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전화, 메일, 미팅을 미루지 마라
오늘은 제가 일에 임하는 자세와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건축가가 하는 일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제가 하는 것들을 기준으로 소개해보겠습니다.
우선 블로그, SNS 관리를 합니다. 관리라는 게 별게 없고 지속적으로 게시물을 올리는 것입니다. 스케치, 글, 사진 등을 지속적으로 올리는 것인데요. 당장은 반응이 그다지 없더라도 결국 저에 대한 관심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쉽게 말해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블로그에 대해서는 이후 다른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그 다음은 전화나 카톡, 메일 등을 주고 받고 미팅을 하는 등의 커뮤니케이션 업무입니다. 예전과는 달리 카톡이나 밴드 등의 온라인 채널이 발전해서 현장관리와 소통이 한층 편해졌는데요. 단체방 등을 만들어 같이 공유하면 기록이 남고 함께 본다는 인증이 되기도 해서 편리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도 전화를 하거나 직접 만나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얼굴을 보고 목소리로 소통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정확하게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문자보다는 전화, 전화보다는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좀 더 효과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통신매체가 발전하더라도 직접 만나는 행위는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문서나 도면을 작성하는 업무, 디자인 구상을 위한 스케치, 컴퓨터로 하는 3D 모델링, 가끔씩 이지만 모형을 만드는 업무 등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정말 디자인과 관련된, 건축가가 하는 본질적인 작업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기타 사무용품을 사거나 세금 정리 등을 하는 등의 잡무들이 있습니다.
본질적인 작업들은 차라리 재밌고 하기가 쉽습니다. 뭔가 창조적인 작업들이고 그것을 하기 위해서 건축가가 된 것이니까요. 하지만 솔직히 전화를 하거나 미팅을 하는 일들은 그다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전화라는 게 뭔가 부탁을 하거나, 어려운 일을 해결해야 하거나, 잘못된 일을 확인해야 하는 등의 상황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미팅도 결국 제가 어느 정도 작업을 한 후에 그것을 건축주 등과 함께 확인, 검토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부담이 되는 건 마찬가지죠.
하지만 전화와 미팅은 가장 중요한 업무들입니다. 공사 관리에서 현장 상황을 체크하는 것은 타이밍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미 시공이 된 상태를 되돌리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흔히 현장에서는 ‘데나우시’라는 일본 말로 표현하곤 하는데요. ‘다시 한다’는 뜻입니다. 철거와 시공을 위해 들어가는 인건비, 재료비 등이 추가로 들어가는데다 시간도 2배로 쓰는 격이기 때문에 시공사 입장에서는 손해가 막심합니다. 그래서 재시공은 어떻게든 안하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을 악용해서 ‘이미 작업이 되어있는데 어쩌라는 말이냐’는 식으로 버티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감리를 하면 이런 재시공 상황을 두고 시공사와 갈등이 빚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험이 많은 건축가는 설계를 하면서 시공 때 이슈가 될 만한 부분들을 미리 생각해둡니다. 시공이 까다롭다거나 놓치기 쉬운 부분, 하자가 발생할 여지가 많은 부분 등등입니다. 이 부분을 도면에 최대한 자세히 명기해 두고, 시공사를 만나서 미리 그 부분에 대해서 거듭 거듭 당부하고 주의할 것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예측 사격’이라고 표현하는데요. 네덜란드의 유명한 건축가 렘 쿨하스가 썼던 표현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렘 쿨하스는 건축가는 미래의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미리 예상하고 ‘예측사격을 하듯’ 건물을 설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측사격이라는 건 공군 파일럿이 공중전을 할 때 적기가 어느 지점으로 이동할지 예측하고 그곳으로 미리 사격을 하는 개념에서 온 말입니다. 공사 감리에서도 능숙한 건축가는 공사가 진행되면서 어떤 이슈가 발생할지 미리 예측하고 그것들을 주의하도록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예측사격’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감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되었네요. 어쨌든 ‘전화’를 자주 해야 이런 이슈들을 계속 들춰내고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미팅을 통해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야 하지만 우선 전화를 자주 하면서 현장 상황을 지속적으로 체크해야 합니다. 현장 체크 뿐 아니라 군청, 시청을 상대하는 대관업무, 협력사와의 협업 등에서도 전화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은 무척 중요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 전화라는 게 선뜻 먼저 걸기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사람마다 성격이 달라서 쉽게 거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전 아직도 전화를 걸 때 망설일 때가 많고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계속 미룰 때가 있습니다. 이런 버릇을 고치려고 지금은 출근 하자마자 일정 정리를 하고 바로 전화부터 돌리기 시작합니다.
아침에 출근하면 자리를 간단하게 정리하고 달력에서 오늘 할 일을 체크합니다. 월별 달력에서 미팅 등의 일정을 보고 오늘 할 일을 간단하게 적고, 일별 일정표에 다시 오늘 할 일 을 다시 정리합니다. 이렇게 적으면서 오늘의 목표 업무량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백퍼센트 지켜지기는 힘들겠지만 일단 정해 놔야 좀 더 긴장감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몇 시간 일을 하다가 이것이 지켜지기 힘들다면 다시 재조정 합니다.
이렇게 할 일을 정하고 나면 해야 할 전화를 하고, 메일 회신 등을 합니다. 이것을 안 하면 마음의 짐이 남아서 다른 일을 하면서도 찜찜하기 때문에 먼저 해치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오전에 자리에서 연락을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 시간을 놓치지 않고 연락하는 것이 좋습니다. ‘점심 먹고 하자’ ‘오후에 하자’는 식으로 괜히 미루다보면 그날 하루 종일 연락을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도 다른 업무를 하다 전화를 못 받으면 서로 놓치면서 하루가 다 가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미팅도 최대한 약속한 시간에 어김없이 하려고 합니다. 설사 준비가 약간 부족한 상태라도 그 상태대로 미팅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타이밍이 늦어지면 긴장감이 떨어지고 전체적인 일정이 늘어지기 때문입니다. 미팅 준비는 괴롭지만, 정해진 시간에 정확히 미루지 않고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을 먼저 하라’는 제 원칙과 맞다고 생각합니다.
‘힘들고 중요한 일을 먼저 해치우라’는 원칙은 많은 자기계발서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동기부여가 브라이언 트레이시는 ‘개구리를 먹어라’라고 표현했고,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 스티븐 코비는 ‘중요한 일을 먼저 하라’고 했죠. 물론 저의 일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는 설계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서 수반되는 전화, 미팅 등의 커뮤니케이션 업무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소 힘들고 괴로운 이러한 업무들을 먼저 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큰 업무 원칙 중 하나 입니다.
열린 설계와 소통으로 건축주, 시공사와 함께하는 건축을 만들어갑니다.
OPEN STUDIO ARCHITECTURE
글쓰는 건축가 김선동의 오픈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김선동
Kim Seondong
대표소장 / 건축사
Architect (KIRA)
M.010-2051-4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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