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맨유
꼭 축구가 아니더라도, 어떤 스포츠에서든 강팀과 약팀의 구분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스포츠란 일정한 규칙 속에서 서로서로 실력을 겨루는 행위이므로 결과, 그러니까 성적과 순위가 존재하고 승리하면, 그리고 대회에서 우승한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강한 팀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참가하는 모든 대회의 우승 후보로 꼽히곤 했으며 실제로 98-99시즌엔 *트레블을 달성하기도 했다.
*트레블 : 한 팀이 한 시즌 동안 주요 3개 대회에서 타이틀을 차지했을 때를 이르는 말. 유럽 축구에서는 자국 리그 및 컵 대회, 챔피언스리그의 3개 대회 우승을 의미한다.
트레블을 달성했던 시기 감독은 알렉스 퍼거슨이었고 당시 팀의 주축은 데이비드 베컴, 라이언 긱스, 로이 킨 등이었다. 4-4-2 포메이션에서 드와이트 요크와 앤디 콜의 투 톱은 물론 야프 스탐과 게리 네빌의 단단한 수비진도 인상 깊었다. 이들은 당시 리그에서 강력한 라이벌 아스널 FC를 승점 1점 차로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고, FA컵에서는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결승에서 2대0으로 꺾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는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0대1로 끌려가다가 후반 추가 시간, 불과 3분 동안 테디 셰링엄과 솔샤르의 극적인 연속골로 대역전극을 완성했다. 맨유 팬들은 이날의 경기를 ‘캄프 누의 기적’이라고도 부른다.
알렉스 퍼거슨이 이끌던 맨유는 말 그대로 최전성기를 구가했다. 리그 우승 13회, FA컵 우승 5회,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 등 수십 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던 시기이다. 그 누구도 적수가 되어 보이지 않던, 절대 질 것 같지 않던 팀이었달까. 안타까운 건 퍼거슨 은퇴 이후 10년 넘게 리그 우승이 없다는 사실이다. 어떤 팀도 맨유와의 승부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걸핏하면 상대에게 압도당하기 일쑤다. 그때 그 시절의 맨유는, 지금은 없다.
여기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포인트가 있다. 라이벌 팀의 팬들은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난 외치려 한다. 맨유의 전성기는 끝났지만, 맨유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성기는, 돌아오는 거야!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나의 인생에서 굳이 전성기를 꼽자면 아마 대학교 신입생 때가 아니었을까. 지옥 같은 수험생 시절을 벗어나 마음껏 하고픈 모든 걸 행하던 그 시절. 물론 군입대로 전성기는 단 일 년에 그치긴 했지만 여태껏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걸 보면 참 그때가 좋았나 보다. 전성기라 말하기에 아무런 손색이 없다.
평생지기가 될 이들을 만났고, 그들과 함께면 늘 나의 하루엔 웃음이 가득했다. 행복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따위 대신 우린 현재,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사랑했다. ‘카르페디엠’이란 단어를 사람으로 만들면 바로 우리가 나타났을 거다. 요즘 대학생들이 보면 한심하게 여겼을 게 분명하다. 20대가 된 제자들만 봐도 나의 20대와는 너무도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요즘 대학생들은 학기 내내 용돈을 모아 방학이면 해외여행도 가고 소위 ‘스펙쌓기’라는 것도 하던데, 우리의 스무 살엔 그런 게 없었다. 돈만 있으면 그게 누구 돈이든 상관없이 하나둘 모여 밤을 노래했고, 언제부턴가 우리가 가진 모토는 ‘내일 걱정은 내일모레’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걱정 없이 보냈던 일 년은 내 인생 최고의 전성기였다.
전성기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가 따로 있기는 하지만 굳이 새로운 정의를 내려보자면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해도 될 듯하다. 스포츠 구단들은 전성기 시절 모두 성적이 좋았을 테니 선수들이나 팬들은 행복에 겨운 하루하루를 보내지 않았을까? 요즘 학생들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요!’라며 반박할 수도 있겠으나 성적이 좋으면 꽤 행복하다고, 나는 다시 반박할 수 있다. 성적은 노력이 반영된 결과라니까?
여기서 다시 한번 절대 잊지 말아야 할 포인트를 언급해보자. 나의 전성기는 끝났지만, 나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음을. 전성기는, 돌아오는 거야! 인생에 단 한 번뿐이었다면 누구도 열심히 노력하며 살 필요가 없겠으나 나의 행복한 시절은 다시 등장할 것이고 그래서 나는 살아가고 있다. 반드시 다시 돌아올 전성기를 위하여.
어쨌거나, 맨유는 전성기는커녕 암흑기를 살아가고 있지만 반드시 그들도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리라 믿는다. 다만 전성기가 정선 전씨 38대손 ‘전성기씨’여서 호출하면 당장 눈앞에 달려온다거나 하진 않을 테니 팬들의 행복을 되찾기 위해 있는 힘껏 애써주길 바란다. 그때 나도 나의 새로운 전성기를 살아갈 것임을 약속하며 글로리, 글로리 맨 유나이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