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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희 Oct 25. 2020

내적 갈등

논문은 눈물이다

논문이 눈물임을 이제야 알겠다.

논문이 눈물로 얼룩진

논문이 눈물을 삼키며 쓰였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난 지금 눈물을 삼키며 책상 앞에 앉아 있다.

(2010. 6. 11. 메모)



엄마로서 난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굉장히 어렸을 때에는 감사하다는 생각보다는 힘겹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래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무척 어려웠다. 아이들의 엉덩이를 하루에도 몇 번이나 닦아 주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그런 상태가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만 같았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좌절감의 연속이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어떤 때는 화장실에 갈 자유조차 없었다. 아이는 내가 저를 거실에 두고 화장실에만 가도 쓰러질 듯 울어 젖혔다. 나는 아이들의 순간순간의 좌절감과 나 자신을 적당히 떼어 놓을 줄 아는 능력이 없었다. 아이들이 울고 좌절감을 느끼는 순간이면 나도 어김없이 좌절감을 느끼면서, 아이들에게 공격적으로 되었던 것이다.

내가 힘들었던 점은 내가 원하는 삶의 페이스와 실생활의 페이스가 서로 맞지 않았다는 점이었던 것 같다. 나는 약간 성급한 성격이었고, 빠른 삶의 흐름 속에 놓여 있을 때, 잘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박사과정에 입학하고 나서 교수님을 뵈었을 때, 교수님께서 해 주셨던 말씀은 “최대한 빨리 졸업해라”는 것이었다. 나의 커리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속도가 중요했다.

그러나 사람을 살리는 일, 소위 살림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는 아이의 한없이 느린 리듬에 맞추어 주어야 했다. 무한정 속도를 늦춰야 했다. 그것이 사람을 미치게 만들 줄이야. 아이가 한없이 사랑스러우면서도 속절없이 느려 터진 아이가 미웠다.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애를 쓰다가 아이에게 분노를 폭발하고는 했다. 아이가 좋았다 미웠다 하는 끊임없는 내적 갈등의 연속이었다.

나의 커리어를 추구하면서, 아이를 돌보면서, 가정 살림을 하면서, 늘 부딪혔던 문제는 수없이 많은 너무나 많은 중요한 문제들 중에서 무엇을 먼저 할까 하는 것이었다. 어떤 외적인 조건보다 내적 갈등의 문제였던 것이다. 정신분열증에 걸린 것처럼. 나의 과제와 아이의 과제 이 둘 사이에서 한없이 헤맸다. 논문을 쓰고 있을 때에는 아이들의 공부가 걱정이 되었고, 아이들의 공부에 신경을 많이 쓰고 난 다음에는 내 논문이 걱정되었다. 특히 아이들의 시험 결과가 나오거나 아이들의 반 학모들을 만나고 온 날이면,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 같아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내 연구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나의 성취동기가 문제가 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육아를 하게 되면서, 나는 늘 갈등에 직면하고는 했다. 아이가 다치거나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 때면, 모든 소동이 내가 성취동기를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과제 때문에 아이에게 화를 내는 때, 나는 꼭 성취동기라는 술에 취해 위험하게 육아라는 운전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를 낳은 여성인 내가 여전히 성취동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급기야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런 죄책감을 면하기 위해서 일과 가정을 모두 챙기려고 미친 듯이 잠을 아끼고 달려서 번 아웃하고.

어쩌면, 이 모든 소동의 원인은 여성에게 사회적 성취를 허용하고 격려하면서 동시에 여성에게 전통적인 역할을 기대하는 사회와 문화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내가 사회적 성취를 지향하는 만큼 남편이 함께 가정을 돌보아야 하는데, 남편이 가정에 무관심한 상태에서, 일과 가정을 모두 떠맡아야 하는 성취욕구 강한 젊은 엄마는 어떻게 하지? 수없이 많은 문제들의 리스트를 손에 쥐고 오늘은 무엇부터 할까 망설이는 끊임없는 내적 갈등의 연속이 아닐까?

어린 아동을 둔 취업모는 “끊임없이 갈등하는 삶”을 산다(김나현 외, 2013). 가정경제를 위해서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서 일을 하지만,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해를 받지 못하는 데서 힘들어한다. 그리고 육아에 상당한 시간을 투자해야 하므로 일에 충분하게 몰입하지 못한 데서 오는 갈증을 갖고 있다. 또한 일을 함으로써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시달리면서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잘한 선택이었는가 하는 것에 대해 지속적으로 갈등을 하고 있다(김나현 외, 2013). 김나현 외(2013)의 논문에서는 일·가정 양립 지원책의 마련, 자녀양육과 관련된 죄책감 갖지 않기, 적절한 휴식과 스트레스 해결을 위한 시간을 가질 것, 법적으로 자녀 양육의 책임을 부모에게 공동으로 부여하는 외국의 제도를 참고하여 제도적 개선 등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다양한 변화들을 통해 성취욕구 강한 우리의 젊은 엄마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참고문헌>

김나현·이은주·곽수영·박미라 (2013). 어린 아동을 둔 취업모의 양육 부담감 경험에 대한 현상학적 연구. 여성건강간호학회지,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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