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소비되는 방식
물, 공기, 지하수처럼 엄마는 공짜
나도 엄마를 그렇게 소비했고
내 아이들도 나를 그렇게 소비하는구나.
공유지를 지키는 거버넌스가 필요한 것처럼
엄마를 지키는 거버넌스가 필요해.
(2017년 3월 1일 메모)
어느 날 막내가 나에게 일찍 깨워 달라고 했다. 다음 날 도서관에 갈 거라면서. 나는 기꺼이 그러겠다고 한다. 그리고 잠자리에서 알람을 맞추고 내일 늦으면 어쩌나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든다. 아이는 내가 알람처럼 자신을 깨워 주는 일을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대학 다닐 때, 4학년 때 행정고시 1차 시험에 합격했다. 서울서 2차 시험 준비를 했다. 그때 엄마가 대구에 계시면서 아침 6시마다 나를 전화로 깨워 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너무했다. 엄마는 얼마나 잠을 설치셨을까. 혹시나 그 시간에 나를 못 깨우면 어쩌나 하고. 당시에 나는 엄마라는 존재는 본래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막상 엄마가 되어보니 나 역시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논문 심사를 받던 몇 개월 동안에 나는 서울에 머물렀고, 시어머니께서 우리 집에 오셔서 초등학교에 다니던 세 아이를 돌봐 주셨다. 내가 무슨 권리로 그런 요청을 했을까. 어머님은 얼마나 고달프고 힘드셨을까.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인 나는 공짜, 나에게 시어머니와 친정엄마는 공짜였다. 그때 당시는 당연한 것 같았다. 엄마가 아이들을 위해 서비스를 공짜로 제공하는 일이.
그러나 막상 다시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게 공짜일 수 있지? 나는 내 아이들을 지극히 사랑하지만,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아이들을 깨운다든가, 아침을 해 먹인다든가, 도시락을 싸는 일이 고달프게 느껴진다. 다만 아이들이 그런 도움을 필요로 하니까 지원을 하는 것이다. 시어머님과 친정어머님은 얼마나 힘드셨을까. 자식들 키우고 결혼시킨다고 얼마나 고생들을 하셨을 텐데, 또 손자 손녀들을 돌보는 어려운 일을 공짜로 하신 것이다.
작년에 막내가 대학에 입학해서 나는 참 감사한 마음이 든다. 참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렇지만 이 시간이 영원하지는 않겠지. 몇 년 내에 아이들이 결혼을 할 것이고 아이를 낳을 것이고, 나는 내 아이의 아이를 돌보는 일을 공짜로 해야만 하는 날이 오겠지.
그런데, 사용이 제한되지 않는 재화는, 즉 공짜인 재화는 결국 고갈되고 마는 운명에 처하게 되어 있다. Hardin이 제시하는 ‘공유지의 비극’인 것이다. 공짜인 목초지는 황폐화되고 공짜인 지하수가 고갈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엄마가 공짜이면, 엄마는 결국 황폐화되는 비극을 맞게 되어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이 나를 막 부려 먹으려고 할 텐데. 각각의 서비스에 가격표를 붙이기라고 해야 할까. 예를 들면, ‘아이 하루 보는데 ○만원’ 하는 식으로. 벌써부터 고민된다. 적어도 엄마로서 아이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하게 해서 경계를 설정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엄마의 서비스를 배제성이 있는 어떤 것으로 만들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공유지 보호가 필요하고 더 중요한 것은 애초에 자처해서 우리 자신이 공유지가 되지 않는 일이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조건 없이 모두 다 내어주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에너지는 무한정 솟아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쓸 수 있는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일에 우리의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상대가 달라고 한다고 해서 주지는 말자. 상대가 원한다고 해서 우리의 에너지를 다 퍼준다면 우리는 번아웃되고 만다. 독박 육아도 우리가 공유지처럼 행동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에너지와 시간 사용을 절제해야 한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와 남편이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요구할 때 그것을 거절하는 것은 물론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거절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어디선가 우리의 에너지를 충전해야 한다. 그렇게 우리의 활력을 우리 스스로 지킬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