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골 때리는 인문학
고등학교 교사로서 학생들과 상담할 때 어려운 것 중 하나는 학생들 개개인의 미래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진로 상담이라고들 하죠. 대학 학과 선택이 직업 선택에 큰 영향을 주는 대한민국 사회의 특성상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만 하는 부담감이 있습니다.
직업이란 뭘까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 이런 사전적 정의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만 접근하기엔 현대 사회의 직업 세계는 그 범위나 의미가 굉장히 넓다고 할 수 있습니다.
1666년 9월, 런던의 작은 빵집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빵집을 삽시간에 태워버린 불은 곳곳으로 빠르게 번져나갔고 런던을 초토화하고 말았죠. 화재가 진압된 이후 당대 최고의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은 성 바오로 대성당 재건축의 책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작업이 한창 이뤄지던 어느 날, 세 명의 벽돌공이 렌의 시야에 잡힙니다. 그리고 각자에게 같은 질문을 하죠.
“자네는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한 사람은 “벽돌을 쌓고 있습니다.”라고 답했고, 다음 사람은 “성당을 짓고 있죠.”라고 답했으며, 마지막 사람은 “하느님의 성전을 짓고 있습니다.”라는 답을 했습니다.
이 유명한 일화는 ‘누구든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사명감을 지녀야 한다’란 메시지로 통용되곤 했습니다만, 세상이 달라지면서 이를 받아들이는 방식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직업에 대한 사람들의 가치관이 변하고 있거든요.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 딱 그 정도로 여길 수도 있고,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매달려야 하는 일이라 여기는 이들도 있습니다. 더불어 ‘하느님의 성전을 짓고 있다’라 답한 벽돌공처럼 자기 직업에 대한 대단한 사명감을 지닌 이들도 있죠. 어느 것 하나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고요? 이젠 ‘평생직장’의 개념이 많이 사라지고 있거든요. 이직이 잦은 이들을 일컫는 ‘잡호핑 job-hopping족’이란 표현이 등장했을 정도입니다. 게다가 동시에 여러 직업을 갖는 ‘N잡러’라는 말도 있죠.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자아실현을 위해 애쓰는 이들도 존재합니다.
자, 이제 선생님이 왜 진로 상담을 어려워하는지 아시겠죠? 질문 자체가 바뀌어야 하거든요.
“여러분은 어떤 직업을 갖고 싶으신가요? 아니, 앞으로 살아가며 어떤 직업들을 경험하고 싶으신가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무도실무관>은 평소엔 동네 친구들과 게임을 즐기고 가끔 아버지의 치킨집 배달을 도우며 그냥저냥 재미만 좇으며 살던 도파민 중독자 ‘이정도’란 인물이 우연히 전자발찌 대상자의 범죄를 제압하면서 ‘무도실무관’이란 직업을 제안받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예고편을 접하자마자 어쩌면 우리 모두의 반응이었을 것만 같은 그 반응, ‘무도실무관이 대체 뭐야?’라는 궁금증이 저에게도 피어났고 자세히 알아보니 정말로 존재하는 직업이더라고요.
무도실무관은 법무부 소속 무기계약직 공무직으로, 전자발찌 착용 처분을 받은 대상자들을 24시간 밀착 감시하면서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역할을 합니다. 주로 무술 유단자들이 선발되며 보호관찰관과 2인 1조로 움직이죠. 영화가 한창 이슈이던 당시 우리나라 무도실무관은 160여 명, 보호관찰관은 380여 명 정도로 파악되었습니다. 반면 전자발찌 착용자는 무려 4,000명이 넘었다고 하네요.
이분들의 존재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시민들의 안전’입니다. 발생 가능한 피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하여 밤낮없이 고군분투하는 이러한 분들이 있기에, 우리가 매일 밤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진정으로 지역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직업이란 생각도 드네요.
무도실무관은 무기계약직이므로 미래가 보장된 직업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만, 이를 통해 직업적 경험을 쌓음으로써 관련 직업군 내 다른 직장을 구하는 데 적잖은 도움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커리어를 쌓는달까요? 교정기관의 감호 실무관,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청원경찰, 법원 보안 관리대 등으로 이직을 하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아마 실제 무도실무관이란 직업을 경험했거나 관련 정보를 잘 아는 분들은 ‘괜히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해서 애들 인생 망치려고 하는 거야?’라는 말씀을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어오긴 했습니다) 대한민국 청년들은 취업의 문을 통과하기 위해 격한 투쟁과 경쟁을 겪어야만 하거든요. 그렇게 겨우겨우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적은 임금, 과도한 노동, 불안정한 고용 환경으로 인해 고통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좀 더 안정적인 혹은 보수가 높은 직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점점 짙어지게 된 것이죠.
제가 이 글을 통해 말씀드리려 하는 건 ‘무도실무관에 지원하라’라는 게 아닙니다. 이 사회엔 직업의 세계가 다양하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 또한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 이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반드시 특정 전문직을 선택해야만 살 수 있는 사회는 아니란 거죠. 한 가지 직업만 선택해서 살아가야 한다고 했을 때, 실제로 경험하고 나니 그 직업과 맞지 않는 나를 보게 된다면, 그렇다고 직장을 옮기자니 그간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너무 아깝게 느껴진다면, 아마 여러분의 나날은 불행으로 가득 차게 될지 모릅니다.
게다가 말이죠, 10대 청소년의 직업 선택은 지금 당장 이뤄져야 하는 게 아닙니다. 대략 10년쯤 지난 뒤에야 여러분의 직업 세계가 펼쳐지지 않을까요? 매일 매일 새로운 트렌드가 쏟아지는 요즘을 보더라도 그때의 세상은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장면들로 가득 차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과거와 현재만 살아가는 어른들이 제시하는 기준을 무작정 따를 필요가 없겠죠. 우린 스스로 삶을 개척하고 선택해야만 합니다. 어른들이 대신 살아주지 않거든요. 다름 아니라, 여러분의 인생입니다.
자, 이제 숙제를 드리도록 할게요. (물론 검사는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진로 탐색을 위해 가장 먼저 거쳐야 할 첫 번째 단계는 미래를 예측하는 활동입니다. 계속해서 변화하는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살아갈지를 판단하기 위해선 당연히 ‘세상이 어떻게 변화할까?’를 먼저 고민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아주 차분하게, 미래 세계를 상상하는 연습을 해봅시다. 숙제 치곤 너무 간단하죠? 학교 선생님들이 이런 숙제만 내주시면 정말 좋을 텐데……. 참,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머릿속에 그려보기에 살짝 어려움이 따를 수 있으려나요? 그렇다면, 다음에 이어질 글을 읽어보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실 거예요!
(2)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