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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희 May 27. 2021

소파 사건을 다시 생각해보다

서울에서 일할 때, 센터에서 사업을 진행하면서, 품의를 올렸는데, 결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상부에서 사업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회계연도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고, 신속하게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 마당에 사업에 대한 승인이 떨어지지 않으니 무척 답답했다.

그런데,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소파 사건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남편은 소파 구입을 반대했다. 내가 소파를 사려고 할 때마다 소파를 사서 집에 가져오면 소파를 칼로 찢어버리겠다는 말을 남편에게서 들었다. 소파가 너무나 필요했던 나는 결국 남편이 중국 여행을 간 사이에 소파를 사 들였다. 그리고 더러워진 욕실 슬리퍼를 버렸다가 남편에게 두고두고 욕을 먹은 적이 있다. 나는 욕실 슬리퍼 하나 사는 정도의 자율성을 갖지 못하고 살았던 것이고 나는 두고두고 애석해했다. 그런데 품의 사건을 겪으면서 남편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공격적인 표현방법은 적절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조직에서 공동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통제는 불가피하다. 가정도 조직이고 통제가 필요한 것이다. 조직에 몸담고 있었던 남편의 입장에서는 나의 행동이 통제를 벗어난 행동으로 보였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부부에게 필요했던 것은 공동 의사결정을 위한 규칙이 아니었나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통제하는 구체적인 절차를 사전에 정해 두었어야 했던 것이다. 대부분의 조직은 그렇게 하는 것이다.

가정도 하나의 조직인데, 가정이라는 조직에 대해서는 유독 규칙이 사전에 설정되는 일이 드문 것 같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가 해결되는 절차가 필요한데, 그 절차가 사전에 정해져 있으면 그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비교적 기계적인 일이 된다. 그런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절차가 사전에 정해져 있지 않으면, 매번 협상을 새로 해야 한다. 가정에서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는, 협상력이 약한 여성이 항상 양보하게 되어 있고 말이다.

소파와 같이 비교적 고가의 가구를 사는 절차를 남편과 내가 합의해 두었더라면 어땠을까? 예를 들면, A와 B가 부부일 때, A가 가구를 사고 싶다면, 가구를 사려고 하는 이유와, 사려고 하는 품목, 예상 경비, 재원 조달 방안 등에 대해 B에게 공지한다. 이후 B는 A의 공지에 대해 의견을 A에게 제출한다. 찬반 여부, 반대한다면 반대 이유, 또는 가격이나 특정 품목 등에 동의하지 못한다면 대안을 제시하여야 한다. 이런 식으로 사전에 공동 의사결정을 위한 규칙을 만들어 두었더라면 소파를 하나 사면서 집안 분위기가 그렇게 살벌하게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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