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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희 Oct 25. 2020

번아웃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면 자신을 돌볼 줄 알아야 한다

B는 자신의 하나뿐인 딸에게 너무도 슬픈 일이지만 숟가락을 던지고 말았다.

B의 딸이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B는 그 날을 잊지 못한다. 그즈음 B는 대학교에서 시간강사 일을 하면서,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첫째 아이는 학생선수를 하게 되어 집에서 멀리 있는 다른 구역의 학교에 3학년으로 다니고 있었고, 둘째는 동네 구역의 학교에 1학년으로 다니고 있었다. 셋째는 어린이집처럼 운영되는 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셋째는 당시 만 4세였고, 매우 짜증이 많은 시기였다. 그리고 B의 남편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B가 좋아하는 대형마트 나들이에 대해 제한을 많이 가했다. 어쩌면 사건이 나기 바로 전날 대형마트에 가서 사람 구경 좀 하고, 들어왔더라면 B가 그 사건을 일으키지 않았을지 모른다. 사건 당일 B는 박사학위 논문 작성과 강의를 위해 대학교에 있다가, 학원에서 막 돌아온 셋째를 태워서 첫째를 데리러 가야 했다. 그런데, 셋째가 떼를 써서 아이를 달래 차에 태워 아슬아슬하게 운전하느라 B는 거의 탈진 상태였다. 그리고 첫째를 태워 집으로 돌아왔다. 둘째가 집에 와 있었다.

아이들 셋은 TV에 몰두해 있었다. B는 TV를 꺼버리고 밥을 먹자고 하고 테이블에 아이들을 불러 앉혔다. 그런데 둘째와 셋째는 TV로 인한 욕구불만이 있었는지 대추를 먹으면서 대추씨를 상대방에게 던지며 노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추씨 대신에 드디어 둘째의 손에 곽티슈 통이 들려 있었다. 순간 B는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B는 테이블에 놓고 있었던 숟가락을 딸아이를 향해 던져 버린 것이다. 아이의 얼굴 눈 밑 부분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데 순간 B는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이런 일이. B는 뭔가를 잘못 보았기를 원하며 간절히 기도했지만 이미 사건은 벌어진 뒤였다.

그 일이 있기 얼마 전, 남편이 B를 향해 가벼운 물건을 던진 적이 있었다. 그로 인해 눈 밑 부분에 상처가 났고 피부과 진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남편은 B의 어떤 행위로 인해 화가 났었고, 화를 참지 못하고 B에게 물건을 던졌다. B는 남편의 그 당시의 행위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매우 깊게 받은 상태였고, 아이가 곽티슈를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본 순간 남편에 대한 미운 마음이 보태져서, 비이성적으로 행동했던 것이다.

B가 한 행동의 원인을 특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남편에 대한 원망과 독박 육아로 인한 번아웃 등이 중요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시간의 가속화로 인해서 남녀가 모두 시간의 부족에 시달린다. 그런데 여성은 자녀 교육에도 시간을 할애해야 하며, 아이의 생활 리듬에 맞추어야 한다. 이런 부가적인 의무는 주로 여성의 몫이고, 따라서 여성이 번아웃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다(샤보, 2016).

김나현 외(2013, 197)의 연구에 따르면, “취업모들은 일, 가사, 육아를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과중한 부담과 피로로 인해 쉽게 짜증을 내는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것은 직장에서의 스트레스와 피로가 가시기도 전 또 다른 노동을 시작해야 하는 이중의 긴장 속에서 육체적, 정신적 소진을 경험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의 논문에서는 적절한 휴식과 스트레스 해결을 위한 시간이 중요함을 제시하고 있다.

일을 위해서도 휴식은 중요하다고 하겠다. 여성이 일터에서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전제 조건은 여성이 집에서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집이 쉼터인데 여성들에게는 또 다른 일터가 된다면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집안일부터 구조조정이 되어야 여성들도 직장 내에서 남성들과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다.”(김형준, 2012).

「린인(Lean In)」에서 쉐릴 샌드버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우리(여성)의 경력이 최대한의 시간 투자를 요구하는 바로 그 몇 년 동안에 우리의 생물학적 요구는 우리가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부모는 집안일과 아이 양육을 부부가 함께 하지 않았다(아내가 전담했다). 그러므로 우리(여성)는 두 개의 풀-타임 일을 갖게 된다.”(Sandberg, 2015).     


우리는 두 개의 풀-타임 일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나의 일에서 퇴근하면 다른 또 하나의 일로 출근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점점 감정적·신체적으로 고갈되어 가는 것이다.

내가 샌드버그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을 때, 대학원 남자 동기가 댓글을 달았다.   

   

 “사실 우리 사회의 구조는 여성에게 지나친 육아의 부담을 떠 넘기고 있습니다... 제가 딸 하나 낳고 그만인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한국 여자들 다 파업하여야 합니다. 그 잘난 사내놈들이 애도 다 키워라... 무엇이 정의일까요? 어느 정도의 육아 역할의 분담이 정의일까나?? 남자와 여자... 개인과 사회...??”      


그랬더니 미국에 사는 대학교 남자 후배가 댓글을 달았다.  

    

“개인적으로 자녀가 부부에게는 가장 큰 축복이요 선물인데 그 선물(독립된 인격체)을 잘 보살피고 양육하는 것을 일(work)이나 부담으로 생각하니 안타깝네요. 그리고 자녀양육을 위해서는 어느 한 사람(여성 혹은 남성)이 감당해야 할 부분이 아니라 부부 모두의 참여와 관심이 필요하겠지요.”     


여기에 대해 대학원 동기가 다시 댓글을 달았다.      


“아 글쎄 그 축복이 남자에게나 축복이고... 짐은 여자한테만 (거의) 다 떠넘기는 이놈의 사회가 문제라니까요...? 남자들이야 대부분 몇 분(잘해야 한 두 시간...??) 정도만 어어 이쁘다 그러고. 먹이고 재우고 공부시키는 (거의) 모든 게 여자들 차지 아닌가요?”     


우리 여성들의 독박 육아에 대해서는 여전히 견해가 대립되는 것 같다. 한편에서는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 일을 숭고한 일이라고 보고, 결코 육아의 힘겨움에 대해 불평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다른 한편에서는 육아가 여성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임을 인정하고 함께 아이를 길러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B와 같이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번아웃으로 저지른 짓이든, 남편의 폭력에 대한 원망으로 저지른 짓이든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인한 행동이었다면, B의 행동은 남편의 폭력으로 인한 상처를 아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남편에게 화가 났다면 목숨을 걸고 남편과 싸워야 한다. 약한 아이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

독박 육아의 스트레스와 번아웃으로 인한 행동이었다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헌신한 결과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주는 아이러니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자신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가 없을 때, 우리는 공격적인 행태를 보이기 쉽다는 점을 인식하고,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지키기 위해서도 우리는 자신을 잘 돌볼 줄 알아야 한다. 번아웃에 이르도록 우리 자신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자신을 돌보는 것을 일종의 사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올로프는 ‘포지티브 에너지’라는 책에서, ‘팸퍼링(응석부리기)을 일과에 포함시키라’고 조언하고 있다. 따뜻한 물에 느긋하게 몸 담그기, 좋아하는 음악 들으며 차 마시기, 혼자서 산책 나서보기,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에 가서 시간 보내기, 또는 약간의 돈을 들고 가서 사소하지만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사 오기 등이 팸퍼링의 구체적인 방법이 되겠다.

무엇보다 우리의 사고체계, 특히 남성의 사고 체계를 바꾸는 것이, 그리고 노동의 사회경제학적 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샤보, 2016).   

B의 딸의 얼굴에는 눈 밑에 그 날 사건의 흔적이 남아 있고, B는 아이 얼굴을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으로 속으로 눈물을 짓는다.


<참고문헌>

Sandberg, Sheryl (2015). Lean In. EBURY PRESS.

김형준 (2012).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돼라, 경향미디어.

샤보, 파스칼 (2016). 너무 성실해서 아픈 당신을 위한 처방전: 굿바이 번아웃(허보미 역. 원저 Global burn-out by Pascal Chabot, 2016). 함께 읽는 책.

올로프, 주디스 (2004). 포지티브 에너지(김소연 역. 원저 Positive energy : 10 extraordinary prescriptions for transforming fatigue, stress, and fear into vibrance, strength, and love by Judith Orloff). 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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