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프로세스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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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글쓰는 건축가 김선동입니다. 오늘은 설계의 두 번째 단계인 프로그램 분석과 컨셉 잡기, 메스 디자인까지 다뤄볼려고 합니다. 분량이 얼마나 나올지 몰라서 이 정도까지 적어 보았는데요. 써보면서 글이 나오는 정도에 따라 다 다룰지, 다음 편으로 이어서 갈지 결정하려고 합니다.
설계 과제를 시작하게 되면 프로그램이 주어집니다. 이것이 뭉뚱그려서 모호하게 제시될 때도 있고, 현상설계처럼 구체적으로 제시될 때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가 되었든 프로그램 분석이 필요합니다. 내가 짓고자 하는 건물이 어떤 프로그램을 담게 될지 정확히 파악해야 제대로 된 설계가 나오겠죠. 모호하게 제시될 경우는 학생이 직접 그 시설의 프로그램들을 파악하고, 스터디하면서 새로운 프로그램까지 제시해보라는 의도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 그런 과정까지 전부 말씀드리긴 힘들 것 같고, 정확히 제시된 경우를 중점적으로 말씀드려보고자 합니다.
1. 프로그램 표 - 공용공간과 전용공간 파악하기
프로그램 구성 예시. 출처: 거제 반다비 체육센터 건립사업 발표자료
설계가 시작되면 위와 같은 표가 제시됩니다. 가장 일반적이라고 할 만한 것을 가져와 봤는데요. 거의 현상설계 방식으로 완전히 짜여진 방식으로 하는 설계스튜디오는 없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어느 정도 자율성을 부여할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학교 설계니까요. 대지분석 등을 바탕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또는 이 사이트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프로그램을 추가해서 기존 프로그램 표를 편집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가장 주요한 몇 가지 프로그램의 종류와 필요한 실의 면적, 전용공간과 공용공간의 비율 정도는 파악하셔야 합니다. 제가 이번학기에 담당하고 있는 마을 커뮤니티 시설을 예로 들어본다면, 베드민턴장을 설치하고 싶다면 그 크기와 높이, 강당을 설치하고 싶다면 마찬가지로 크기와 높이 등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평면을 설명할 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학생여러분은 계획하실 때 공용이 지나치게 커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공용공간에 계단이나 아트리움 등 주요한 하이라이트(?) 개념들이 출현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이 부분을 크게 만드는 것이죠. 그리고 전체 면적에 대한 제약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보니 이것 저것 넣다보면 건물 규모가 계속 커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무 설계처럼 면적 제한을 빡빡하게 적용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감을 익힌다고 생각하시고 면적 체크를 계속 해보시기 바랍니다. 실무를 하시면 공용 면적이 너무 커서 깎아내느라 고생하실 일이 생길 것입니다.
2. 바둑판 모양으로 면적 파악하기 - 구조 모듈과 연계
아무리 찾아도 인터넷에서 이 표가 안보여서 내가 가진 책에서 찍어서 올려봅니다.
건축설계수업 - 구본덕 저
다음은 설정된 프로그램 표를 가지고 면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표를 만드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흔히 '바둑판'이라고 불리는 면적표를 만드는 것인데요. 먼저 7 x 7미터가 되었든, 8 x 8 미터가 되었든 모듈을 정해서 거기에 프로그램을 적용시켜봅니다. 도서관 100제곱미터라고 하면 7 x 7 모듈 2개 정도가 되겠죠. 화장실 25제곱미터라고 하면 0.5모듈 정도 될 것입니다. 이렇게 다 정리하고 나면 숫자로 보는 것보다 면적이 눈에 보이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쉽습니다. 나중에 메스가 나오고 그 위에 모듈대로 그리드를 그린 후에 모듈 개수대로 배치하는 식으로 대략적인 평면을 짜보는 것이죠. 그래서 일단 모듈화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물론 한번에 끝나지 않습니다. 메스도 변하고, 모듈도 변하고, 기둥 간격도 변하고 모든 게 다 변하기 때문에 그때 그때 다시 해줘야 합니다. 하지만 시행착오를 두려워해서는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이 태도, 마인드는 중요하기 때문에 글 후반부에 다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모듈 크기는 기둥 간격, 구조 모듈과 일치하도록 설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주차장 3대가 들어간다고 가정할 경우 기둥간의 간격은 약 8.1미터가 되는데요(이 치수가 왜 8.1미터인지는 도면과 관련된 글에서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이것이 그대로 평면의 모듈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것으로 설정하는 것이 나중에도 적용하기 수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치수에 얽메이시면 설계가 어려우실 수 있습니다. 어차피 설계를 하면서 계속 바뀔 것이기 때문에 지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부담 가지지 말고 각 프로그램의 크기를 파악한다는 마음으로 모듈의 크기와 개수를 정해두시면 됩니다.
3. 진입 동선에 따라 각 프로그램의 연결 생각하기
대강 이런 개념의 구상을 해보셔야 합니다. 이미지 출처: https://www.pinterest.co.kr/pin/222857881544547425/
각 프로그램들을 진입 동선에 따라 위계를 생각해서 배치해봅니다. 출입구 - 로비 - 복도 - 각 전용공간 으로 이어지는 것이 자연스럽겠죠. 그리고 상대적으로 개방된 공간이라 앞쪽에 배치할 것과 좀 더 프라이빗한 공간이라 뒤로 배치할 것을 생각해서 위계를 짜봅니다. 도서관이라면 어린이 열람실이나 정기 간행물실이 앞쪽에 배치될 것이고, 원장실 같은 공간은 뒤로 배치될 것입니다. 이런 위계를 짜는 것을 말합니다.
4. 어느 층에 놓을 것인지 - 단면 개념 구성
oma의 전형적인 단면 다이어그램 이미지출처: https://www.pinterest.co.kr/pin/63894888435569266/
3번과 조금 비슷한 이야기인데요. 각 프로그램이 어느 층에 오는 것이 적당할지 단면상에 배치해봅니다. 역시 좀 더 개방적인 프로그램을 저층부에, 좀 더 프라이빗한 프로그램을 고층부에 배치하는 정도로 감을 잡아봅니다. 지금 단면 개념을 잡는 것 역시 앞으로 계속 바뀔 것이기 때문에 우선 정말 감을 잡는다는 생각으로 배치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mvrdv의 전형적인 컨셉 다이어그램. 이미지 출처: https://twitter.com/MVRDV/status/1405123207888265219/photo/2
이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컨셉-CONCEPT-을 잡을 순서입니다. 예전에 저를 지도하신 교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 '컨셉의 개념을 모르겠다'던 학생이 있었다는 농담이 생각나는데요. 그만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같은 것이 이 컨셉입니다.
사이트가 산에 있으니 산의 흐름을 가져온다는 분도 있고, 주변에 아이들이 많으니 아이들 감성으로 여러 모양을 가지고 온다는 분도 있습니다. 요새 유행이 비정형이니 자하디드처럼 한다는 분도 있고, 세지마에 꽂혀서 일본 건축처럼 한다는 분도 있습니다. 모두 저마다의 컨셉을 들고 오십니다. 아무튼 설계에는 컨셉이 필요합니다. 그걸 중심으로 잡고 한 학기 설계를 끌고 나가는 기준이 되기도 하고, 그걸로 '나는 남들과 조금은(?) 다르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하죠. 하지만 컨셉에 얽메여 오히려 한 학기를 힘들게 풀어가시는 분도 많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생각하는 컨셉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컨셉은 알기 쉽고 단순하게 - 어려운 말을 하려고 하지 말자
가끔 철학적인 개념을 들고 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통섭', '순환', '치환' 등등 .. 어떤 분은 '소리를 건축화하겠다' ' 공기의 흐름을 건축화하겠다' 등 상당히 현학적이고 어려운 주제를 잡는 분도 보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컨셉'은 쉽고 단순할수록 좋다는 생각입니다. 그냥 '중정을 하겠다', '계단식 메스로 테라스를 많이 확보하겠다', '아트리움을 크게 넣겠다' '메스를 잘게 쪼개서 골목길 같은 공간을 만들겠다' 정도라도 괜찮습니다. 여기에 조금 특별한 프로그램 정도가 적용되면 괜찮다고 봅니다. 아까 말씀드린 마을 커뮤니티 시설이라면 마을사람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잇는 공유주방과 식당이라든지, 돌봄시설과 연계된 외부 놀이공간 정도가 될 수 있겠습니다(이번학기 저희 학생들의 아이디어들입니다). 아무튼 어깨에 너무 힘을 주고 뭔가를 하려고 하면 잘 나오지 않습니다.
큰 아이디어를 단순하게 잡고, 거기서 출발해야 풀어나가기 쉽습니다. 말부터 어렵게 잡고 나면 그것을 건축화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건축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컨셉 중에 '통섭'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학생 시절, 그러니까 2000년대 초반에 한창 유행하던 단어가 저 '통섭'인데요. 여러 분야, 여러 학문에 얽메이지 않고 자유롭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뭔가 새로운 결론 내지는 영향을 만들어 낸다.. 는 것이 저 단어의 뜻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것을 어떻게 건축화할까요? 아마 여러 메스에 각자 다른 프로그램을 삽입해서 흩어놓고 사잇공간에서 교류하게 만든다, 내지는 랜드스케이프 개념으로 층과 층, 땅과 건물을 이어주면서 교류하게 만든다..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그건 사실 그냥 '분동 내지는 중정형 건물을 만들겠다' '판을 들어올리고 연결해서 땅, 주변건물과 연계하게 하겠다'라는 쉬운 말로도 정리가 되는 내용입니다. 굳이 '통섭'이라는 어려운 단어를 끌어들이지 않아도 충분히 설계가 가능하다는 얘기죠.
그러니 정히 어렵고 소위 '있어보이는' 컨셉을 잡으려고 하신다면, 시작은 쉽게 하시고 나중에 마감하면서 제목을 붙일 때 그런 어려운 이야기를 가지고 오시기 바랍니다. 처음부터 어렵게 생각하고 그걸 건축으로 구현하려고 하면 잘 되지 않습니다. 물론 이건 저의 생각입니다. 다른 건축하시는 분들이나 교수님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시고 가르치실 수 있습니다. 참고만 해주시기 바랍니다.
2. '컨셉'에 연연하지 말자 - 컨셉은 어차피 유동적인 것이다. 디자인이 바뀌면 컨셉도 바꾸면 된다.
컨셉은 설계의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원불멸'하게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설계는 계속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컨셉도 변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A 컨셉으로 B 디자인이 나왔다고 생각해봅시다. 디자인은 계속 발전해가는데, 이제 더 이상 A 컨셉과는 맞지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이럴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컨셉에 맞춰서 B 디자인을 바꿔야 할까요? 아닙니다. A 컨셉을 바꿔야 합니다. 어차피 디자인은 점차 디벨롭되어 픽스되어 가기 때문에 바꾸기 어렵습니다. 바꾸기 쉬운 건 컨셉입니다. 그러니 일의 효율성을 생각해서 컨셉을 바꾸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이것도 제 생각입니다. 정말 좋고 대단한 컨셉을 잡으셨다고 한다면 그 컨셉을 고수하시고 디자인을 바꾸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아마 웬만큼 진행이 된 상태라면 그 디자인이 마음에 든 상태일 것이고, 바꾸려면 정말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때는 디자인에 맞는 새로운 컨셉을 구상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실무에서도 현상설계를 할 때 디자인이 다 나오면 보고서와 패널 작업을 하고, 개념을 다시 정립합니다. 물론 대체적으로 정해놓은 건 있지만, 보고서를 쓰면서 그것을 구체화하고 포장해서 그럴듯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컨셉보다는 디자인이 우선입니다(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개념으로 하고 싶다'는 정도의 대체적인 큰 흐름은 가지고 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3. 떠오르는 게 없다면 컨셉을 굳이 정하지 않아도 좋다. 일단 조건에 맞는 '좋은 건축물'을 만들고,
나중에 적당한 걸 끌어다 넣으면 된다.
정말 좋은 생각, 컨셉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저 대지와 프로그램에 맞는 '좋은 건물'을 만드려고 생각해보십시오. 학교라고 하면 학생들에게 좋은 건물, 마을 커뮤니티 시설이라면 주민들에게 좋은 건물이 뭔지 생각해보시고 사례 스터디를 하시고 '일반적인' 건물을 해본다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물론 이것이 학기 말까지 계속 이어지는 것은 좋지 않고, 나만의 특화 아이템을 하나 정도는 끌어온다고 생각하셔야 좋습니다. 일단 '좋은 건축물'을 만들고, 거기에 맞는 컨셉은 차후에 생각해서 가지고 와도 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컨셉'에 대해서 대략적인 제 생각을 말씀드려보았는데요. 결국 컨셉은 '어떤 걸 하고 싶다'는 정도의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 방향설정 없이 한 학기 설계를 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 방향이 그저 '하고 싶으니까요' 정도로 끝나면 곤란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근거는 있어야 합니다. 그 근거, 데이터들은 어느 정도는 내 의도대로, 자의적으로 편집된 것이라도 좋습니다.
만약 건물에 중정을 크게 두고 거기에 나무를 잔뜩 심어 공원을 만든다는 컨셉을 잡았다고 해봅시다. 사이트 조사를 해봤더니 주변에 숲이나 나무가 없다면 그것들이 모자라니 난 중정을 만들어 나무를 잔뜩 심겠다..라고 하면 됩니다. 만약 주변에 숲이 있어 나무가 많다면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주변 흐름을 이어와서 건물 안에 나무를 많이 심는다고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변 상황은 내가 보는 시각에 따라,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차피 학생설계이기 때문에 모든 데이터, 근거들을 따져 물을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석하고 포장해서 보여주느냐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컨셉의 방향은 분명할 수록 좀 더 매력있어 보일 것입니다.
전형적인 메스 스터디의 사진. 이 정도로 여러 가능성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이미지 출처: https://www.pinterest.co.kr/pin/333407178649012330/
이제 설정된 컨셉과 프로그램 등을 메스(MASS, 덩어리)로 구현해볼 시간입니다. 이 메스 스터디 과정을 많은 학생들이 많이 힘들어 하십니다. 이게 어렵다고 저에게 메일을 보내신 분도 있었습니다.
일단 정해진 면적과 건폐율, 용적률 등으로 박스 형태로 사이트에 던져 봅니다. 대강의 면적, 부피 개념은 가지고 가야 하니까요. 거기에 내가 정한 프로그램과 컨셉 개념을 적용시켜 디자인을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1. 컨셉은 메스에서 바로 보여야 한다.
건축 컨셉모형 사례. 이미지출처: https://www.firstinarchitecture.co.uk/architectural-model-making-the-guide/
앞서 말씀드린 디자인 컨셉은 메스 디자인에서 바로 보여야 합니다. 1초만에 의도를 알 수 있다면 가장 좋습니다. 저는 사실 컨셉은 말로 하는 게 아니라 메스에서 표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로 메스 디자인은 중요합니다. 설계 과정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죠. 이게 잘 나오고 마음에 들어야 이후에 이어질 도면 작업 등에서 탄력이 붙어서 힘있게 밀고 나갈 수 있습니다. 사실 그럴듯한 설계 개념을 잡지 않고 바로 메스 디자인을 하셔도 상관 없습니다. 아까 말씀 드렸듯이 나는 중정이다, 혹은 테라스다 등의 큰 방향만 설정하고 바로 디자인을 하셔도 됩니다.
다시 한번 강조드리지만 메스 디자인은 사실상 학생 설계 레벨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입니다. 여기서 개념이 잘 드러나는 괜찮은 그리고 학생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나와야 이후 과정을 순조롭게 이어갈 수 있습니다. 학생 마음에 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마음에 안들면 이후 과정 과정이 쉽지 않고, 결국 엎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다소 시간이 들더라도 마음에 드는 것이 나올 때까지 계속 메스를 잡아보시기 바랍니디. 이후에 이 메스 안에 평면을 잡으면서 맞지 않는 것, 말이 안되는 것은 다시 메스로 돌아와서 고치고 피드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메스에 맞춰 평면을 고치고 발전시키고.. 이것을 반복하면서 디벨롭해가는 것이 건축 설계의 핵심입니다.
학생 설계에서 재료에서 뭔가 보여준다던지, 디테일을 실험적으로 한다던지.. 하는 식의 시도는 사실상 어렵습니다. 잘 알지도 못할 분더러, 실제로 구현되는 게 아닌 만큼 CG나 모형에서 뭔가 표현되어야 하는데, 그게 기술적으로도 어렵죠. 메스가 단순한데 창의 비례 등으로 뭔가 보여주는 건 기성 건축가도 힘든 일입니다. 결국 학생 설계에서 보여줄 것은 메스 디자인입니다. 여기에 평, 단면이 잘 풀리고, 입면 창 디자인을 잘 한다면 더할나위 없겠죠. 아무튼 메스 디자인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을 또 한번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OMA, BIG 스타일의 건물과 국내 건축가 중 장윤규 건축가의 사례들을 자주 들곤 합니다. 모두 메스의 큰 흐름으로 개념을 강조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학생 설계는 이런 스타일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2. 단순함과 복잡함의 중간쯤.. 그 어딘가를 잡아야 한다.
메스가 너무 단순해지면 그냥 심플 박스가 되겠죠. 물론 이런 건물도 있습니다. SANAA의 건물 같은 것들이죠. 다만 이럴 경우 외피에서 뭔가 실험적으로 하던지, 창문 형태나 비율 등을 잘 조절해서 완성도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학생레벨에서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복잡하게 가느냐? 그것이 극단으로 간다면 모셰 샤프디의 실험적인 주택 같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다소 복잡해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SANAA의 zollverein school. 심플한 박스에 다양한 창으로 요소를 만들었다. 외관상으로만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미지 출처: https://www.archdaily.com/54212/zollverein-school-of-management-and-design-sanaa
모셰 샤프디의 해비타드 67. 이미지 출처: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yoookhms&logNo=120142290855
설계, 디자인이라는 게 참 어렵습니다. 누구에게는 단순, 심플, 정리된 것이 누구에게는 단조롭고 심심해보일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는 풍부한 것이 누구에게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워 보일 수 있습니다. 아래 표는 제가 학생들에게 자주 그려주는 것인데요. 여기서 건축가 스스로가 기준을 잡고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기준이라는 것이 대중적이고 일반인의 시각에 잘 맞는 것이라면 가장 좋겠죠. 학생 설계라면 지도 교수님을 설득해가야 하겠구요. 아무튼, 너무 단순해서도 안되고 너무 복잡해서도 안되는.. 그 중간 쯤, 적정선에서 메스를 잡아야 합니다.
단순하나, 풍부하냐? 단조로우냐, 복잡하냐? 같은 디자인도 보는 사람에 딸 ㅏ다르다. 그래서 설계가 어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3. 스케치업이 됐든, 모형이 됐든 좋다. 빨리, 여러 개를 후다닥 만들어보는 것이 좋다.
어떤 교수님은 스케치업, 라이노 등의 3D보다는 모형을 만들라고도 하십니다. 전 무엇으로 디자인 스터디를 하든 그것은 상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각자 마음에 드는 방법, 쉬운 방법으로 하시면 됩니다. 다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하나의 방식, 하나의 디자인에만 고착화되어 그것만 하시지 말라는 것입니다. 최소 3개 정도의 대안을 생각해보십시오. 컨셉도 하나만 잡지 마시고 2~3개를 잡아 보시고, 그에 맞는 메스 디자인도 최대한 많이 뽑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의 컨셉을 정해놓고 그것만 답이라고 생각하면 거기에 빠져 디벨롭이 안될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학기 초에 디자인을 정하실 때는 최대한 넓게 보시고 많은 가능성을 탐색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많이 펼쳐놓고 보면 맘에 드는 것이 하나 정도는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가르치는 사람 입장에서도 꼭 필요한 자세입니다. 학생이 하나만 들고 왔는데, 그것이 영 아니라면 교수님이 나서서 뭔가를 그려주던지, 그것이 아니라면 다시 해오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대안이 여러 개라면 그 중에 하나 정도는 가능성이 있을 가능성이 높고, 교수님도 그 방향을 잡고 뭔가 말을 해줄 수 있습니다(여러 개 들고 가도 그것들을 다 아니라고 한다면 전 능력 없는 교육자라고 봅니다). 학생 입장에서도 그런식으로 해가는 것이 덜 혼나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나름의 노하우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여러 개를 만드려면 하나 하나 성의있게 만드는 것보다, 여러 개를 대충 만드는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대충 만든다는 생각으로 초반에는 이것 저것 해보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한 학기의 스케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래의 그래프를 봐주시기 바랍니다.
개념 메스 디자인을 빨리 잡는 학생은 스타트가 빠릅니다. 그러면 그 뒤로 차츰 차츰 디벨롭, 빌드업을 해가면 문안하게 마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메스 디자인이 늦게 나온다면 스타트가 느린 셈이 됩니다. 그러면 그 뒤로 아무리 열심히, 빨리 진행을 한다 해도 그 격차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실제 디자인에 빨리 착수해야 한다, 빨리 그려서 메스 디자인을 빨리 잡아야 한다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간혹 시작부터 많이 헤매서 중간마감 이후에 메스 디자인부터 새출발을 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물론 하다보면 그런 경우가 많이 생깁니다. 하지만 이 차이는 이후에 벌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거듭 강조드리고 싶은 내용은 일단 마음에 드는 개념, 메스를 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체 학기의 운영과 퀄리티를 좌우합니다.
마지막으로 설계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흔히 쓰는 표현이 '설계는 생물이다'라는 말입니다. 시사 라디오에서 듣던 '정치는 생물이다'라는 말에서 따왔는데요. 정치인들은 상황에 따라서 말도 바꾸고, 입장도 바꾸죠. 그런 걸 보고 '정치는 생물이다'라는 말을 하는 건데요. 비슷하게 설계도 계속 바뀝니다. 하지만 그것이 두렵다고, 지금 해놓은 것이 나중에 헛수고가 될 까봐 지금 해야 할 것을 안하는 것은 굉장히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지금 해야 할 것을 안하면 나중에 이게 틀렸구나, 고쳐야겠구나 하는 식의 피드백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잘못된 것을 '해봐야' 어떻게 고치고 앞으로 나아갈지 알 수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 '일단' 해봐야 합니다. 쉽게 말해 '삽질'을 두려워하면 진도를 나갈 수가 없는 것이죠. 설계에서 시행착오는 어떤 건축가나 거쳐가야만 하는 일입니다.
모듈 설정, 컨셉잡기, 메스 디자인, 대략 조닝.. 등등 모든 것들이 그렇습니다. 일단 시작하고, 해봐야 합니다. 누가 해도 어차피 바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시작한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시작조차 안하면 바꿀 수도 없습니다. 시작을 해야 잘못된 걸 알고, 바꿀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완전한 걸 만드려고 하지 마시고, 일단 시작해서 무엇이든 만들고 그걸 수정해가면서 좋은 걸 만든다고 생각하십시오. 아무것도 만들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교수님, 교육자라도 해줄 말이 없습니다. 많이 생각하고 안만들어오는 학생보다 생각은 별로 없어도 많이 만들어오는 학생에게 해줄 말이 많습니다(물론 생각도 많고 많이 만들어오는게 제일 좋긴 합니다). 그러니 말씀드린 절차, 프로세스 대로 우선 한발 한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것들을 망설이지 않고, 겁없이 내딛는 사람이 결국 설계를 잘하는 사람입니다. 삽질을 두려워해서는 결코 설계를 잘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프로그램과 컨셉 / 메스 스터디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들이 덧붙여지다 보니 다소 내용이 길어졌네요.
다음 글은 사례조사에 대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픈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선동 건축사라고 합니다. 궁금하시거나 문의하실 점이 있으신 분은 댓글이나 아래 연락처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최대한 친절하게 답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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