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크리틱을 마치고
이번 학기에 좋은 기회로 설계 스튜디오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처음 해보는 강의이고 어색하긴 했지만 꽤나 재밌게 한 거 같다. 매일 매일 현장과 씨름하고 도면과 씨름하다가 다소 어설프지만 신선한 학생들의 작업을 보는 것이 일주일이 활력이 되곤 했다. 물론 평소 야근보다 늦게 돌아와서 비대면 보충까지 하고 나면 파김치가 되고 다음날 몸살기까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게 한 학기 강의를 마치고 오늘이 마지막 크리틱을 하는 날이었다. 나도 학생 때 자주 느꼈지만 설계 마감은 정말 고단한 작업이다. 시간은 정해져있고, 도면에 판넬에 피티에.. 제일 부담스러운 건 아무래도 모형이었다. 난 모형을 지지리도 못 만드는데다 접착제도 지저분하게 붙여서 마감모형이 말 그대로 엉망인 적도 많았다. 최종 모형에 콘타를 못 만들어가서 학점이 생각보다 훨씬 못나온 적도 있다. 그런 내가 이제 학생을 가르치게 됐다니.. 참 격세지감이 든다.
어느 반이나 그렇겠지만, 잘한 학생도 있고 못하는 학생도 있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잘 하는 친구야 내가 굳이 여러 말을 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서 하고 남들보다 잘하려고 열심히 하기 때문에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신경은 쓰이지만 마음은 편하다. 역시 신경이 더 쓰이는 것은 못하는.. 아니 못한다는 표현은 좀 자제해야 겠다. 뭔가 결과물이 마음같이 나오지 않는 친구들은 신경이 더 쓰인다. 어떻게든 뭔가 더 하게 만들고 싶고, 하나라도 더 그려주고 보여줘서 좀 더 좋게 만들어주고 싶다.. 라는 게 내 심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마음 같지 않다는 게 이번 학기를 하면서 느낀 심정이었다.
마지막 날이니 만큼 아무래도 다른 반 결과물들과 비교가 되었다. 뭔가 물가에 내놓은 애들을 보는 심정으로 우리 반 애들 크리틱을 하긴 했지만, 뭔가 다른 반 결과물들에 비해 상당히 자유로운 안들이 눈에 띄었다. 사실 이번 학기 과제나 사이트 주변 상황이 그리 녹록한 것은 아니었다. 지형도 제법 있는데다가 옆에는 전통 향교라는 큰 컨텍스트가 있어서 이것을 무시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실 경사지 혹은 한옥이라는 컨텍스트는 건물의 쪼개진 배치 혹은 형상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뭔가 지형을 고려하지 않았다, 혹은 한옥과 동떨어진 설계를 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있는 문안한 안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른 반의 결과물들은 이를 충실히 반영한 것들이 많았다. 특히 한 반의 결과물들은 A,B,C가 아니라 A, A', A''... 로 보여질 만큼 유사한 것들이었다. 물론 한 반에 학생들이 모여서 작업하면 비슷해지는 경향이 생길 수도 있지만, 이 정도로 유사하다는 것은 교수님의 수업 방침이 그러하지 않고서는 힘든 일이다. 아마 담당 교수님께서 ‘이 땅에 가장 알맞은 설계는 이거야’라는 식의 정답을 정해놓은 듯한 인상이었다.
난 저학년 시절에 설계를 한 학기 내내 퇴짜맞은 적이 있다. 그 덕분에 마감을 전혀 새로운 걸 들고갔었다. 당연히 성적이 좋을 리가 없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 교수님도 마음 속에 정해놓은 정답이 있었던 것이다. 매번 다른 걸 들고 가도 굉장히 애매모호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수사들을 동원해서 퇴짜를 놓은 것으로 기억한다. 대놓고 ‘이렇게 해라!’라고 했다면 차라리 쉬웠을 텐데, 그런 식으로 교묘하게 퇴짜를 놓으니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헤맸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아예 솔직하게 답을 제시한 듯한 옆 반 교수님이 차라리 나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반 학생들의 작업은 지형이나 주변 여건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비평을 많이 받았다. 물론 그것이 맞는 말이고 나도 수긍한다. 하지만 나는 대지와 땅,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학생이 건축설계에 대해서 흥미를 갖게 하는 것’이다. ‘아, 설계라는 게 할 만 하구나. 재밌네. 앞으로 열심히 해봐야 겠다’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다른 것보다 조금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소 대지 여건에 어긋나거나 주변을 무시하거나, 계획적으로 조금 말이 안 되더라도 그것을 용인해줬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 컨셉을 살리도록 유도해나갔다. 정히 뭔가 안 나오면 내가 그 컨셉을 추정해서 스케치를 해주기도 했다(도움이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컴퓨터 앞에 같이 앉아 스케치업을 보고 하나씩 컨트롤 해가면서 뭔가 만들어보게도 해봤다. 뭐가 됐든 ‘이 작업이 마음에 든다. 이것은 내 작업이다’라는 생각을 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자기 작업에 애정을 가져야 다음 학기, 그 다음 학기에도 계속 흥미를 가지고 작업을 지속할 수 있다. ‘설계는 잘 하는 애들이나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면 정말 설계를 포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내가 예전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만화로 ‘슬램덩크’를 꼽은 적이 있다. 난 인생의 정말 많은 부분을 슬램덩크에서 배웠다. 그 중에 ‘풍전고교’와 싸우는 일화가 있다. 주인공 팀 북산과 맞붙는 풍전고교는 승리를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팀이다. 풍전의 주장 남훈은 북산의 에이스 서태웅을 팔꿈치로 가격해서 부상을 입히는데, 그래도 경기에서 밀리자 무리한 파울을 하던 남훈은 오히려 부상을 당해 경기장 밖으로 옮겨지고 은사였던 노 감독님을 만나게 된다. 사실 원래 풍전의 감독은 노 감독님이었지만, 성적 부진을 이유로 쫓겨났고 남훈 등은 그 감독님을 다시 모셔오기 위해 수단 방법을 안 가리는 스타일의 농구를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감독님의 농구 철학은 그런 게 아니었다.
“고교생활 3년간 할 수 있는 플레이는 한정되어 있어. 모두 다 한다는 건 무리야. 그래서 풍전의 연습은 오펜스 8, 디펜스 2 정도로 해왔다. 물론 비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그 방식이.. 농구를 좋아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난 오늘 저 대사를 나도 모르게 반복하고 있었다.
“대학교 3학년이라고 해도 할 수 있는 능력치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학생 의도를 최대한 반영해서 하고 싶은 걸 하도록 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흥미를 가지고 건축설계를 지속하게 될 테니까요..”
뭐, 누군가는 내 수업 방식이 틀렸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이런 방식이 한 명의 학생이라도 더 설계를 포기하지 않고 하게 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믿는다. 슬램덩크의 노 감독님이 그랬던 것 처럼.
* 위 사진의 “어쨌든 즐겁게는 하고들 있지..”는 노 감독께서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는데 이 때 남훈이 어린이들에게도 자신들에게 가르쳤던 방식으로 하고 계시느냐 라고 묻자 노 감독이 대답한 대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