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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건축가 Aug 29. 2020

건축가가 나을까 집장사가 나을까?

물 새는 집을 만드는 건축가가 나은걸까? 따뜻하고 깨끗한 집을 만드는 집장사가 나은걸까? 


며칠 전 뉴스에 소위 ‘갑질 건축가’가 등장해서 화제가 되었다. 한남동에 한 세대에 무려 60억원을 호가하는 초고급 빌라가 등장했는데, 화려한 외견과는 달리 하자 투성이인데다 공사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작업자들의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외견으로 본 건물의 모습은 더 없이 고급스럽고 말 그대로 ‘비싸’ 보인다. 대리석으로 마감된 메스는 감각적이고 세련된 모습이고, 석재로 마감된 담장은 고급스러움을 더한다. 내부 인테리어 자재들도 말할 것도 없이 초고급이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연예인들이 산다고 하니 그야말로 ‘럭셔리’의 상징같이 느껴진다.

  실상을 보니 사람이 제대로 살기 힘든 수준이다. 비가 오니 창호에선 물이 줄줄 새서 걸레로 닦을 수 없는 정도고, 실내에는 인테리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양동이가 등장한다. 지하주차장에는 물이 마치 폭포처럼 물이 쏟아져 내린다. 입주 후에도 하염없는 보수 공사에 들어갔다는데, 입주자라는 분의 SNS를 보니 정말 고통스러워보였다. 비싼 돈을 내고 입주했더니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아 수리중이고, 집 안으로 그라인더 작업으로 인한 먼지가 밀려들어온다. 지하층은 결로 때문에 물기가 마를 날이 없다. 결국 계약을 파기하고 그 집을 ‘탈출’했다고 적고 있었다. 작업자를 대하는 건축가의 모습은 더욱 가관이다. 육두문자를 써가며 작업자를 무시하고 막 대하는 걸 보니, 얼마나 힘들게 공사를 했을지 짐작이 된다.

 이쯤 되면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용도, 혹은 시세차액을 노린 재산증식의 용도가 아니라 순수하게 주거라는 건축의 본질적인 의미를 따져봤을 때 과연 저 집이 제대로된 집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가 의심스러웠다. 저런 집에 사느니 차라리 우리가 소위 ‘집장사’라고 흔히 부르는, 아니 비하의 의미를 담아서 부르는 사람들이 만드는 집에서 사는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집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비가 왔을 때 물이 새지 않아야 하고, 겨울에 따뜻해야 한다. 물도 잘 나와야 하고 전기도 잘 들어와야 한다. 자동차가 길에서 멈추지 말아야 하고, 옷이 갑자기 찢어지면 안 되듯이 말 그대로 ‘당연한’ 집의 의무 같은 것이다.   

21세기가 되었는데도 물이 새는 집이 있다. 그것도 생각보다 많이 있다. 한 세대에 60억원을 쏟아 부었다는 빌라가 그렇다면 다른 집은 어떨 것인가.

저 건물의 건축가라는 사람의 인터뷰를 찾아보았다. ‘꾸준히 미니멀리즘에 바탕을 두고 있다.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파격은 짧고 절제는 길다’는 말처럼 기본적으로 예술적인 기교나 각색을 최소화하고 사물의 근본 즉, 본질만을 표현했을 때, 진정한 리얼리티가 달성된다는 믿음의 근거하에 건축을 진행한다...‘ ‘눈 녹아 골짜기 개울을 이루는’ 풍경을 보고도 저런 말이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집에서 미니멀리즘이 어떤 의미가 있으며, 리얼리티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조차도 ‘건축적인 완성도를 위해서’ 검증되지 않은 디테일을 시도할 때가 있다. 사실 시공사의 말만 듣고 검증된 방법, 하던 대로의 방식만 적용하면 그야말로 뻔한 건물이 되어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적정선이 필요할 것 같다. ‘물 안새고 따뜻한’ 건물조차 되지 못한다면 어떤 디테일, 어떤 건축 미학도 의미가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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