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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건축가 Aug 29. 2020

최선을 다한다는 것

며칠 전 사무실에서 회식을 했다. 직원들과 여러 가지를 묻고 답하면서 나름대로 진솔한 대화를 할 수 있었다(그들도 그렇게 느꼈다면 좋겠다는 희망이 있다). 그 와중에 한 직원이 자신은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자신이 없다고 했다. 어느 정도 해보았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고, 다른 직원이 한 것이 훨씬 나아보여서 자신은 그 일은 하지 않는 게 전체 조직에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뭐랄까, 나로서는 쉽게 수긍이 되지 않았다. 몇 명 되지 않는 사무실에서 한 사람이 무슨 일이든 해야 하는 상황인데, 어떤 일은 하고 어떤 일은 못한다? 재차 물었다. 그럼 앞으로 보고서 일을 시키면 안 할 것이냐. 하긴 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퀄리티는 보장 못할 것 같다, 자신은 일이 맡겨지면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여하간 자신은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재차 강조했다. 

사실 그 직원은 항상 일을 굉장히 열심히 한다. 업무 중에 딴 짓을 하지 않고 크게 일이 많지 않아도 야근을 한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단순하게 전력을 다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가 아는 방식 안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해도 좀 더 멀리서 보면 다른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예전에 읽었던 배우 하정우의 책이 생각났다. 사람마다 최선을 다하는 수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가 든 사례가 재미있다. 어떤 사람이 감나무에 열린 감을 먹고 싶었다. 그래서 감나무 밑에서 입을 벌리고 기다린다. 그야말로 감이 저절로 떨어지길 기다리는 것이다. 다리도 아프고, 입도 아프다. 같은 자리에 가만히 있느라 좀이 쑤셔 죽을 지경이다. 이렇게나 애를 쓰는데도 감은 떨어지지 않는다. 최선을 다하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객관적으로 볼 때 이보다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 감을 먹고 싶다면 나무 위에 올라가서 가지를 흔들거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감을 직접 따야 한다.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결과는 없다. 최선을 다하는 방식이 잘못된 것이다.

하정우가 말하는 또 다른 사례는 박찬욱 감독에 대한 것이었다. 디테일에 강한 감독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직접 작업해보니 차원이 다르더라는 것이다. ‘아가씨’ 영화에서 배우들의 일본어 대화가 필요하자, 몇 개월 전부터 배우마다 과외선생을 붙이고 달마다 수준을 체크했다고 한다. 어떤 배우에게 일본어 사투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자 그에 맞는 과외 선생을 따로 구해서 붙였다고 한다. 그걸 보고 하정우는 사람마다 최선을 다하는 수준이 다르구나, 정말 높은 수준의 사람과 작업을 해야 나 스스로도 훨씬 더 발전 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직원이 정말 보고서를 잘 쓰고 싶었다면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아질지 보고서를 들고 나나 다른 소장님들에게 물어볼 수 있다. 아니면 회의를 하자고 해서 자신의 보고서를 깔아놓고 공개 크리틱을 요청했을 수도 있다. 하다 못해 참고할 만한 보고서 샘플을 구해달라고 해서 그것들을 연구해보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직원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정도 안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아마 이런 말을 하면 그 직원은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라고 할 것이다. 사실 자기 계발서를 읽거나 인생 멘토라는 분들의 조언을 들으면서 우리가 흔히 하는 생각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까지 인생을 힘들게 살고 싶지 않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정말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본다는 것이다. 그런데 꺼림직하고 차마 못할 것 같은 것을 제쳐 놓고 익숙한 것만 하는데, 그것이 과연 최선을 다하는 것일까? 이렇게까지 해야 한단 말인가란 생각이 들 정도로 극단까지 밀어 붙이고, 시도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해본 뒤에야 ‘최선을 다했다’란 말을 쓸 수 있지 않을까?

나도 가정 생활에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만, 요리도 못하고 옷 정리도 잘 못한다. 나쁘게 보면 그 부분에 선을 그은 것이다. 아내가 그것들을 상대적으로 잘한다는 이유로 오늘도 그 일을 하고 있다. 그렇게 보면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비단 집안 일 뿐만 아니라, 내가 하는 일에서도 나도 모르게 그런 선을 긋고 있을 수 있다. 그것을 뛰어 넘어야 한다.

누군가는 인생을 너무 피곤하게 생각하고,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넘기기가 힘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같은 방식으로 매일 매일을 살아서는 안된다. 하루 하루 발전해야 하고, 그 방법에 대해 고민해보아야 한다. 

내일은 오늘보다 어떤 방식으로 좀 더 ‘최선을 다할지’ 고민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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