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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희 Oct 25. 2020

학생회장, 부엌데기가 다 되었다

몇 년 전 가을에 모 도시 터미널에서 바닥 물기에 미끄러져 넘어졌고, 팔에 골절상을 입었다. 약 한 달간 깁스를 했었다. 그때 터미널에 문제 제기를 했었고, 나는 약간의 보상금을 받았었다. 보상을 받을 때 생각은 그랬다. 골절된 뼈는 시간이 좀 지나면 붙을 것이고, 그러면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뼈가 아물고 얼마 후부터 쓰지 않던 팔을 쓰려고 시도했는데, 너무나 아파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그러면서 한번 뼈가 부러진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뼈는 잘 붙었다고 한다. 문제는 근육과 힘줄의 문제가 되었다. 뼈를 원상회복시키기 위해서, 부러진 부위를 고정시켰기 때문에, 골절상을 입은 뼈 주변의 모든 근육과 힘줄이 굳어서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속옷 착용조차 이전 방식으로는 할 수 없게 되었고, 이전에는 자연스럽게 했던 동작들 중 많은 동작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골절상을 입은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 스스로 이런 증상들에 대해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것이다.

골절상을 당하기 전, 나는 운동 개인지도를 받은 적이 있다. 그를 통해서 체지방을 감량했을 뿐 아니라 근육에서의 개선도 있었다. 그런데, 골절상을 입으면서 내 몸 상태는 운동을 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팔은 깁스를 풀어도 굽은 채로 있었다. 다시 운동 개인지도를 받았는데, 어깨가 제 기능을 못해서 트레이너가 지시하는 운동을 제대로 소화할 수 없었고, 결국 재활훈련에 대부분의 시간을 써야 했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우리 여성의 어려움도 어쩌면 이런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성들은 너무도 쉽게 경력단절이라는 골절상을 입는다. 오늘날에는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아이를 출산하면서부터는 상당히 많은 여성들이 자의든 타의든 직장을 그만둔다(은기수, 2018).

“여성에게 경력단절은 존재의 의미를 의심하게 할 만큼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조소연·임예윤, 2015). 경력단절로 인해 여성은 사회와 연결이 끊어지는 소외감을 느끼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간섭받고 피해를 당하는 경험을 한다(조소연·임 예윤, 2015). 결국 경력단절은 개인으로서의 성장을 멈추는 일이다.

골절 부분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특정 근육만 쓰거나 특정 근육을 쓰지 않는 경우 신체 기능이 왜곡되는 것처럼, 여성은 아이를 낳고 아이에게 구속된 또는 포획된 삶을 일정기간 살게 되고 이후에 그대로 굳어 버린다. 아이를 낳고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웅크렸던 자세 그대로 굳어 버리는 것이다. 또한 가부장제 상황에 지속적으로 놓이다 보면, 남편이 만들어 놓은 틀 속에 구겨져 들어가 특정 근육 예를 들면 자유라는 근육을 쓰지 않게 되면, 나중에는 자유를 추구하지만 자유 근육이 굳어 버려 자유를 누리지도 못하는 것 같다. 또한 아이를 돌보는 근육만 과도하게 사용하다 보면 아이를 돌보는 근육은 발달하지만, 나 자신의 주장을 하고 나의 파워를 행사하는 근육은 굳어 버리는 것이다.

여성들이 겪는 출산과 양육 그리고 경력단절의 영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하고 중대하다. 경력단절의 2차적, 3차적 영향이 있는 것이고, 여성들이 경력 단절을 겪는 경우, 어쩌면 다시는 경력 단절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지도 모른다.

학창 시절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나는 학생회장을 했었다. 나름대로 어느 정도 리더십이 있는 편에 속했던 것이다. 그런데,  출산 이후의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 아이들 돌보면서 연구와 강의를 하느라 늘 시간은 모자랐고, 늘 지쳤었다. 언제나 못 다 한 일들이 집안 어느 구석에선가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한 번도 에너지가 넘친다는 기분을 느껴보지 못한 것 같다. 내 삶의 이런저런 과제를 해결하는 데만도 나는 절절매면서 살아온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내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같이 일하던 동료로부터 부엌데기가 다 되었다는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 어쩌다가 학생회장은 부엌데기가 되었을까. 그래, 그랬던 것 같다. 세 아이를 출산하고 돌보면서, 내 리더십 근육과 힘줄이 굳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대구의 전형적인 가부장적 남편과의 삶 속에서 나는 어느새 현모양처로서 행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내가 내 근육과 힘줄이 그렇게 굳어 있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저 부러진 뼈가 잘 아물기만 바라면서 그쪽으로는 활동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참 후에 그쪽 팔을 사용하려고 보니 조금만 움직여도 아파서 악 소리가 날 정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프니까 점점 더 그 팔을 안 쓰게 되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결혼을 하지 않고 출산하지 않고 양육하지 않으면 될까? 그래서 근육이 굳는 일 따위를 미연에 방지하면 될까?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경력 단절 같은 것은 아예 겪지 않게 그렇게 살까?

분명한 것은 재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도 혹독한 재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굳은 근육들을 마사지해서 풀어냈고, 많은 진전이 있었다. 리더십 근육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대로 두면 나의 리더십 근육은 다시는 살아나지 못할 것이다. 나의 리더십 근육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내가 육체적 재활 운동을 한 것처럼 정신적 심리적 재활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내게 그런 기능 장애가 발생했다는데 대한 인식의 필요성이다. 사랑으로 살아가면서 나 역시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예민하게 살피고 그에 대처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한편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나에게 여유가 조금만 더 주어져서 내가 주위를 둘러볼 여유를 가졌다면 어땠을까. 나의 확대된 가족을 위해, 그리고 사회를 위해 의미 있는 행동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부엌데기라는 것은 스스로가 성장하는 사람이기보다는 누군가를 성장시키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너무나 멋진 일을 하는 사람인데 어쩌면 우리 사회는 살림하는 사람을 너무 폄훼해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참고문헌>

은기수 (2018).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와 경력단절. 한국인구학, 41(2).

조소연·임예윤 (2015). 고학력 경력단절 여성의 비정규직 재취업 경험에 관한 내러티브 연구. 아시아여성연구, 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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