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협회에서 매달 나오는 책이 있다. 건축사라는 잡지 형식의 책인데, 이번 달에 4.3그룹 특집으로 건축가 승효상의 인터뷰와 기타 관련 기고 등이 실렸다. 4.3그룹은 현재 거의 원로급이 된 승효상, 민현식, 김인철, 이성관 등으로 이루어진 그룹으로 90년대 초반에 30~40대의 젊은 소장파 건축가들이 주축이 되어 구성되었다. 사실 지금의 시각으로 볼 때 90년대~2000년대의 스타 건축가들이 거의 다 포함되어 있다.
인터뷰의 내용은 4.3그룹 결성 30주년을 맞아서 그 의의와 현대건축사회에 미친 영향 등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사실 4.3그룹 이후에 한국 건축계 안에서 그 정도의 영향력과 건축 담론에 대한 진지함, 치열함을 보여준 그룹은 없었던 것 같다. 그들은 한 달에 한번 모여 자신들의 작품을 서로 격렬하게 비평하고, 교수(서울대 김광현 교수)를 초청하여 강연을 듣기도 하며, 해외 여행도 다녀오면서 생각을 정리하여 전시회를 열고 책을 출간하기도 한다. 승효상은 이러한 건축적인 연대가 자신의 작업과 건축계 전반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자평하고 있다.
이 중에 눈에 띄는 것이 젊은 세대에 대한 평가였다. 최근의 젊은 건축가들은 독립의 시기는 눈에 띄게 빨라졌지만, 설계 작업에 대한 태도나 철학 등이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현업에 뛰어들면 중심을 잡지 못하고 건축주의 하수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을 한다. 내 기준에서 다시 말해보자면 자신만의 건축관이 정립되어 일이 없는 상황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져도 버텨나갈 힘이 생기지 않으면 여건에 휘둘려서 원하지 않는 일을 하거나 시류에 영합할 수 있다는 뜻인 것 같았다. 그가 현재 젊은 건축가들의 작업을 보는 시각을 느끼게 한다. 특별한 건축적 철학이나 생각들(특히 공공적인 가치)이 느껴지지 않고, 수익을 위한 건축주의 요구와 시대적인 유행, 시류에 영합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 소위 ‘젊은 건축가’들의 작업에서 느껴지는 아쉬움이라는 것이다. 먹고살기 힘든데 요구하는 것이 너무 많다는 의견이 있지만, 그 때도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다고 말한다(정확히는 질문자가 그때도 힘들었지 않나 라고 물어본다. 승효상은 그런 질문을 받게 되면 공공적 가치라는 이야기를 꺼낸다고 한다).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가로서, 앞선 세대의 선배로서 충분히 할 만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평가는 나름 젊은 건축가로서 조금 (사실은 많이) 박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겉으로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다들 어렵고 힘든 현실 속에서 어떻게든 디자인이라는 것을 해보겠다고, 설계라는 것을 해보겠다고 아등바등 그야말로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을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물론 나도 그러하다).
이 인터뷰를 보면서 최근 사회에서 벌어지는 세대 간 갈등이 떠올랐다. N포 세대라는 말이 있다. 취업도,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모두 포기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젊은 세대들이 미래를 바라보고 계획을 세워나가기에 주변 상황이 너무도 어려워서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걸 보고 기성세대들은 ‘나 때도 어려웠다. 먹고 살기 힘들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잘 살았다. 그런데 왜 너희들은 못한다고만 하느냐?’라고 말한다. 그들의 말에 따른다면 지금의 문제는 단순히 젊은 세대가 나약하기 때문일까? 기성세대 부모님들이 잘 먹고 잘 살도록 풍족하게 키워줬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으로 몰리는 것을 못 견디는 것일까?
젊은 세대들은 기성세대가 사회로 진출하던 시대와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고 말한다. 그 때는 나라가 발전하는 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취업이나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늘어나는 시점이었고, 경쟁도 지금보다 치열하지 않았다. 지금은 나라가 성장할 만큼 성장하여 정체상태에 도달한데다 기성세대의 은퇴시점도 점점 늦어져 젊은 세대에게 돌아갈 기회나 재화가 적어졌다. 물가도 엄청나게 올라서 이제는 집 한 채를 사려고 하면 거의 평생을 모아도 모자랄 지경이다. 이런 모든 상황들이 불안정하다보니 수많은 젊은이들이 공무원 등의 안정적인 직업을 구하려고 한다. 취업조차 어렵다보니 결혼이나 출산은 꿈도 꾸지 못한다. 물론 좀 더 풍족한 시대에 살게 되어 조금은 생각이 나약해졌을 순 있겠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치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건축계도 비슷한 논리를 대응해볼 수 있다. 90년대는 누가 뭐래도 개발 붐이 일었던 시기이다. 88올림픽 이후에 황금경기가 IMF때까지 이어졌고 건축판에도 일거리가 넘쳐났다고 회고되던 시기이다. 건축사의 숫자도 지금보다 훨씬 적어서 당시에는 건축사만 있어도 잘 먹고 잘산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지금 건축사만 가지고 먹고산다는 이야기를 하면 아마 비웃음을 살 것이다. 얼마 되지 않은 일감을 가지고 건축가들끼리 제 살 깎아먹는 경쟁을 벌인다. 그러다 보니 소득은 줄어들고, 설계비는 더 내려가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물론 당시에도 어려운 점들이 있었겠지만, 그 때와 지금이 단순 비교될 순 없다. 아마 각자 어려웠던 지점이 다를 것이다.
사실 모든 상황을 1대 1로 비교하긴 힘들다. 그들이 겪었던 상황과 지금의 세대가 겪는 상황은 분명히 다르고, 대응할 수 있는 방식도 다를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기성세대가 볼 때 지금 세대가 때론 한심하고 나약해보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젊은 세대가 겪는 어려움은 그 때와 다르다. 더 어렵고 힘든 부분이 있다. 그 점을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젊은 세대가 볼 때 기성세대는 지금과 동떨어진 옛날 얘기만 하는 고집 센 ‘꼰대’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분명 그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을 것이다. 현재의 어려움에 대한 해법은 분명 과거에서 찾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 상대에 대한 마음을 열고 소통하면서 지금의 상황을 개선하고자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사회에서나 건축계에서나 말이다.
선배 건축가들은 기본적으로 후배 건축가들에 대한 애정이 있을 것이다. ‘아 쟤들이 이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도 뭔가 해보려고 하는 구나’라는 애틋한 생각이 있을 것이다. ‘주마가편’이라고, 그 와중에서도 아쉬운 부분이 보이기 때문에 애정 어린 지적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부터 열린 마음을 갖고 그런 지적을 받아들여보고자 한다. 분명 내가 느끼기에도 지금 세대는 ‘먹고 살기 바빠서’ 건축 담론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이 든 건축가가 담론이나 철학이 없다면 외면당할 수 밖에 없다’는 승효상의 말은 정확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논쟁이 건축계를 좀 더 건강하게 하고 서로 열린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