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건축가들이 ‘지역성’을 이야기한다. 건축이라는 것이 인간의 삶을 반영하는 것인데, 세계 어디에든 똑같은 건물을 지어대는 현대건축, 소위 모더니즘 건축이라는 것이 맞느냐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 지역성의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곳이 ‘제주’이다. 제주라는 곳이 육지에서 떨어진 섬이고, 바다로 단절된 독립된 곳인데다가 한라산과 현무암, 바람이 많은 날씨, 육지보다 따뜻한 날씨 등등 굉장히 독특한 환경이기 때문에 육지와는 다른 문화가 만들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제주에 작업을 하는 건축가는 일반적인 육지의 건축과는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그런데 실제로 제주에 지어진 건축물이 육지의 그것과 완전히 다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대체적으로 비슷한데, ‘무언가 약간 다른’ 느낌의 무엇이 담겨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제주를 다니며 제법 많은 건물들을 보았다. 시가지나 관광지에 있는 큼지막한 건물은 사실 그다지 특징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투명성과 화려함, 장식성을 강조한 전형적인 건물들이 많았다. 그보다는 80~90년대에 지어진 듯한 단층 내지는 2층 정도의 작고 아담한 건축들에서 제주만의 느낌이 묻어났다. 전통의 초가집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근대화 이후에 지어진 주택들은 현대건축의 시공방법과 문법을 제주라는 땅에 적용하면서도 무언가 자신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듯한 시도를 하면서 재미있는 건물들이 만들어진 듯 하다.
첫 번째는 평지붕이 많았다. 이것은 육지에서 80~90년대에 지어진 많은 건물들이 그러했기 때문에 그다지 큰 특징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제주 건물의 특징은 이 옥상 공간을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의지가 보인다는 점이었다. 거의 모든 단층 주택 건물이 옆구리에 옥상으로 바로 올라가는 외부계단을 붙여놓고 있었다. 그리고 옥상의 난간 부분을 강조하는 스타일의 건물들이 많았다. 난간에 사각형, 삼각형, 동그라미 등 여러 가지 기하학적 무늬들을 사용해서 장식하는 경우도 많았고, 난간 동자 역할을 하는 장식 기둥 등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서울의 건축물들은 단층이 거의 없고, 있더라도 옥상에 난간을 두지 않는다. 게다가 평지붕은 고질적인 누수문제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내가 ‘우산’이라고 부르는 덧지붕을 시공하는 경우도 많고, 옥상을 그다지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제주의 건물들은 이러한 ‘우산’을 시공하는 케이스가 보이지 않았고, 옥상을 잘 활용하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비가 상대적으로 덜 온다던지, 날씨가 좀 더 따뜻하다던지 하는 요소가 작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다만 옥상에 화분을 가져다 놓아 꾸민다던지 빨래를 말린다던지 하는 케이스는 잘 보지 못했다.
두 번째는 아치와 같은 곡선, 알록달록한 색상 등의 요소를 꽤나 자주 활용한다는 점이었다. 약간은 장식적인 느낌의 요소들이었는데, 육지보다 좀 더 자유로운 방식으로 건축을 대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건물이 몰려있는 도심지가 아닌, 여유로운 사이트에서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때 건축에서 이러한 ‘지역성’이 의미가 있는가? 라는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적이 있다. 그 지역만의 무언가를 추구해봤자 결국 현대건축에서 이야기하는 본질적인 시도라기 보다 지엽적인 장식 정도에서 무언가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그것이 그리 큰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 더 나아가 사회까지 바꾸고자 하는 ‘모더니즘’ 건축의 야망은 결국 건축의 역할을 과대평가했던 건축가들의 오만으로 드러나고 있지 않나 싶다. 그렇다면 그러한 공허한 거대담론보다 인간의 삶과 맞닿아 있는 섬세하고 감각적인 부분, 미세한 부분을 컨트롤하고 매만진 건축이 힘과 가치를 가지게 된다. 그런 방식으로 접근하다 보면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강한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 앞으로 점차 더 많은 건축가들이 ‘지역성’을 이야기하지 않을까 생각된다(며칠 전 ‘베케’를 건축했던 에이루트가 바로 떠오르는 건축가 중 하나다). 주관적이고 단편적일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한 지역성을 가지고 있는 제주의 평범한 건축들을 보며 해보았던 생각을 정리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