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계속 변하고 있다
오늘은 ‘건축가의 자기계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초반부에 설명했던 글쓰기와 책읽기, 스케치 등도 물론 자기계발입니다. 그런 것들이 제 안에서 단단하게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가는 활동들이라면,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밖에서 오는 정보들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정보를 축적해가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건축업계는 그다지 변화가 빠른 분야는 아닙니다. IT, 인터넷 업계에 계신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몇 개월만 쉬고 돌아오면 시장의 흐름을 쫓아가기가 굉장히 버겁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기술의 발전,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는 이야기일 텐데요. 하지만 저희 분야는 상대적으로 상당히 느린 편입니다. 시공하는 방법도 80~90년대와 크게 바뀐 점이 없습니다. 거푸집을 짜고, 철근을 매고, 레미콘을 부어 넣어서 타설하는 방식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외부마감도 똑같이 돌이나 벽돌로 하고 있고, 내부 마감도 벽지로 도배하고 타일을 붙입니다. 전 그래서 농담으로 ‘쌍팔년도 작업자가 타임머신을 타고 지금으로 와도 똑같이 일할 수 있을 거다’라고 합니다. 물론 세부적인 모양이나 디테일은 유행에 따라 조금씩 변하고 있죠. 하지만 그것들을 만드는 방식에서 무언가 혁신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3D 프린터 같은 기술이 건축에 도입되어 새로운 소재로 로봇들이 건물을 만든다고 하면 정말 혁신적인 변화라고 할 만 합니다. 지금도 가끔 그런 기술들이 소개되곤 하죠. 그런 기술이 완전히 상용화된다면 건설 분야도 크게 바뀔 것입니다.
눈을 조금 돌려 설계 분야를 보더라도 발전의 속도는 상당히 더딥니다. 제가 지금 주로 쓰고 있는 프로그램이 도면을 그리는 오토캐드(Auto Cad), 스케치업(Sketch up)과 라이노(Rhino)라는 3d 모델링 프로그램입니다. 어도비 사에서 나오는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등의 프로그램을 추가로 쓰고 있는데요. 이것들은 제가 15~20년 전 학생 때부터 쓰던 프로그램들입니다. 물론 매년 기능이 조금씩 개선되어 업그레이드가 되긴 합니다만, 기본적인 골격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사무실에서 엑셀과 한글, 파워포인트 등을 수 십년간 쓰고 있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쓰는 프로그램이 바뀌는 것이 발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여타의 분야와 비교해보더라도 하는 일의 종류와 수준 등이 거의 변화가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최근에 설계분야에 불어오는 혁신이라고 한다면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ling)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3d 모델링에서 한발 더 나아간 개념인데요. 스케치업이나 라이노에서 하는 모델링은 단순 확인용으로 공사를 위한 정식 도면은 캐드로 다시 정밀하게 그려야 합니다. 하지만 BIM에서는 이렇게 다시 작업하지 않습니다. 모델링을 매우 정교하게 해서 거기서 바로 도면 추출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것인데요. 오토데스크 사의 래빗, 그래피소프트 사의 아키캐드 등이 이러한 기능을 지원하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입니다. 사실 이 BIM 기술이 설계업계에 소개된 지도 10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회사들이 BIM을 도입하여 쓰고 있는데요. 큰 회사에서는 어느 정도 정착이 되어 많은 건물에 시도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제가 종사하는 아틀리에 수준의 작은 건물에서는 아직 그렇게 많이 쓰이고 있지 않습니다. 캐드나 스케치업보다 래빗 등의 BIM 프로그램이 난이도가 훨씬 높아 진입 장벽이 상당히 높고, 좋은 컴퓨터 시스템 사양을 요구합니다. 그런 단점 때문에 BIM 기술의 상용화가 느려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거의 대세로 자리 잡았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결국 건축설계의 트렌드가 BIM이 된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사실입니다. 저도 아직 BIM에 익숙하지 않지만, 틈틈이 시간을 내서 공부해볼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건축가가 세상의 흐름을 기민하게 쫓아야 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첫 번째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법규’입니다. 법이라는 것은 세상의 질서를 만드는 것인데, 자주 바뀌는 것이 이상하다고 느끼실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건축’이라는 분야로 한정해보면 이 법은 정말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단적인 예가 ‘단열기준’입니다. 건축물에 쓰이는 에너지를 절약한다는 목적으로 단열기준은 해가 갈수록 강화되고 있습니다.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른 수준입니다. 이제는 웬만한 건물의 단열재 두께가 콘크리트 벽체의 두께보다 두꺼운 경우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인정받기 위해서 건축 인허가 때 ‘에너지 절약 계획서’를 제출하기도 하고, 일부 건물은 그 성능을 인정받기 위해 ‘녹색 건축물 인증’같은 것을 받기도 합니다. 이런 업무들은 건축설계 사무소들이 전부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에 외주업체의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기타 장애인과 관련된 법규, 화재 예방을 위한 법규 등도 해마다 강화되는 추세입니다. 최근엔 일부 다가구, 다세대 건물에도 방화창(불이 번지지 않도록 막는 창)을 의무화해서 문제가 되기도 했죠. 아무튼 이런 법규들의 변화를 시시각각으로 잘 파악하고 있지 않으면 인허가나 공사 과정에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자재와 공법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하우징 페어’ ‘홈 디자인 페어’같은 행사들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코엑스나 킨텍스 같은 대형 컨벤션 센터에서 열리는 건축 박람회들인데요. 저도 최신 경향 습득을 위해서 방문하곤 합니다. 각종 건축 자재부터 시공에 쓰이는 공구, 창호, 문, 건축설계-시공 업체까지 정말 집짓기와 관련한 거의 모든 업체들이 들어온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가서 보면 정말 신기한 것들이 많습니다. 최근 유행하는 DIY 성향에 맞춘 제품들도 많구요. 항상 쓰던 자재만 쓰는 것보다는 이렇게 새로운 제품들을 접하고, 적용해 보는 것이 확실히 도움이 됩니다. 물론 검증이 덜 되었다는 점, 가격이 다소 비싸다는 점은 리스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자재나 공법에 관한 정보는 박람회 뿐만 아니라 인터넷이나 잡지 등 각종 매체를 통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각 업체들도 홍보에 굉장히 열성적이기 때문에 카탈로그나 샘플 요청을 하면 즉시 보내주는 곳이 많습니다. 이렇게 정보를 구하는 것은 쉽지만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은 이 업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정도 기본 지식과 경험을 갖추지 않으면 제품 설명을 들어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저도 계속해서 업데이트 되는 정보를 익히기 위해 관련 잡지도 정기구독해서 보고, 박람회장도 방문하곤 합니다. 처음엔 모르는 것도 10번, 20번 반복해서 보고 들으면 익숙해지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하려고 하죠.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디자인 트렌드입니다. 일반인의 눈으로 본다면 사실 건축 디자인이라는 것이 수 십년간 그다지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느끼실 겁니다. 박스형의 정갈한 디자인이 거의 대부분이었는데요. 최근에는 인테리어 디자인의 경향의 건물의 전체적인 형태, 표피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인테리어 디자인은 마치 패션과 비슷해서 변화가 빠르고 유행에 민감합니다. 수 개월만에 뜯고 새로 공사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는데요. 이러한 경향이 건축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렇게 유행 타는 스타일의 건축은 그다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단순함 속에 단단함’이라는 것이 이러한 생각을 반영하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주의 요구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마냥 외면하고 있을수 만은 없습니다. 건축 디자인을 다루는 웹사이트나 블로그, SNS 등을 자주 보면서 그러한 트렌드들을 보고 익히고, 가능하면 화제가 되는 장소를 방문해서 그러한 분위기를 느껴보고 잘 되는 이유를 생각해보곤 합니다.
이렇게 변화에 적응하는 건축가의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세상에는 자기 페이스 대로 천천히, 꾸준히 나아가는 사람이 있고, 세상의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하며 재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첫 번째 타입의 사람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마냥 등 돌리고 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제 안으로는 내공과 철학을 천천히, 단단하게 다지면서 외부의 흐름도 놓치지 않는 균형 잡힌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열린 설계와 소통으로 건축주, 시공사와 함께하는 건축을 만들어갑니다.
OPEN STUDIO ARCHITECTURE
글쓰는 건축가 김선동의 오픈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김선동
Kim Seondong
대표소장 / 건축사
Architect (KI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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