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골 때리는 인문학
대한민국 남성들은 군대 얘길 좋아한다고 하는데, 그거 맞습니다. 너무 재밌어요! 심지어 군대에서 축구했던 경험까지 풀고자 하면 오늘 밤새 해도 다 못합니다. 여러분이 좀 거부감이 들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조심스레 딱 한 가지만 언급하자면, ‘군대에 있을 때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 얘기! 청소년 여러분은 군대 경험은 없으실 테니, 지금 당장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해볼까요?
치킨, 피자, 짜장면, 혹은 마라탕……. 예상 가능한 음식 목록이 튀어나오겠죠? 그런데 전 누가 뭐라 해도 ‘어머니가 끓여주신 김치찌개’가 무조건 1등입니다. 군대에서도 그랬죠. 휴가를 나가면 가장 먹고 싶었던 그 음식, 어머니의 김치찌개는 지금도 여전히 제겐 1등입니다. 아마도 이건 손맛과 정성이 담겨 있어서이지 않을까요? 물론 저희 어머니 요리 솜씨가 남다르신 것도 있습니다만.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논나>는 돌아가신 어머니와 할머니를 그리워하던 ‘조’라는 인물이 뉴욕 스태튼 아일랜드에 어머니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을 개업하며 펼쳐지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정확하게는 차리기 전, 차리면서, 차린 이후까지 모두 포함되겠군요. 더 정확하게는 사랑하는 이들과의 추억, 그들을 잃은 아픔, 그들을 기리는 마음이라고 할 수도 있고요. 조는 식당을 차리기 전 지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난 정말 여기가 밥만 먹는 곳 이상이면 좋겠어. 여기 오면 가족이 된 것 같으면 좋겠다고.”
이 영화는 다름 아니라, 가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도 이 챕터를 읽으며 여러분의 가족, 그리고 소중한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었으면 합니다.
작품의 제목인 ‘논나’는 이탈리아어로 ‘할머니’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 초반부, 할머니는 어린 조에게 자신이 직접 끓인 그레이비 소스를 맛보게 하는데요, 이탈리아 가정에서는 ‘선데이 그레이비’라 하여 토마토를 뭉근히 끓여 바질의 향을 입힌 토마토 스튜를 일요일마다 즐긴다고 합니다. 한 입 먹자마자 완벽하다 말하는 조에게 할머니는 이런 답을 하죠.
“A tavola non si invecchia!”
직역하면 ‘밥상에서는 늙지 않는다’란 의미인데, 이탈리아 문화에서 식사 시간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순간인지를 보여주는 속담입니다. 온 가족이 모여 식사를 즐기며 건강, 젊음, 활력을 공유하는 시간인 셈이죠. 물론 맛있는 음식은 기본! 조의 기억엔 할머니가 해준 음식의 맛뿐 아니라 모두가 함께하는 ‘공동체 문화’가 선명히 새겨졌을 겁니다. 그리고 이는 비단 이탈리아 문화에만 적용되는 사실은 아니죠. 우리도 기억하지 않나요? 어린 시절 일가친척들이 모여 함께 식사를 즐겼던 그때의 장면을. 또 이건 그저 혈연관계에 있는 이들과의 기억인 것만도 아니죠. 제가 어렸을 땐 생일파티에 늘 동네 친구들이 다 같이 모여 축하해주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케이크, 치킨, 피자 등(그땐 마라탕이 없었어요…….) 평소에 먹고 싶던 모든 음식이 죄다 깔려 있었죠.
음식은 그저 배를 채운다는 목적으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감정, 추억, 관계 등 많은 것을 담고 있죠. 그리고 그 많은 것 중 하나가 바로 ‘함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비싸고 맛난 음식이라도 혼자 먹으면 제맛이 안 나거든요. 반대로,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에 컵라면을 먹는다 해도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즐기는 것이라면 진수성찬이 따로 없기도 하죠.
일본 후쿠이현의 사카이시에는 매년 농업 축제가 열립니다. 일본 농촌사회의 공동체 정신을 담고 있는 행사라 할 수 있죠. ‘효코노코메’라 해서 오곡의 풍작을 기원하는 농촌사회의 문화를 담은 축제도 있죠. 축제가 열리면 온 마을 사람이 모여 ‘고메카치’라는, 쌀을 찧는 의식을 통해 모두가 함께 일하고 함께 수확하는 의미를 되새깁니다. 그리고 곱게 빻아진 쌀은 경단으로 만들어 마을 사람들이 나눠 먹는다고 하네요! 이처럼 일본에는 음식을 통한 공동체 문화가 굉장히 발달해있습니다. 일본의 전통 식문화를 ‘와쇼쿠’라 부르는데, 한자로는 ‘和食’라고 표기합니다. ‘조화로운 음식’이란 의미죠. 단순히 음식 하나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식재료 생산 및 가공, 조리와 식사, 음식 관련 예의와 공동체 의식 및 풍습까지를 모두 포함한 개념입니다. 2013년에 와쇼쿠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튀르키예에는 ‘쿠르반 바이람’, 우리말로 ‘희생절’이라 불리는 명절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아들 이스마엘을 제물로 바친 것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슬람력에서 가장 중요한 축제이기도 합니다. 이때는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친척들이 한곳으로 모여 소나 양을 잡아먹습니다. 그런데 정말 특이했던 건, 가축의 주인은 고기의 1/3만 가져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1/3은 친척들에게 나눠주고, 나머지는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문화가 있다고 하네요. 튀르키예에는 ‘케슈케크 Keşkek’라는 전통 음식도 있습니다. 결혼식과 같은 행사가 있는 날에 밀과 고기를 커다란 가마솥에 요리해서 먹는 케슈케크는 2011년 관련 문화가 유네스코에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죠. 무엇보다 모두가 함께 만들고 나눠 먹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전통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우리나라에도 있겠죠? 겨우내 먹을 김치를 담그는 문화, 김장 문화는 2013년 12월 5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함께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전통은 공동체 의식, ‘함께’라는 의미를 더욱 부각하는 관습입니다.
1241년 이규보가 쓴 동국이상국집에 처음 김장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무를 소금에 절여 겨울을 대비한다는 기록이죠. 이는 천 년 가까이 우리 역사에서 빠짐없이 이어졌고, 지금도 해마다 11월쯤이 되면 온 가족이 모여 김장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유네스코에서는 우리 김장 문화를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김장의 집단적 실천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재확인시켜주며 가족 간의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이다. 김장은 또한 많은 한국인들에게 인류 공동체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중요한 사건이다……’
모든 가정이 길고 긴 겨울을 함께 이겨내기 위해 시작된 김장 문화. 김치라는 음식을 통해 전 세계인들에게 공동체 의식이 무엇인지를 전해주는 위대한 우리의 유산입니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