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역시 결국 사람을 대하는 일이다
예전엔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것을 미덕으로 여기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최근엔 경향이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자기 자신을 알리고 pr하는 시대입니다. 거기에 인터넷, sns가 활성화되어 자신을 알리는 것이 너무나 쉬워졌고, 누구나 그렇게 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핸드폰을 켜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열면 자기를 자랑하는 글들이 말 그대로 넘처납니다.
건축 설계 업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건축사 면허를 가진 사람이 2만 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직원 1~2명으로 운영되는 사무실까지 하여 설계사무실은 그야말로 수없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 건축주의 눈에 띄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스스로를 알려야 하겠죠. 제가 쓰고 있는 이 책도 그 일환이라고 보아도 크게 무리는 아닐 듯 합니다.
저도 최근에 제 사무실의 방향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어떻게 내 사무실을 알릴 것인가? 어떻게 나만의 특징, 특화된 측면을 발굴해서 세상에 홍보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죠. 하지만 이 홍보에 대해서도 조금 더 들여다보면 다른 측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즉, 스스로를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알릴 것인가? 아니면 조금은 자신을 과장하고 부풀려서 포장해서 알릴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제 입장은 전자에 가깝습니다. 저를 알리더라도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습니다. 보는 사람도 이런 자세나 태도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굉장히 솔직한 성격입니다. 때론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너무 많은 것을 알려주는 것 아닌가 하는 지적을 받을 정도인데요. 요새 말로 TMI(Too Much Information)라고 하는 것이죠. 예를 들면 현장에 가서 협의를 하다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그냥 그대로 현장소장님께 물어봅니다. “방금 전 하신 말씀을 못 알아들었는데, 설명 좀 해주세요”하는 식입니다. 현장에서도 소위 ‘기싸움’이라는 게 있습니다. 서로 누가 더 우위에 서느냐, 누가 더 권위를 갖느냐를 가지고 알게 모르게 밀고 당기기를 하는데요. 여기서 ‘잘 모르겠다, 알려달라’고 하면 자칫 쉽게 보일 수 있고 업신여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질문을 그런 측면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전 글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현장 소장님은 경력이 많은 베테랑 분들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장에 드나드는 많은 작업자와 자재상들, 건축주 등을 상대하려면 경험이 많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가 현장을 맡게 되면 이리 저리 휘둘리기 십상이죠. 때문에 이십년에서 삼십년 이상 현장밥을 드신 분이 맡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설계를 한지 10년이 좀 넘었는데, 사실 대형사 경력을 빼면 몇 년 되지 않습니다. 이제 조금씩 알아간다는 정도죠. 그러니 현장소장님이 공사에 대해서 저보다 더 경험이 많으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협의를 할 때도 그것을 인정해드리고, 겸손한 자세로 여쭤보고 조언을 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디자이너로서의 설계 의도 내지는 자존심은 유지해야 겠지만요. 제가 그린 도면을 그대로 구현되는 것만 고집하지 않고, 현장 상황과 현장소장님의 의견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하려고 합니다. 그러한 자세를 계속 보여드리면 현장소장님도 ‘이 친구는 배우려고 하고 열심히 하는구나’라고 인정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건축가는 디자이너로서의 자존심과 고집을 앞세우고, 현장소장님은 자신의 경험과 현실성만 앞세운다면 갈등만 고조되고, 현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몇 번 싸우다보면 협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소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공사는 산으로 가버릴 수 있습니다. 저는 의도적으로라도 저를 낮추고, 함께 잘해보자는 의도로 이야기를 드리고 협의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현장에 나가보면 작업자 분들의 연세가 많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최소한 50대, 많게는 70대 이상의 노인 분들입니다. 아니면 중국 말을 쓰시는 외국인 노동자 분들이죠. 공사 일이 힘들고 고되다 보니 젊은 사람들이 이 일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도 콘크리트 거푸집을 짜는 작업, 철근 작업, 벽돌을 나르고 쌓는 작업 등은 육체적으로 정말 힘듭니다. 골조가 어느 정도 완성된 후에 들어오는 내부 목공, 수장, 타일, 도장, 도배 등의 작업은 난이도와는 별개로 육체적으로는 비교적 편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여성분들도 볼 수 있는데요. 한 여름 뙤약볕에 현장에 나가면 정말 머리가 핑 돈다는 느낌이 듭니다. 햇빛이 쏟아지는 거푸집 위에 올라서면 서 있기만 해도 현기증이 나고 쓰러질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 작업까지 하시는 분들은 정말 힘드시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물론 이 작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습니다만, 말 그대로 ‘먹고 살기 위해서’ 이 일을 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저는 비슷한 설계 일을 하는 학교 후배가 ‘인부’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저도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인부’라는 말 자체가 작업자 분들을 하대하고 무시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작업자’라는 말을 쓰려고 하고 한 분 한 분 존중해드리려고 노력합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시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현장에서 뵙는 분들마다 꼬박 꼬박 인사를 드리고 ‘잘 부탁 드립니다’고 말씀드립니다. 계획이나 도면 작업은 제가 할지 모르지만 결국 손으로 직접 이 건물을 만드는 것은 그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계획을 잘 한다고 해도 만드는 분들의 마음이 담기지 않는다면 좋은 건물이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돈을 드리거나 직접적인 혜택을 드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마음이라도 전달된다면 조금이라도 건물이 잘 지어지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이 글 초반에 이제 ‘겸손’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나 라고 썼습니다. 하지만 전 사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자기 자랑을 한다면 ‘저 사람은 좀 잘 나간다고 해서 잘난 척하고 거들먹거리는 구나’라고 고깝게 생각하는 게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알리고 홍보하더라도 최대한 자랑처럼 보이지 않게, 진솔하고 솔직하게 비춰지도록 만드는 필요하고 그것이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점만 보여주지 않고 약점도 조금씩 비추면서 인간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것이죠. 이것을 가장 잘 하는 사람이 방송인 유재석 씨라고 생각합니다. 전 개인적으로 유재석을 ‘존경할만한 수준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중이 유재석을 최고의 방송인이라고 인식한지가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그 긴 시간동안 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것인데요. 그 기저에는 ‘겸손’이 깔려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보면 결코 그가 나서서 웃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출연자를 먼저 배려하고, 그들이 돋보이도록 만드는 것을 우선시하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결국 빛나는 것은 유재석 자신입니다. 저도 현장에서 ‘유재석’같은 MC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 디자인, 제 의도를 앞세우기보다 모두 함께 주역이 되는 건축을 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태도가 결국 좋은 건축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열린 설계와 소통으로 건축주, 시공사와 함께하는 건축을 만들어갑니다.
OPEN STUDIO ARCHITECTURE
글쓰는 건축가 김선동의 오픈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김선동
Kim Seondong
대표소장 / 건축사
Architect (KI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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