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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희 Oct 25. 2020

엄마 노릇

연구자 B. 연구자로서 B 자신과 엄마로서 B 자신이 가장 격렬하게 부딪히는 시간은 바로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되면 집에 어서 가서 아이를 돌보고 싶다는 생각과 연구실에서 연구를 좀 더 하고 싶다는 생각 사이에서 갈등하고는 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엄마 노릇을 포기하고, 어떤 때는 연구자 노릇을 포기했다.

셋째가 중학교 1학년이었던 어느 날, 그 날은 셋째 아이 학원 문제와 관련해 좀 힘든 하루였다. 봄 방학 기간이었고, 수학 보강이 있었고, 숙제가 좀 많았다. 아이는 늦은 아침부터 숙제를 시작했고, B는 친구와 점심 약속이 있어, 둘째에게 셋째를 부탁하고 식당에 갔다. 식사 끝내고 오는데 셋째와 통화하니 우는 소리를 한다. 집에 가서 겨우 달래서 수학 학원에 데려다주었다. 수학학원 근처에서 기다렸다가 수업 마치고 나서 택시를 타고 아이를 영어학원에 데려다주었다. 영어학원 앞에서 내렸는데, 안 들어가겠다고 우기는 것이다. 좀 쉬고 싶단다. 또 한바탕 실랑이. 아이는 B에게 오만가지 불만을 늘어놓는다. 겨우 달래서 3시 30분 시작인 수업에 45분에 들여보냈다. B는 택시를 타고  대학교에 왔다. 학교 연못 앞에서 택시에서 내렸다. 도서관으로 걸어 들어오는데 문득 눈물이 났다. 아이를 이렇게 밀착 방어해주는 이 땅 모든 엄마들의 힘겨움이 생각나서. 그리고 자신을 밀착 방어해주신 엄마가 생각나서.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도서관에 갔고 작성 중인 논문을 검토했다.

첫째가 고등학교 다닐 때, 여름 방학 보충수업 기간 중에 첫째의 담임 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첫째가 보충수업 후 오후 자습을 하다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B는 부랴부랴 달려갔다. 아이가 선생님과의 상의 하에 교실이 아닌 도서관에서 오후 자습을 하기로 했는데, 아이가 지금 도서관에 없다는 것이었다. B는 부랴부랴 달려갔다. 과연 도서관에 아이가 없었다. 첫째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받지 않았다. 학교 도서관 앞에서 수십 통의 전화를 했다. 한참 후에야 전화를 받았는데, 아이는 친구들과 놀고 있는 듯했다.

그런 날이면 얼마나 진이 빠지던지. 그리고 엄마 노릇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B가 마음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이의 손을 놓치지 말자는 것이다. ‘아이의 손을 놓지 마라’라는 책에서는 '애착 불륜'이라는 것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흔히 불륜이라고 하면 남녀 간의 문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지만, 그 책에서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문제를 다루면서, 그런 표현을 쓰고 있다. 아이가 또래관계에 몰두하는 것은 부모와의 관계에서 보면 부모 아닌 다른 어떤 대상과 바람이 나는 애착 불륜인데, 그렇게 되면 아이가 제대로 성장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B는 아이와의 관계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었다. 아이가 학교 성적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것도 물론 중요하고, 그렇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아이에게 여러 가지 자극을 주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물론 B가 화를 이기지 못해 아이를 윽박지른 적이 많다. 학원 갈 시간에 컴퓨터 게임에 몰입하고 있는 아이에게 화가 나서 거봉 포도 한 송이를 거실 바닥에 내팽개친 적도 있다. 그때 아이는 아이대로 화가 나서 자신의 손과 발로 벽을 쳤고 이로 인해 골절상을 당하고 깁스를 한 적이 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윽박지르지는 말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가 하교해서 집에 오면, 만사를 제쳐놓고 상냥하게 맞이하려고 노력했다. 가장 궁금한 것은 공부를 열심히 했는가였지만 말이다.      


<참고문헌>

뉴펠드 & 마테 (2007). 아이의 손을 놓지 마라(이승희 역. Hold on to your kids : why parents matter by Gordon Neufeld & Gabor Mate, 2006). 북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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