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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 문화재단 신사옥에 대하여

by 글쓰는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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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 문화재단 신사옥 - 헤르조그 드 뮈론이라는 계급장이 주는 아우라, 그리고 건축학도들이 꾸었던 꿈에 대하여



최근에 헤르조그 드 뮈론이 한국에서 한 최초의 건물, 송은 문화재단 신사옥이 완공됐다. 역시나 건축 좀 한다는 사람들의 사진과 각종 글들이 sns에 속속 올라오고 있다. 그 중에는 오랜만에 보는 거장의 건축에 대한 경외도 있고, 아니면 ‘한국에 좋은 건물 없다’던 그들에 오만에 대한 조롱도 있다. 내가 쓰는 이 글이 거기에 한 숟가락 더 얹는 수준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 드는 생각들을 꼭 정리해보고자 하는 마음에 글을 하나 써보기로 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헤르조그 드 뮈론은 이 건물의 계획단계부터 ‘도산대로에 좋은 건축물 없다’는 식의 다소 도발적인 발언을 했다. 난 ‘아무리 거장이라도 그렇지, 클라이언트의 나라인데 좀 존중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란 생각을 했고, 한 유명 건축가는 그들의 오만함을 비판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거장의 자부심 내지는 자신감에서 온 발언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한 오만함의 발로였을까?


화제의 인터뷰와 함께 공개된 CG 이미지는 뾰족한 직각 삼각형을 그대로 돌출시킨 형태에 최소한의 창문만을 낸 매우 단순한 계획안이었다. 아무리 헤르조그 드 뮈론의 디자인 철학 내지는 노하우가 녹아있다고 해도 다소 성의 없어 보이는 안이었고, ‘일조사선’ 법규에 맞춘 건물이 연상된다는 조롱 섞인 비판도 들렸다. 나도 처음 보았을 때 ‘이게 다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나고 완공된 건물이 공개됐다. 사실 아직 직접 보진 못하고 사진으로만 접하긴 했는데, 건축을 조금이라고 공부하고 접한 사람이라면 아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역시 헤르조그(드 뮈론)는 헤르조그구나..’라는 생각. 그동안의 구설수와 갖은 비판들을 그야말로 ‘SHUT UP'시키는 듯한 압도적인 아우라가 느껴진다. 거장 계급장을 아무나 한테 붙여주는 게 아니라는 듯이.


그 동안 헤르조그 드 뮈론은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들만의 건축언어를 구축해왔다. 매 프로젝트마다 매우 다른 디자인 접근을 해왔기 때문에 마치 다른 건축가가 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그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주목한 것은 ‘외피’에서 매우 실험적인 접근들을 해왔다는 것이다. 전매 특허같은 오목하고 볼록한 특수유리를 적용했던 아오야마 프라다 매장과 함부르크의 엘프 필하모니 콘서트홀, 새둥지를 연상시키는 구조체로 경기장을 감싼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 송은 문화재단 신사옥에서도 그러한 접근은 변하지 않았다. 콘크리트 거푸집에 송판을 대서 무늬가 찍히도록 한 것이다. ‘송은’이라는 이름이 ‘숨어있는 소나무’라는 뜻이라고 한다. 여기서 영감을 받아 이러한 외피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사실 ‘송판무늬 노출콘크리트’라는 것은 우리나라 건축가들도 꽤나 자주 시도하는 공법이다.



10.jpeg 송은 문화재단 사옥의 외관 텍스쳐



하지만 헤르조그가 시도한 방법은 ‘조금’ 다르다. 이 ‘조금’이 특별함을 만들어낸다. 정사각형 모양의 거푸집을 직각으로 다른 방향으로 교차시켜 체스판 같은 문양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 텍스쳐가 정교하게 연결되어 건물 입면을 가득 채운다. 이런 패턴의 반복에서 그들의 초기작인 리콜라 창고 등이 연상되기도 한다.


공개된 내부공간 또한 상당히 압도적이다. 노출콘크리트를 활용한 조형적인 원형 보이드 공간이나 무표정한 콘크리트 천장 위로 선형 조명이 늘어선 공간, 백색의 공간에서 상부 천장이 꺾인 모습 등이 높은 퀄리티로 구현되었다. 아직 실제로 확인하진 못했지만, 사진만으로 전해지는 포스가 상당하다.



사실 건축도 어찌됐든 ‘예술’의 한 분야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판단 기준이 없다. 누군가에게 멋지고 좋은 건물도 누군가에게 쓰레기가 될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난 스포츠 분야가 차라리 클리어해 보인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타율’이나 ‘방어율’, ‘골’ 등의 객관적 수치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보이면 누구도 시비 걸 사람이 없으니까. 하지만 건축은 그렇지 않다. 누군가 아무리 멋진 건물을 만들어 냈다고 해도 ‘그건 공사비가 많이 들었으니까’ ‘그건 건축가 명성 때문에 거품 낀 건물’이라고 깎아내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나는 몇 개의 건물을 보면서 ‘이 정도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인정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 중에 하나는 파주에 있는 알바로 시자의 ‘미메시스 미술관’이다. 그 건물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싶다. 말 그대로 압도적인 미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또 하나의 예를 들라면 도쿄에서 본 요시오 타니쿠치의 ‘호류지 미술관’ 정도가 아닐까 싶다.


송은 문화재단 건물도 직접 본다면 그 정도의 아우라를 느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아마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진으로만 전달되는 힘이 상당하니까. 저런 형태는 누구나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건축과 저학년 학부생이 아무 생각도 없이 저런 건물을 디자인 할수도 있다. 그런 학생이 있다면 내가 지도한다고 해도 ‘야, 이렇게 마감할 수 있겠어. 생각 좀 더 해봐’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헤르조그 드 뮈론’이라는 계급장이 붙는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들이 해왔던 그동안의 작업, 생각, 철학 등이 백그라운드를 만들면서 어마어마한 힘이 생겨난다. 그들의 명성이 아우라를 만드는 건지, 아니면 디자인 자체가 아우라를 만드는 건지는 불분명하다. 아마 두 요소가 복합적인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게 아닐까.


나름 10년이 넘는 실무경험을 하면서 뭔가 건축과 관련한 ‘고상한’ 생각들에 대한 거부반응이 생겼다. 건축가가 아무리 공간이 어쩌구, 미학이 어쩌구 이야기한다 해도 자본의 논리, 면적의 논리, 건축주의 성향 등등 앞에서 모두 무너져 내렸다. 현상 설계는 더하다.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억지스럽게 이야기해서 더 튀어 보이게 만들기 바쁘다. 학교에서 배웠던 애매모호하면서도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은 더 이상 먹히지 않았고,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나 역시 주어진 면적과 요구사항에 맞춰 ‘적당한’ 대안을 ‘기한 내에’ 만드는 것에 익숙해졌다. 누군가가 하는 ‘설계비는 먹고 살 정도만 받아도 괜찮다’ ‘퀄리티를 내기 위해 설계기간과 공사기간이 길어졌다’는 식의 이야기를 다소 자랑처럼 하는 것을 들을 때면 ‘아직도 낭만주의에 빠진 건축가들이 많구나’ 라는 식의 냉소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현실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너무 현실에 찌들어버린 모습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랜만에 보는 헤르조그 드 뮈론의 작업을 보니, 뭐랄까. 그 옛날 우리 건축학도들이 추구했던 그 낭만의 냄새가 다시 느껴졌다. ‘그래, 이런 게 우리가 추구하던 그 건축이지’하는 느낌. 프리츠커 계급장을 단 천상계의 건축가가 마음껏 휘드른 붓을 따라 만들어진, 그야말로 예술적인 건축 말이다. 우리 건축가들이 언젠가는 구현해보고 싶은 그런 건축이다. 어느덧 40이 되어버린 난 ‘내가 죽을 때까지 이런 건축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건축가 치고는 어린 축인 나조차도 남은 세월동안 ‘자본’과 ‘면적’에서 자유로운 이런 예술적 건축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건축학도라면 저학년 시절에 ‘프리츠커상’을 타는 꿈을 꿔보곤 한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유치원 시절 꿈이 뭐냐고 물으면 ‘대통령’이라고 답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이제 건축을 시작한 햇병아리가 뭘 안다고 ‘프리츠커’를 논하겠는가. 이제 과학 공부 시작한 사람이 ‘노벨상’ 받고 싶다고 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사람이 꿈을 꾸는 것은 자유다. 그런 꿈을 꾸는 것도 못하게 한다면 누가 건축을 하겠는가. 헤르조그 드 뮈론의 작업을 보면서 꿈을 꾸던 건축학도 시절이 생각난다.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이 작업에도 그 ‘꿈’을 다시 한번 불어넣고 싶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스케치 한 장 더 하고 자야겠다.


사진출처:

https://blog.naver.com/brique153/222528561601

(아직 다녀오질 못해서 직접 찍은 사진이 없다. 다녀 오면 업데이트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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