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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건축가 Aug 29. 2020

밀도 높은 설계가 만들어내는 묵직한 건축의 힘

DAN 사옥 _김이홍 아키텍츠

http://www.leehongkim.com/#/onm/



김이홍 건축가는 2018년도 젊은 건축가상 수상자로 처음 알게 된 건축가다. 준공작은 1~2개 정도로 그리 많지 않았지만, 매우 진지하고 신중하게 공간과 형태에 접근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특히 실제 대지에 지어지는 것이 아닌, 마치 미술작품을 만드는 것과 같이 공간을 실험한 작품들을 선보였는데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것이어서 매우 신선하게 느껴졌다. 이는 우리가 흔히 주변 환경과 법규와 같은 조건, 건축주의 요구사항 등 건축 외부의 요인에 따라 설계하는 과정과는 반대로, 건축가 내부에 정착되고 확립된 언어들을 상황에 맞게 활용해서 실제건축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는 의도로 읽혔다

(http://www.leehongkim.com/conceptual - 이 카테고리에 있는 작품들을 참조하면 된다.) 뭔가 좀 더 예술가적인 성향이라고 할까. 그런 것이 느껴졌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느낀 건물은 패션 브랜드 DAN 사옥이었다. 우선 건물의 외관 부터가 범상치 않다는 느낌이 드는데,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발버둥’치는 여타의 근생시설, 업무시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특히 전면으로 드러난 파사드에는 창이 거의 없고 묵직한 메스로 이루어진 절제된 입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창호 주변의 사선형 벽은 건축가의 시그니쳐 언어처럼 다른 건물에도 사용되고 있는데(57E130 NY 콘도미니엄,http://www.leehongkim.com/#/project-002-1-2/) , 건축가의 감각을 잘 드러내고 있다.


노출콘크리트로 저층부를 구성하는 기단(포디움) 디자인은 최근 젊은 건축가들이 자주 사용하는 언어다. 상부는 북측에서 날아오는 사선제한선에 대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계단 형태를 취하긴 했지만, 기단부와 상부를 분절하고 상부 또한 일부 켄틸레버로 처리하여 마치 테트리스 조각과 같은 메스 형태를 잡아냈다. 이는 몇 개 되지 않는 개구부와 어우러져 차분하고 정리된 입면을 만들어낸다.


상부에는 타일이 시공되었다. 타일이라는 재료는 최근 인건비로 인해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건물에서는 잘 보지 못한, 거칠면서도 색감이 좋은 타일이 사용되었는데 저층부의 노출콘크리트와 잘 어우러진다. 타일을 고를 때 노출콘크리트와의 어울림에 많은 신경을 쓴 듯 하다.


저층부 출입구, 그리고 그와 연계된 건축적 산책로는 건축가의 섬세하고 숙련된 솜씨를 보여준다. 건축가는 1층에서 좁은 실내 로비에 연연하기보다 외부와 연계된 로비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높은 층고의 회랑과 노출콘크리트 원형기둥이 어우러지는 공간은 내부도, 외부도 아닌 중간 성격의 공간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시작된 ‘건축적 산책로’는 외부계단을 통해 3층의 외부마당을 거쳐 5층과 옥상까지 이어진다. 특히 3층 외부마당은 직원들이 나와서 쉬면서 소통할 수 있는 장소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산책로 중간인 4층과 5층에 포인트를 두어 인왕산을 조망하는 작은 전망대를 만들었다. 여기에 건물 내부에도 3~5층을 연결하는 내부계단이 있어 직원들의 소통을 돕는다. 개인적으로 3층의 담장이 다소 높아 폐쇄적인 느낌이 들어서 아쉬웠다. 아마 주변 건물의 민원 문제와 입면 처리에서 어려움이 있지 않았나 싶다. 


사실 ‘건축적 산책로’라는 개념은 말로는 쉽지만 실제로 적용하고자 하면 어려운 점이 많다. 피난에 필수적인 직통계단으로 처리해야 하고, 계단을 모아놓지 않고 길게 펼쳐놓으면 면적 확보 상 불리하기 때문에 계획하기가 쉽지 않다. 여기에 외부계단은 비가 많이 왔을 경우 하부공간의 누수문제 때문에 골치 아픈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이 건물에서 외부계단이 이 정도로 성공적으로 구현된 것은 건축가의 의지 덕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내가 이 건물에서 특히 인상적으로 본 것은 앞서 언급한 절제되고 정리된, 좋은 비례감의 입면과 외부 공간들을 연결하는 건축적 산책로, 내외부가 중첩되는 공간개념의 실현이다. 사실 내외부 공간의 중첩은 건축가가 그린 다이어그램을 보아야 비로소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나도 오래전 젊은 건축가 전시 때 본 것 같긴 한데, 인터넷상으로는 공개된 것이 없어 더욱 이해하기 힘들었다. 다만 정면 파사드에 드러나는, 마치 메스를 도려낸 듯한 개구부가 내부와 외부, 솔리드와 보이드를 연결하는 중첩된 공간으로서 이 건물에서 가장 중요한 KEY STONE(아치의 가장 상부 돌) 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을 대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전에 썼던 글에 언급한 대로 최근 건축계의 경향, 특히 ‘젊은 건축가’들의 작업들은 인테리어적인 감각에 의존한, 다소 유행에 따르는 감각적인 것들이 많다. 물론 반짝반짝하는, 재기 넘치는 것들도 많지만 그만큼 가볍고, 휘발성이 강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 와중에 김이홍 건축가의 작업은 다소 고전적인 비례감과 미적 감각, 공간에 대한 탐구를 보여주고 있어서 여타의 ‘젊은’ 건축가들과 완연히 다른 차별성이 느껴진다.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중심을 단단히 잡고 있는 느낌이다. 앞으로 이어질 그의 작업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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