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 고향을 가신다던 할머니의 공범자가 되었었습니다.
저는 당시에 안산에 살았습니다. 매주 토요일에는 수원에 가곤 했고요. 안산에서 수원을 가려면 아무래도 제가 사는 곳에서는 수인선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빨랐습니다. 그래서 그날도 자연스럽게 지하철에 올라탔지요. 열차가 인천에서부터 오는 만큼 이미 자리는 없었습니다. 익숙하게 적당한 공간을 찾아 선 뒤 저는 이어폰을 꼈습니다. 음악을 들으며 멍하니 핸드폰을 만지기를 얼마나 지났을까요.
갑자기 제 앞에 앉아있던 사람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여기가 수원역인가요?
무시하려다가 고개를 든 저는 머리가 하얗게 샌 할머니를 발견했습니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을 보자 무심코 대답이 나오더군요.
아니요, 수원은 다음이에요.
고맙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수로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살면서 참 많은 사람들이 도를 아느니 집안에 우환이 있니 묻고 갔거든요. 길 묻는 것 정도는 애교였지요. 하지만 수원역에서 저는, 다시 할머니를 발견하고 말았습니다.
수인선 수원역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참 깊은 곳에 있습니다. 1호선 지하철 승강장에서 또 한참을 내려가야 하지요. 바꿔 말하면 지상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한참 올라가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 많은 인파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위해 몰리는 모습은 시장통을 넘어 가끔은 위험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첫 칸과 마지막 칸에는 장애인, 노약자용 엘리베이터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시는 노인분들은 다 엘리베이터를 타셨죠.
그러나 할머니는 에스컬레이터 인파에 휩쓸려 있었습니다. 여기가 어딘가 하듯 고개를 두리번거리면서요. 누가 봐도 이 할머니는 '수원역 초행'임에 분명했습니다. 그도 그럴게, 에스컬레이터에서 다섯 발짝만 걸으면 엘리베이터였는걸요. 저는 문득 할머니가 사람에 가려서 엘리베이터를 찾지 못하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음 순간 저도 모르게 할머니의 소맷부리를 덥석 잡고 이쪽이라며 에스컬레이터 인파 속에서 끌어냈고요.
그때 저를 본 할머니의 얼굴은 그야말로 화색이었어요.
할머니는 어미를 본 오리처럼 저를 따라왔습니다. 돕고는 싶은 마음과 별개로 낯선 사람인지라 할머니 앞에서 얼굴을 굳히고 있던 제 앞에서도 그저 안도한 듯 웃고만 있었고요. 엘리베이터 안에서 저는 어색한 기류를 깨기 위해 열심히 질문을 던졌습니다.
어디 가세요?
수원역이요.
기차 타러 가세요?
네.
기차표는 예매하셨어요?
아니요...
아니요, 라는 말에 순간 머리가 띵했습니다. 토요일에 수원역에서 기차표를 예매하지 않는다는 건 입석을 타실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니까요. 어디 가시는지는 몰라도 팔순은 족히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입석이라니 마음이 찜찜했습니다.
그럼 자리가 없을지도 모르는데요?
할머니는 다 안다는 듯이 웃고 있었습니다.
그럼 기다려야지, 뭐. 갑자기 고향에 가고 싶어서 무작정 나왔거든요. 우리 아들은 가지 말랬지만......
이미 얼굴에 주름이 더 생기기도 어려울 것 같은 연배의 분이, 고향에 가고 싶다고 하시는 건 거의 반칙 수준이었죠. 지금 아니면 고향을 또 언제 가보시겠냐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자마자 저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습니다. 얼굴 모르는 할머님의 아드님, 죄송합니다. 하지만 할머니가 고향에 가시고 싶으시대잖아요. 이렇게 된 거 저는 할머니의 공범자가 되어야겠습니다, 하면서요.
저는 할머니의 고향을 여쭌 뒤 가장 빠른 시간표를 검색했습니다. 코O일 어플이 깔려있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보시다니 그 할머니도 참 운이 좋으셨다 싶습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운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1시 15분에 열차가 있어요. 자리도 있네요.
할머니의 표정은 한껏 더 밝아졌습니다. 저는 할머니의 지갑 사정을 여쭈었습니다. 가져온 돈이 있으신지, 현금인지 카드인지, 연세는 또 어떤지. 경로우대까지 꼭꼭 챙겨야지요. 모든 게 일사천리로 이루어졌습니다.
역에서 예매를 마친 뒤, 저는 표와 함께 카드를 돌려드리며 필요한 것을 꼼꼼히 설명해드렸습니다. 어디로 가서 뭘 타시면 되는지, 모르겠으면 누구한테 물어보면 되는지. 할머니는 춘추가 무색할 정도로 굉장히 정정하셔서 제 설명을 다 귀담아들으신 것 같았습니다.
열차 탈 때까지 같이 있어드리고 싶었지만 저에겐 예정된 스케줄이 있었습니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싶어 할머니께 이제 가야겠다 말씀드리자, 할머니의 마른 팔이 저를 꼭 껴안아왔습니다. 등을 토닥이며 정말 고맙다고 하시는데 어찌나 눈물이 차오르던지. 아니라고 말하며 덤덤한 척하느라 꽤 혼이 났습니다. 지금 작별하면 다시는 만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인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요.
안녕히 다녀오세요.
다녀오라는 말이 이토록 생경했던 날도 또 없었을 겁니다. 다시는 만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녀오라고 인사를 건네는 건 제법 역설적으로 느껴졌지요. 하지만 그 순간 안녕히 가라는 말은 할머니가 떠난 뒤 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무의식 중에 '다녀오세요'라고 인사를 한 것이요. 비록 제가 다녀올 할머니의 도착점에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요.
당연히 그 뒤로 다시 만나지 못했고 이젠 얼굴도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가끔은 궁금합니다.
할머니가 고향 땅을 잘 밟으셨을지, 집에는 또 무사히 가셨을지.
그리하여 안녕히, 잘 다녀오셨을지요.
꼭 기록해두고 싶었던 기억입니다.
어느 해 겨울이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