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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희 May 25. 2021

남편 역할과 아내 역할의 중복성

아내 역할의 중복성이 필요하다

조직이 두뇌라고 보는 관점을 취하는 학습조직이론에서는 조직 구성원이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고, 자기 조직화할 수 있다고 본다. 조직 구성원이 외부 상황을 판단해서 조직에게 필요한 일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조직의 학습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중복성을 통한 여유성 확보라고 본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증가했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여성이 남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가정 내에 남편 역할의 중복성이 생긴 것이다. 이를 통해서 가정 내 경제에는 약간의 여유가 생긴다. 남편 역할의 중복성이 나타났다면, 아내 역할도 중복성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많은 가정에서 아직 아내 역할의 중복성은 부족한 편이다.

학습조직이론을 참고할 때, 아내인 여성의 어려움은 이제 교육의 문제라기보다는 중복성의 문제 또는 여유의 문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까지도 여성은 밥을 짓는 일을 전담해 왔다.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 묵묵히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해 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졌고 직업도 갖게 되었다. 한동안 여성의 문제는 교육의 문제였던 적이 있다. 많은 여성이 고등고육에서 배제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제는 여성들도 교육을 받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여성이 고등교육에서 배제되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여성은 교육에서 배제되는 어려움에서는 어느 정도 해방되었다.

그러면 이제 무엇이 문제일까. 교육의 문제이기보다는, 가족 구성원의 생존을 책임지는 아내 역할을 혼자서 해야 하는 상황이 문제인 것 같다. 우리가 소위 살림이라고 말하는 밥 짓기, 빨래하기, 청소하기 등의 매일 해야 하는 일을 여성이 혼자서 해야 한다는 상황이 문제라고 본다. 

또한, 누군가가 아이의 주양육자가 되었다면, 그 사람이 여유를 갖고 재능을 발휘하기는 매우 힘들 것이다. 앤 오클리는 ‘가사노동의 사회학’이라는 책에서, “성차별문화에 있어서 여성은 남성과는 달리 아동 양육이라는 구속에 처해 있다”라고 했다. 그리고 “가사노동이 보통의 일과 다른 점은 그것이 자녀양육이라는 일과 겸한다는 점”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경우 여성이 아이의 주양육자인 것이다. 

누군가가 아내 역할을 전담할 때, 그 아내는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게 된다.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인 김지영의 삶도 안타까웠지만, 정신과 의사의 아내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82년생 김지영의 어려움에 공감하면서, 김지영에게 무엇이 필요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많은 답변이 가능하겠지만, 김지영에게 필요한 것은 ‘아내’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지영을 대신해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아내. 그리고 집안의 온갖 일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아내. 김지영이 남편에게 해 주고 있었던 그 아내라는 것.

우리 사회는 여성을 교육시키는 데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여성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에 대해서는 고려가 부족했던 것 같다. 여성이 사회에서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가정에서 아내 역할의 중복성이 필요하다. 가정에서 아내가 가사노동의 유일한 담당자라면, 아내의 전문직업적 역량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아내는 교육받은 전문직업적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남편이 전통적으로 아내가 해 왔던 아내 역할을 좀 더 적극적으로 수행할 때, 그렇게 해서 가정 내에 아내 역할이 중복적으로 존재할 때, 여성은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여성에게도 아내가 생길 때, 여성이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애너벨 그랩은 ‘아내 가뭄’이라는 책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아내 가뭄에 시달리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아내가 있다는 것은 경제적 특혜와 같으며, 아내가 없다는 것은 실질적인 불이익을 당하는 것과 같다. 여성들은 더 많이 노동 현장에 진출하고 있지만, 남성들은 가정에 진입하지 않고 있어서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결혼을 함으로써 남성은 아내를 얻고 아내의 지지를 받으면서 일을 할 수 있다. 반면에 결혼을 함으로써 여성은 자신의 일을 포기하게 되거나 남성의 아내 노릇을 하면서 자신의 일을 해야 한다. 남성도 역시 자신의 아내를 위해 아내 노릇을 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조카가 모 기업에 입사했다. 딸도 최근에 취업을 했다. 조카와 딸이 만약 결혼을 한다면, 자신의 일을 하면서도, 일하는 아내를 위해 기꺼이 아내가 되어 줄 수 있는 남성을 만났으면 좋겠다.          


<참고문헌>

크랩, 애나벨 (2016). 아내 가뭄(황금진 역. 원저 The Wife Drought by Annabel Crabb, 2014). 동양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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