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학교에서 건축설계를 배우던 시절에 가장 자주 듣던 질문이 ‘왜 그렇게 했는가’하는 것이었다. 입구는 왜 이쪽으로 냈는지, 메스는 왜 이쪽으로 꺾었는지, 창문은 왜 이쪽으로 냈는지 등등. 모든 디자인에는 이유가 필요했고, 끊임없이 교수님들을 설득해야 했다. 물론 교수님들마다 다소간의 성향 차이는 있었지만 대체적으로는 비슷했다.
사실 이 ‘왜?’라는 질문이 때론 납득이 안됐다. 건축설계도 디자인의 일종이라고 한다면, 다른 디자인 분야에서는 굳이 이유를 따지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여성복 디자인에서 옷소매를 따라 여러 개의 단추를 쭉 달았다고 하자. 사실 예쁘라고 한 것이지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것이 예쁘게 보일지, 아닐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취향에 달려있다.
혁신의 아이콘이라고 하는 아이폰의 디자인을 보자. 아이폰 4는 모서리에 최소한의 반지름값으로 필렛(둥글리기)을 주고 금속(스테인레스)로 주변을 둘러싸는 디자인을 채택했다. 하지만 이 금속재질은 전파방해를 일으켜서 기술팀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고, 결국 잡스의 강한 고집으로 관철되어 출시되었다고 한다. 즉, 아이폰의 금속장식 또한 예쁘다는 이유 말고는 달리 내세울 게 없다.
건축에서도 이러한 예는 많이 있다. 예전에 쓴 글에서 거론했던 ‘벽돌영롱쌓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단열에서도, 채광에서도, 환기에서도,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시공상의 편의에 있어서도 유리할 것이 없는 벽돌 영롱쌓기는 오로지 ‘예쁘다’는 이유로 오늘도 시공되고 있다.
여기서 건축 디자인에서만 굳이 ‘이유’를 따지는 이유를 생각해본다. 대략 두 가징 이유가 떠오른다.
첫 번째는 건축이 다수의 대중이 이용하는 거대한 공공재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막대한 자본금이 투입되는 건축물은 그만큼 여러 사람에게 받아들여질 만한 디자인이어야 한다. 그러기에 모든 디자인에서 합당한 이유를 찾게 된다. 이것은 특히 정부 주도로 만들어지는 공공건축물에서 자주 벌어지는 현상인데, 그러기에 누구에게나 친숙한, 문안한 디자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 이유는 90년대~2000년대를 풍미한 네덜란드 스타일의, 논리적 설계방식이 끼친 강한 영향 때문이다. 그들은 설계에 영향을 주는 모든 요소들을 논리적으로 분석해서 설계에 적용하고자 했다. 마치 순서도에 설계 조건들을 입력하면 설계가 튀어나오는, 명확하고 객관적인 설계프로세스를 구축하고자 했다. 그러다 보니 모든 설계 과정에 ‘이유’가 필요했다. 그 영향은 전 세계 건축계에 매우 강한 영향을 끼쳤고, 우리나라 건축가들도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고 본다.
내가 결국 하고 싶은 질문은 이 ‘WHY?'라는 질문이 여전히 유효한가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예전에 다녔던 회사의 대표이사님께서 하신 말씀을 인상 깊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 'WHY?'의 시대가 아니라 ’HOW?'의 시대가 올 것이다.” 즉, 비정형 등 시공이 어려운 건축물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BIM이나 RHINO 등의 툴을 활용하는 새로운 설계방식에 빠르게 적응하고 선도해가야 한다는 뜻이다. 대형 설계사무소의 입장이 반영된 말이기도 한데, 테크놀로지가 강조되는 세태를 잘 반영한 듯 했다.
하지만 최근에 작은 아틀리에 사무실에서 일하다 보니, 소규모 건축시장의 트렌드는 확실히 달랐다. 내가 느낀 최근의 추세는 ‘취향’의 시대라는 것이다. 인테리어에 기반한 섬세한 감각을 소위 ‘익스테리어’까지 확장시킨 건축물이 유행이다. 이를테면 곡면형상의 메스, 장난스러운 모양의 둥근 아치창과 깔끔하고 얄팍한 금속 후레싱, 화사한 색상의 벽돌/ 스타코/ 타일 마감 등을 앞세운 건축물들이 대표적이다. 벽돌 재료가 유행하는 이유도 이러한 수공예적이고 섬세한 디자인을 선망하는 시류에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러한 스타일의 디자인에는 별다른 이유가 필요 없다. 건축주와 대중의 취향에 잘 맞아떨어져서 유행을 타고, ‘인스타그램’에서 입소문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최대의 목표다.
세계적인 추세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전세계에서 지역성, 개별성을 앞세운 각자 스타일의 건축들이 춘추전국시대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역시 디자인에서 ‘WHY?'를 묻는 경향은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휘발성 강하고 시류에 편승하는 듯한 이러한 인테리어 스타일의 설계가 영속적인 성격을 가지는 건축과 완전히 맞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내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시류와는 구분되는,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가는 것이 나의 지향점이다.
결국, 설계에서 ’WHY?'를 물으면서 이유를 찾는 것은 더 이상 예전처럼 유효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나 이전의 세대가 파사드에서 창호와 솔리드벽면의 비례, 구성을 따지는 미감의 시대였다고 하면 내가 공부했던 90년대 후반~2000년대는 ‘WHY'를 묻는 이성과 논리의 시대, 2010년대 이후로는 이유보다는 실제로 구현하고자 하는 방법론과 취향을 강조하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이 시류에 단순히 따라갈 것인가, 그 와중에서도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하고 차별점을 만들어갈 것인가. 그것은 건축가들 개개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물론 나의 선택은 후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