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충청도로 이사를 했다. 집앞 5분 거리에 골프연습장이 있었던 때와는 상황이 너무도 달라졌다. 차를 타고 20분은 가야 닭장 같은 윈도우 골프장이 나온다. 집 바로 밑에 있던 헬스장도 잘 안 갔는데 골프장은 오죽하겠나. 나는 자연스럽게 연습을 좀 게을리하게 됐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그간 보지 못했던 주변 경관에 시선이 갔다.
충청도 서해안 쪽은 철새도래지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런지 서해안으로부터 몇 십 분 이상 떨어진 집 근처에서도 멋진 새떼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V자로 날아가는 새들은 기본. 어떤 날에는 이 새들이 몇 마리씩 팀을 이뤄서 앞 팀이 출발하면 뒤에 대기하고 있던 녀석들이 열심히 쫓아가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논과 논 사이를 우르르 넘나드는 작은 새들은 또 나름의 장관이었다. 하나 같이 도시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경이로운 풍경들이었다. 야생의 우연과 불규칙성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은 골프장 같이 정돈된 맛과는 또 달라서, 나는 매번 마음을 빼앗기곤 했다.
출근하다 만난 이름 모를 새떼
운전 중 급히 찍은 이름 모를 새떼 (2)
뉴스를 보니 마침 또 멸종위기종인 흑두루미가 서산 천수만에 집결했다고 했다. 전세계 70% 정도가 모였다고 하니 얼마나 진풍경일지. 영상으로만 본 건데도 가슴이 다 설렜다. 정말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약 2만마리 정도가 된다니 그 근처에만 가도 한 무리 쯤은 볼 수 있지 않을까? 근거 없는 확신을 품은 채 무턱대고 천수만에 갔는데 웬걸. 흑두루미는 깃털 한 올도 안 보였다. 겨울 철새니까 이미 떠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찾아 돌아다니기엔 새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지라, 근처에 있는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다른 것들이나 구경하기로 했다. 렌즈 너머로 흑두루미 대신 황새가 마른 풀 사이로 느릿느릿 걸어다녔다. 몸을 숙여 부리로 물을 축이기도 했다. 황새의 느긋한 움직임에 시간의 흐름마저 잊었다.
황새...... 가 아닐 시 부끄럽게 글을 수정함.
또 다른 뉴스. 충청권의 식수원, 대청호 근처에 골프장을 건설하려는 계획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시민단체들은 수질 오염 등을 위험요소로 들어 반대하고 있다. 또한 골프장 예정지 곳곳에는 멸종위기 2급인 팔색조와 애기뿔소똥구리 등이 서식한다고 한다. 골프장을 지으려면 산과 숲을 깎고 베어낼 수밖에 없다. 적어도 9홀, 최대 18홀에 클럽하우스 등등 부가시설까지 포함해 짓는다면 정말 많은 면적이 필요할 것이다. 심은 잔디를 관리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물과 농약도 쓸 테고.
그런데 한국에는 이미 골프장이 참 많다. 한국의 골프장 숫자를 따지면 세계 8위라고 하고, 그 숫자는 백 개를 족히 넘는다고 했다. 나는 솔직히 그 모든 골프장을 다 가보는 사람이 한국에 몇이나 있을까 싶다. 이미 그만큼 많은데 골프장을 꼭 또 지어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 그저 인간의 유희 때문에, 울창하던 숲이 사라지고 그곳을 터전으로 삼아온 생물들이 하루아침에 집을 잃는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불편해진다.
취미로 골프를 치는 주제에 이런 생각을 한다니 스스로도 모순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떤 희생 위에 세워진 공간이라는 걸 알게 됐으면서도 당장 골프를 그만 둘 용기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은 안다. 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지 고민하는 날들이 길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