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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하기 - 잘 듣는 것이 설계의 시작이다

by 글쓰는 건축가


대화에서 말을 잘 하는 것보다 잘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도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보면 상대방의 말을 끊고 내 말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들 때가 있는데요. 특히 나보다 덜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직원이나 학생일 경우에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생각과 함께, 내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어지는 거죠.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런 생각을 하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화라는 것은 결국 상대방과 주고 받는 상호작용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한 사람만 말하는 상황은 대화라기보다 강요나 훈계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잘 듣기만 해도 대화의 절반은 성공이라는 말이 있는 거겠죠. 특히 설계 작업에 있어서 건축주와의 대화는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건물의 주인이 되는 건축주의 상황과 요구사항, 의견 등을 잘 들어야만 좋은 설계가 나올 수 있습니다.



설계의 시작은 건축주와의 대화에서 시작됩니다. 어디에 땅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건물을 지으려고 하는지, 가족 구성은 어떻게 되는지, 필요한 공간은 어떻게 되는지, 선호하는 내외장재는 어떤 것인지, 생각하고 있는 예산과 기간은 얼마나 되는지 등등등.. 건축가는 건축주와의 충분한 대화를 통해서 많은 정보를 숙지해야 하고 그것을 설계에 녹여내야 합니다. 과거에는 소위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건축가가 권위 있는 전문가로서 건축주를 일방적으로 리드하며 설계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만, 최근의 경향은 확연히 다릅니다. ‘허가방’이라고 하여 허가만 내주는 저품질 설계사무소가 점차 줄어들고, 젊은 건축가들을 중심으로 디자인을 추구하는 그룹들이 생겨나면서 양질의 설계를 하는 사무소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데요. 이들은 과거처럼 일방적인 설계를 하는 것이 아니고 건축주와의 충분한 소통을 통해서 설계를 풀어나가는 경향을 보입니다. sns 등의 매체를 통해서 그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기도 하구요. 최근엔 건축주들도 인터넷에 넘쳐나는 건축 정보들을 충분히 접하고 오기 때문에, 과거처럼 일방적인 리드를 하기는 더더욱 힘듭니다. 거기에 최근의 젊은 건축주들은 아파트처럼 획일화된 주거 양식이 싫어서 건축가를 찾아오는 것이라 한층 세세하고 까다로운 요구조건들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에 발맞춰 건축가들도 건축주와의 소통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중요한 태도가 ‘경청’입니다. 건축주가 다소 현실과 맞지 않거나 꿈같은 이야기를 해도 끝까지 잘 듣고 수긍해주는 태도가 필요하죠. 저 같은 경우도 일단 건축주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보려고 합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 다 듣고 그 후에 제 의견을 이야기하려고 하죠. 일방적으로 ‘그건 안 됩니다’라고 하기 보다는 ‘그렇게도 가능은 합니다만 비용이 많이 드는 등 어려운 측면이 있고, 그 의도를 살리는 현실적인 방안은 이런 것입니다’라는 식으로 긍정적인 방향의 대화로 이어지도록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설계 디자인 미팅은 2~3주 간격으로 몇 달간 이어집니다. 서로간의 대화가 원활하지 않다면 쉽지 않은 과정이겠죠. 건축주의 의견을 충분히 잘 듣고 설계에 빠짐없이 반영하는 과정을 통해 신뢰를 쌓아가야 합니다. 건축가가 자기 고집에 빠져 일방적으로 디자인을 진행해간다면 서로 믿기 힘들어질 것입니다. 저는 자재 선정, 공법 선정 등 모든 과정을 최대한 건축주와 투명하게 소통하려고 합니다. 결국 건물의 주인은 건축주이고, 건축주의 돈으로 짓는 건물이기 때문에 건축주는 건물의 모든 것을 알 권리가 있으니까요.



설계가 끝나고 시공이 시작되면 현장과의 대화가 시작됩니다. 1~2주에 한번씩 진행하는 현장방문과 수시로 하는 전화통화를 통해 현장상황을 체크하죠. 이 때 건축가는 현장소장님과 주로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현장소장님은 보통 시공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분들이 맡으시는데요. 아무래도 쌓아 오신 경험이 많기 때문에 그만큼 작업 방식도 굳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가 그린 도면 역시 사무실 책상에서 그린 것이기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죠. 이런 상호간의 의견과 입장 차이를 충분한 대화를 통해 풀고 현실성 있는 시공 방법을 논의하는 것이 감리 업무의 핵심입니다. 이런 대화에서도 역시 경청하는 태도가 필요하죠. 서로 ‘내가 잘났다’ ‘내가 더 잘 안다’는 식의 권위를 내세우면 될 일도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만 해도 건축가 중에서는 비교적 젊은 편이기 때문에, 현장소장님들은 저보다 경력이 훨씬 많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감각이나 아이디어는 저보다 부족하실 수 있지만, 경험 측면에서는 비교할 수 없죠. 한 수 배운다는 겸손한 자세로 협의에 임하려고 하고, 되도록 그 분들의 의견을 존중해드리려고 노력합니다.



과거보다 스마트 폰 / sns 등의 통신 채널이 발전해서 현장 관리가 무척 쉬워졌습니다. 전화 뿐 아니라 사진 전송도 언제든지 가능하고, 카페나 밴드, 카카오톡 등을 통해 기록을 남기고 자료를 공유하는 것이 무척 편합니다. 그만큼 현장과의 의사소통도 원활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cctv를 설치하여 실시간으로 현장을 체크하는 곳도 늘고 있습니다. 항상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좋지만, 시공사를 믿지 못하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어서 조금은 신중해야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직원들과의 대화도 건축가에게 중요한 대화입니다. 직원들은 일방적으로 작업지시를 받고 맹목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개개인이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디자인을 발전시켜 나가는 ‘건축가들’이라고 할 수 있죠. 저도 가끔은 일을 시키면서 ‘얘가 왜 내 말대로 해오지 않았지?’라고 생각되어 화가 날 때가 있었습니다. 찬찬히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나름의 생각대로 안을 발전시켰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물론 그것이 제가 보았을 때 제대로 된 방향이 아닐 경우가 많습니다만, 의외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죠. 제 주관적인 판단으로 그것들을 꺾어버린다면 전체적인 디자인 프로세스 뿐만 아니라 직원의 사기와 가능성마저 꺾는 결과가 생길 수 있습니다. 다른 대화들과 마찬가지로 일단 끝까지 다 들어보고 그 안의 가능성과 한계를 최대한 자세히 이야기해주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직원의 노고를 인정해주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최근에 시작한 대학 설계수업에서도 ‘경청’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니만큼 건축적인 사고와 표현이 아직 미숙한 경우가 많죠. 다소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것을 끝까지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들처럼 미숙한 시절이 있었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저 역시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식으로 수업했던 교수님들에게는 좋은 인상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겠죠. 학생들의 허황된 디자인에서도 가능성을 찾고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 좋은 교육자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건축 설계에 있어서 대화, 그 중에서도 경청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다른 모든 일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설계 역시 사람이 모여서 하는 일이기에 원활한 의사소통이 중요하고 그 중에서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경청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이나 퀄리티에 대한 고집보다는 건축주와 시공사, 설계자가 잘 소통하여 모두 행복한 건축을 하는 것이 제가 바라는 이상적인 건축의 모습입니다.






열린 설계와 소통으로 건축주, 시공사와 함께하는 건축을 만들어갑니다.



OPEN STUDIO ARCHITECTURE


오픈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김선동


Kim Seondong


대표소장 / 건축사


Architect (KIRA)


M.010-2051-4980


EMAIL ratm820309@gmail.com


blog.naver.com/ratm82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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