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업’을 하면서
한 달쯤 전에 다니고 있던 사무실을 정리하고 나와서 새로운 사무실을 시작했다. 이 글은 블로그를 방문해주시는 분들과 SNS 이웃 분들에게 내 소식을 알리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해서 작성하는 글이다.
사실 예전에도 정림건축을 퇴사하면서, 새 회사를 다니면서도 이러한 성격의 글을 몇 번 썼었다. 그 시점에서의 나를 정리하는 의미이기도 하고, 마음을 다잡기 위한 글이기도 했다. 지난 몇 주간은 얼마 안 되는 짐이긴 하나 이사도 하고, 사무실 계약을 하기도 했고, 행정 절차를 마무리 하는 등의 작업을 하느라 여유가 별로 없어서 글을 쓰지 못했다. 지금은 뭔가 차분하게 몇 자 적어볼만한 시간은 있다고 생각된다.
왜 지금 개업을 하느냐고 하면 ‘더 늦으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우선이다. 내 나이가 한국 나이로 마흔이 되었다. 이제 철야를 하려고 하면 어깨가 뻐근하고 정신이 아득해져오는 게 느껴진다. 조금이라도 힘이 남아있을 때 뭔가 시작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지금을 놓치면 40대 중반까지 가버릴 가능성이 높다. 그 땐 애도 더 크고 뭔가 시작하기엔 정말 힘들어진다. 아내의 복직과 맞물려서, 내가 일을 조금이라도 프리하게 하면서 아기 볼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도 개업의 부가적인 이유가 되었다.
물론 이 코로나 시대, 불경기에 일이 과연 많이 있을까 라는 현실적인 두려움도 당연히 있다. 아니, 무척 크다. 하지만 일이라는 건 벌리고 시작하지 않으면 진척되지 않는다. 일단 시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을 수주하고 사무실을 개업한다는 소극적 선택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일단 사무실을 차려놓고 일을 찾는다는 적극적인 선택을 하기로 했다.
최근에 사업에 관한 글, 마케팅이나 돈 버는 법에 대한 글을 많이 읽어보고 있다. 그리고 최근 건축계 경향을 살펴보고 있다. 현재 나의 상황을 볼 때 일단 ‘작게’ 시작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생각이다. 사람을 구해서 현상을 하는 등의 ‘큰’ 접근보다는 일단 1인 오피스로 작은 주택이나 인테리어 용도변경 같은 수준의 일을 하면서 차츰 차츰 이력을 쌓아나가는 것이 맞지 않느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이 생각과 전략은 상황에 따라 수정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몇 년 전부터 차근 차근 쌓아온 이 블로그가 될 것이다. 현재 프로젝트가 많지 않은 상황을 역으로 이용해서 최대한 많은 글을 포스팅하고, 진행하고 있는 책쓰기도 좀 더 빨리 진행해볼 예정이다. 그를 통해 나란 사람에 대한 노출도를 높일 것이다. 현재로서의 내 전략은 그러하다.
학생 때 내가 꾸었던 꿈을 생각해본다. 과연 내가 내 사무소를 차리는 꿈을 꾸었던가? 생각해보면 그리 뚜렷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막연히 큰 사무실에 가도 건축을 하는 줄 알았고, 어디 가든 설계를 하면 되지 않나 싶었다. 그 때는 막연하게 대학 설계 수업 정도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럼 건축가가 되는 줄 알았다. 설계사무소를 하고 싶다는 꿈은 대형사를 다니며 활약하는 동년배 건축가들을 보면서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저 사람들은 나와 나이가 거의 같은데, 벌써 자기 작업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그런 생각이 나를 대형사무소에서 탈출하게 했다. 작은 아틀리에 사무실에선 비록 4년 반을 있었지만 솔직히 대형사에서보다 많은 것을 배웠다. 정말 온갖 일을 겪어가며 바닥부터 배웠다고 생각한다. 부족한 내게 많은 기회를 주었던 대표 건축가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하지만 어느 시점이 되자 ‘이제는 독립해야겠구나..’라는 게 느껴졌다. 이 시점을 넘기면 힘들 것 같았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지금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번 퇴사할 때도 ‘지금 이 정도 상황에서 내가 행동하지 않으면 겁쟁이가 될 뿐이다’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비슷한 생각이다. 다른 무엇보다 가정에 적지 않은 부담일 수 있는 결정일 텐데 선선히 받아준 남편의 뜻을 받아준 아내와, 아기 육아를 도와주시는 양가 부모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지난 학기와 이번 학기 설계수업을 하게 된 것을 보면 교수가 되겠다는 꿈도 이룬 것 같다. 내 책도 내고, 학교 수업도 하고, 어떻게든 ‘내 집’에도 들어오게 되었으니 올해는 정말 이벤트가 많은 해인 것 같다. 그 중의 화룡 정점은 ‘내 사무실 개업’이다. 우선 정림건축에서 같이 일하던 동기가 운영하는 사무실을 같이 쉐어 하기로 했다. 초기 자금을 최대한 아낄 수 있어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위치는 숭례문 옆의 작은 빌딩이다. 오가시는 분들이 있다면 한번쯤 연락을 주셔도 좋을 것 같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심히 창대하리라’ 난 교회엔 전혀 다니지 않지만 이 구절은 워낙 유명해서 알고 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 ‘육일약국 갑시다’의 김성오 부회장이 자주 언급하는 구절이다. 김성오 부회장은 4.5평 초소형 약국을 마산 최고의 약국으로 키워냈다. 그리고 메가스터디의 부회장이 됐다. 나도 지금은 비록 작은 사무실에 책상 하나, 컴퓨터 하나가 전부이지만 결국 유명하고 성공한 건축가가 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부디 이 짧은 글을 기억해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