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번째 이야기
학부모님께 들려주고픈 자녀 교육의 비밀
- 여든 번째 이야기
그런 말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고.
지랄 맞은 녀석들은 어디에나 늘 존재한다!
대충 감이 오실 겁니다.
학교에도 지랄 맞은 녀석들이
정말 언제나, 빠지지 않고 존재합니다.
흡연 문제는 굉장히 흔한 사건일 정도로
갈수록 각양각색의 문제들이 생겨나곤 하죠.
그런데 뭐,
지랄 맞으면 또 어떻습니까.
사고를 치더라도
잘못된 걸 잘못된 거라고 잘 인지하면,
그러면 되는 것이겠죠.
그렇게 아이들도, 교사도,
함께 성장해나가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말이죠.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기도 합니다.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랄까요?
정말 위험하고, 안타까운 존재가 있습니다.
학생 몇몇이 기숙사에서 음주를 하여
선도위원회가 열린 적이 있습니다.
위원회에는 학생과 함께 학부모님들도
함께 참석하셨죠.
“죄송하다, 가정에서 잘 교육하겠다”
와 같은 뻔하지만 꼭 필요한 이야기를 전하시고,
심지어 사죄의 눈물을 보이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부모로서의 막중한 책임감과 무게감이 전해져서
안타까움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 어머님께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학교에서 제대로 관리를 못 해서 벌어진 일 아니냐,
애가 뭔 잘못이냐,
관련자들 처벌이나 해라”
따져보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학교의 책임도 분명 있는 것이죠.
그런데 관련자에 대한 처벌은
별개의 문제이고
그 자리엔 학생 선도,
즉 아이를 바른길로 이끌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무작정 아이를 감싸기부터 하는
잘못된 모습을 보이고 계셨습니다.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똑같이
무작정 아이를 감싸기부터 하는
그런 선생님들도 계십니다.
혼을 내기보단
“괜찮아, 너를 이해해, 그럴 수 있지”
와 같은 말을 하시는데,
평소에도 늘 학생의 ‘인권’을 강조하곤 하십니다.
저는 그런 선생님들을 보며
가끔 궁금증이 생기곤 합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건가,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싶은 건가,
와 같은 의문입니다.
사랑한다면,
사회에서도
아니 세상 그 어디에서도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만큼
다른 이들에게도
그 사랑을 온전히 받을 수 있도록
다그치고,
가르치는 것
그게 교육이라 생각합니다.
교육에는 각자의 철학이 있기에
저의 교육철학이 틀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게 맞는 것 같습니다.
상대를 무너뜨리고 승리하는 것보단
‘함께 이기는 것’을 알려주는 것,
이것이 가정교육과 학교 교육의
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