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예술이기 이전에 사업이다.
오늘은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건축가의 뭔가 예술가 같고 장인 같은 면모를 말씀드렸다면, 이 글은 다소 현실적인 글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학생 때 건축설계에 대해 접하고 교육받았던 인상은 대강 이런 것이었습니다. ‘우리 분야는 일은 많이 하고 돈은 얼마 못 번다. 하지만 좋은 공간을 만들고 사회에 공헌하기 때문에 그걸로 의미를 찾아야 한다.’ 쉽게 말해 통속적인 의미의 부자가 되긴 힘들지만 자기만족이 있기 때문에 거기서 위안을 찾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선배 건축가들이 그렇게 힘든 길을 걸어 갔구요. 대가라고 불리던 김수근, 김중업 선생님들도 사무실을 경영하실 때 빚에 허덕이면서 어려움을 겪으셨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소위 MZ 세대들은 워라벨을 중시하며 삶의 질을 강조합니다. 제가 80년대생인데, 알고 보니 저까지도 MZ 세대에 포함되더군요. 요새 학생들을 가르치면 세대차이가 심하다는 것을 실감하는데, 저도 신인류에 포함된다고 하니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아무튼 저도 예전 선생님들처럼 ‘설령 밥을 굶더라도 내 건축을 한다’는 식의 예술가적, 구도자적 마인드에는 반대합니다. 부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쪼들리게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시간도 최대한 확보해서 가족과의 시간도 많이 보내고 싶습니다.
사실 이 정도의 목표를 이루는 것마저도 쉽지 않은 것이 건축 설계 업계의 현실입니다. 무슨 사업을 하더라도 그것이 일정 궤도에 오르게 만들기는 쉽지 않겠죠. 하지만 예전에 전설처럼 떠도는 ‘건축사 자격증만 따면 일이 몰려들어서 편히 살 수 있다’는 말은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모든 사업이 그렇겠지만, 설계사무소의 운영은 쉽지 않습니다. 우선 사무실 임대료를 내야 하고, 직원들 월급을 줘야 합니다. 기타 공과금, 사무용품, 세금 등의 유지비가 꾸준히 나가는데 이 정도가 고정비입니다. 이 정도 지출은 어떤 사무실을 운영해도 마찬가지일 텐데, 문제는 수입입니다. 설계사무실 자체가 거대한 프리랜서 시스템과 비슷해서,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일을 따와야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건축가는 항상 수주의 압박에 시달리죠. 프로젝트를 계약한다고 해도 그 설계비를 한 번에 받는 것이 아니라 몇 차례에 걸쳐서 나눠 받기 때문에 자금 운용이 상당히 힘듭니다. 공공 프로젝트는 민간 프로젝트보다 설계비를 많이 받긴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 많고 설계조건이 까다로울 때가 많습니다. 발주처도 여러 군데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힘들죠.
사업을 시작하면서, 전 몇 가지 원칙 내지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아무리 1인 기업으로 시작하지만 마구잡이로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공공 현상 설계는 하지 않고 민간시장을 노린다는 것입니다. 현상설계는 일정 수준 이상의 인력이 시간을 들여서 노력해야 성과가 나는 분야입니다. 물론 크게 힘을 쓰지 않아도 어쩌다 당선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건 요행이라고 봐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제가 쓸 수 있는 인력은 지금은 저 한 명 뿐이기 때문에 우선 민간 시장에서 프로젝트 1~2개를 충실하게 만들어서 차츰 차츰 실력과 명성을 쌓아가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유명해진 많은 젊은 건축가들 역시 작은 인테리어 등에서 시작해서 민간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블로그에서의 글쓰기, sns를 꾸준히 하려고 합니다. 예전처럼 무작정 사람 만나서 명함 돌리고, 같이 술 마시면서 영업하던 시대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소통하고, 홍보하고, 마케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설계사무실이 sns를 활발히 하고 있구요. 제 블로그의 그림과 글을 보고 연락주신 건축주 분들도 꽤 많습니다. 많은 성과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이걸로도 홍보와 마케팅이 되는 구나’ 라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꾸준히 해볼 생각입니다. 이 블로그의 글을 모아서 책을 출판하면 그것이 또 다른 마케팅 도구가 됩니다. 제가 자가 출판으로 책을 한 권 냈습니다만, 그것이 주는 효과가 꽤 쏠쏠했습니다. 사람을 만나면 선물용으로 주기도 좋았고, 학기를 끝내고 학생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누굴 만나도 ‘책을 쓴 작가’로 인식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글과 그림, 책 등을 차곡 차곡 모아가면 ‘글쓰는 건축가’라는 제 브랜드를 구축할 수 있고, 좋은 퀄리티로 건물을 완성시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나가면 최종적으로 좋은 설계비를 받는 상위 건축가 그룹으로 이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사무실 인원은 최소한으로 유지하고, 인원 추가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할 생각입니다. 프로젝트 개수 또한 무리하게 늘리지 말고 각 프로젝트의 퀄리티가 떨어지지 않게 신중하게 잘 관리하려고 합니다. 그것들이 모여 또다시 제 브랜드를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특화하고자 하는 또 다른 부분은 ‘건축주 관리’입니다. 사실 기존의 설계사무실은 건축주 관리를 등한시한다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여러 개의 프로젝트가 동시에 돌아가다 보니 프로젝트 하나에 집중하는 시간이 짧고, 건축주 요구에 대응하는 피드백은 느려지는 것입니다. 저는 건축주를 정말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쟁쟁한 많은 건축가를 제치고 저에게 일을 주신 고마운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요구에 철저히 대응하고, 집중 관리해서 피드백을 빠르게 해야 합니다. 미팅도 건축주가 원하면 최대한 자주 자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건축주는 나에 대해 신뢰하게 되고, 이후에 다른 문제가 생기더라도 믿고 같이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리스크가 줄어듭니다. 평소에 신뢰와 친목을 쌓아둬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건축주의 만족과 바이럴 마케팅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 글쓰기나 책의 콘텐츠들을 모아 강연이나 워크샵을 하고,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지식과 경험을 나누고, 부가적인 수입을 창출하는 것이 또 다른 영역의 목표입니다. 이것은 건축가와는 다른 영역의 사업이기 때문에 아직은 구상 정도만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꼭 하고 싶은 분야입니다.
제 사업의 목표와 방향, 전략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씀드려 보았습니다. 물론 이것이 아직은 어설프고 불완전한 것일 수 있습니다만, 계속 적용하고 수정하는 과정 속에서 완성되어 가리라고 믿습니다. 불완전한 계획보다 나쁜 건 계획이 아예 없는 것일 테니까요. 이런 생각과 실행을 계속하면서 저와 제 회사가 발전해갈 것입니다.
열린 설계와 소통으로 건축주, 시공사와 함께하는 건축을 만들어갑니다.
OPEN STUDIO ARCHITECTURE
글쓰는 건축가 김선동의 오픈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김선동
Kim Seondong
대표소장 / 건축사
Architect (KIRA)
M.010-2051-4980
EMAIL ratm8203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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