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이해하려는 마음보다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려는 욕구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좋은 소통이란 말을 잘하는 능력보다, 서둘러 단정하지 않은 태도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감정 없이 말해도 화가 난 것처럼 보이고, 어떤 사람은 감정을 가득 담아 말해도 무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억양, 뉘앙스, 그리고 그 사람이 놓인 환경에 따라 같은 말과 글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된다. 쉽게 드러난 감정만으로 상대를 판단하려 하면, 그 의중을 정확히 읽어내기 어렵고 오해에 빠지기 쉽다.
그 과정에서 성격이 유연한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지만,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부정적이거나 어려운 환경에 놓인 사람, 혹은 자존감이 낮아 자신을 작게 평가하는 사람은 사소한 말에서도 비난이나 공격을 느낄 수 있다. 반대로 권위의식이 강한 사람은 감정 없이 자신의 입장을 표현하는 말을 자신을 넘어서려는 오만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래서 특히 소통이 중요한 상황에서는, 감정보다 이성적인 판단이 관계를 지키는 데 더 도움이 된다.
그럼에도 사실, 세상 모든 사람의 시선을 이해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 상대가 나에게 소중한 존재라면 인내와 이해가 필요하겠지만, 사회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을 깊이 이해한다는 것은 신을 제외하고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통이 원활하게 되는 상대는 나와 결이 맞는 사람이고, 소통이 어려운 상대는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굳이 옳고 그름을 가르기보다, 다름을 인정하는 쪽이 마음을 덜 소모하게 만든다. 가능한 만큼만 이해하고, 가능한 만큼만 받아들이는 것. 어쩌면 그것이 사회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며 살아가는 가장 현실적인 태도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보면, 소통의 실패조차도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드는 하나의 과정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