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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희 Oct 25. 2020

내 남편은 육아현장에 없다

두 아이가 엄마를 두고

울고불고 다투는 이 현장에

그는 없다.

아이가 고집을 부리고

아이가 자다 깨서 울 때

엄마가 큰 소리로 윽박질러 재우는 이 현장

그는 여기에 없다.

내 남편은 배드민턴 치러 갔다.

그곳도 현실일까?

내 남편은 현실도피 중이다.

(셋째 태어나기 전 어느 날 밤의 메모)


한 아이는 책을 읽어 달라고 하고, 다른 아이는 자다 깨서 울어대고,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인데, 남편은 느긋하게 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무척 화가 났다. 어느 날 너무 화가 나서, 밤 11시가 다 되어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남편은 운동을 마치고 지인들과 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이었다. 나는 전화상으로 “야! ○○○”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귀가한 남편은 몹시 화가 나 있었고, 들어오면서 현관에 있던 아이들 미술 작품을 하나 들더니 나를 향해서 던졌다. 가벼운 작품이 내 얼굴을 스쳤고, 나는 얼굴에 상처를 입었다. 다음날 피부과에 가서 치료를 받고, 강의 때는 얼굴에 밴드를 붙인 채로 들어가야 했다.

그때 당시, 내가 이런 어려움을 토로할라 치면, 남편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나도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 집안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자기는 너무 스트레스가 크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퇴근 후에 운동이라도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전쟁 같았던 그 육아의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너무 힘겹다. 그때는 늘 머리가 아팠다. 그래서 한의원에 가서 진료를 받기도 했었다. 박사학위 논문 작성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는 더 심하게 머리가 아팠고, 머리가 아플 때마다 병원에 갔다. 그러고 보니, 박사학위를 받고는 병원에 거의 가지 않았구나. 이렇게 살아 있어서 다행이다.

만약 내 딸이 그런 시간을 겪어야만 한다면, 딸을 혼자 내버려 두지 말아 달라고 말하고 싶다. 아무리 남편이 하루 종일 직장에서 일하느라 바빴더라도, 제발 아내가 하루 종일 어린아이를 지키느라 파김치가 되게 하지는 말아 달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남편은 아이를 돌보는 일에 기꺼이 참여하지 않는다. “남편의 게으름을 무찌르려면 전략적으로 생각해야 한다.”(콜맨, 2007, 39).

 ‘게으른 남편’이라는 책에 따르면, 어린아이가 새벽에 울어댈 때, 남편은 아내에 비해서 아이의 불편함을 당장 해소해 주어야겠다는 마음이 약하다고 한다. 반면에 여성은 상대의 감정을 자신의 감정보다 우선적으로 헤아려야 한다고, 상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고 배우면서 자라기 때문에 아이의 울음을 두고 볼 수 없다고 한다.

“협상을 할 때 가장 약한 사람은 조급한 사람이다.”(콜맨, 2007, 40).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때 여성이 조급해지고 협상력이 약화되고, 결국 여성이 남성에 비해 더 많은 시간 동안  육아를 하게 된다.    


“말 조련사로 일하는 테레사 트럴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여성 초보자들은 말을 다치게 할까 봐 조심하는 나머지 가끔 말에게 무시당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남편에게 일을 더 시키려면 때로는 남편의 등에 올라타서 고삐를 당기고 당신이 가고 싶은 방향으로 박차를 가해야 한다... 남편이 공정한 몫의 일을 하는 것은 당신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를 동등하게 교환하는 것일 뿐이다.”(콜맨, 2007, 41-42).     


그리고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나의 분노를 잘 다루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독박 육아의 상황에서 화가 날 때마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화를 꾹꾹 눌러 억제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더 이상 참기가 어려워졌을 때, 폭발했던 것이다. 나는 나의 정당한 분노를 남편에게 잘 전달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자는 인질이다’에 따르면, “여자는 자신의 분노를 느끼고 인정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그레이엄 외, 2019, 361).   

  

“분노는 ‘그건 싫다’라고 말하는 일이자 선을 긋는 일이고 ‘그건 용납할 수 없다’라고 목소리를 내는 일이다. 우리가 만약 싫다고 말할 수 없다면, 우리의 좋다는 대답도 정직할 리 없다. 가부장제에서 여자들은 우리의 욕구, 바람, 영역을 주장하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타인과 연결되는 게 중요하다는 교육을 받는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한계를 존중하는 것도 타인과 연결되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본다... 호신술 훈련과 자기주장 훈련은 여자들의 의식을 고양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전에 공포를 경험했거나 저항할 권리가 없다고 느꼈던 상황에서 호신술과 자기주장을 연습한 결과 남자에게 싫다고 말할 권리 등 특정 권리에 대한 감각을 기를 수 있었다”(그레이엄 외, 2019, 362).     


각자 타고난 성향이라는 것이 있으니, 분노를 인정하고 표현하는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쉽겠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분노를 제때에 표현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고 협조를 요청하는 일은 구차한 일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오래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된다고 하겠다.

분노를 표현하는 일보다 더 좋은 일은 분노를 예방하는 일이다. 부부가 아이 돌보기를 함께 할 수 있도록 당번제를 활용해 보면 좋겠다. 주 단위나 월 단위로 아이 돌보기 당번을 정하는 것이다. 남편이 순순히 협조해 준다면 말이다.


<참고문헌>     

그레이엄, 롤링스, & 릭스비 (2019). 여자는 인질이다(유혜담 역. 원저 Loving to Survive by Dee L. R. Graham, Edna I. Rawlings & Roberta K. Rigsby, 1994). 열다 북스.

콜맨, 조슈아 (2007). 게으른 남편(오혜경 역. 원저 The Lazy Husband by Joshua Coleman, 2005). 21세기 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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