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의 인물들은 지긋이 눈을 감고 있습니다.
그저 현실의 무언가를 회피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눈꺼풀로는 가로막지 못하는 저 멀리의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샤갈은 꿈꾸는 사람을 작품에 담습니다.
그들은 어떤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샤갈은 그들의 꿈으로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자 할까요.
최근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먼 과거에 마르크 샤갈 전시를 다녀왔습니다.
기억이 흐릿해졌지만 오로지 그의 작품은 되새김질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이 글을 씁니다.
그의 그림을 눈보다는 가슴으로 느끼며 마음속에 남겼기 때문입니다.
샤갈은 색감을 아주 전위적으로 쓰는 화가입니다.
아방가르드해 보이지만 여러 작품을 놓고 보면 그의 여유가 비쳐 보입니다.
그의 그림은 자유로우면서도 어수선하지 않습니다.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색감 배치와 대상의 형태는 불안한 느낌을 증폭시킵니다.
그의 색들은 불길한 꿈을
아득하지만 황홀한 마음으로
아주 오래도록 붙잡고 있는 것 같은 마음을 안겨줍니다.
샤갈은 이방인입니다.
그는 러시아에서는 유대인이었으며, 프랑스에서는 러시아인이었고,
독일 점령기에는 유대인 예술가로 박해의 대상이었으며,
미국에서는 유럽적 화가였습니다.
떠날 짐을 싸면서 그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 했으나 쉽지 않습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그의 혼종적 정체성이 그의 작품에 토대를 짓지 않았나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정착하지 못하는 불안이 그의 빨강, 파랑, 노랑, 그리고 인물들의 꿈이 되어 작품 위를 떠다닙니다.
샤갈에게 ‘그의 마을, 비텝스크’는 마음을 지탱하는 장소입니다.
그는 자신의 기억 속에 변형된 마을을 그립니다.
집은 기울고, 중력은 사라지고, 마을은 뒤집혀 떠다닙니다.
그는 20세기 초의 전쟁, 혁명, 학살의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리고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평생 그려 왔습니다.
이제 그가 무엇을 꿈꾸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어리석은 마음으로 그를 한 가지 사조에 분리시켜 보려 시도했으나
그것 또한 오랫동안 실패하였습니다.
그렇기에 그를 미학적 이방인이라고 바라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명확한 풍경이나 절대적인 색채가 없더라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샤갈이 보여 주어서 기뻤습니다.
한국에서 샤갈의 그림을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 또한 기뻤습니다.
<Debussy – Rêver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