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가족의 모양
서른 중반에 들어서면서 가정을 꾸리기 시작했지만 우리에게 아이라는 존재는 멀고도 희미한 존재였다. 사업의 실패로 인한 경제적인 부담감은 물론이며, 동갑내기 부부에게 노산이라는 걱정과 막연한 육아와 자녀가 있는 가정이라는 것은 손에 잡히지 않는 안개 같은 영역에 가까웠다.
가족이라는 둘레 안에 있는 약간의 공허함은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유기동물보호소에서 입양한 강아지 한 마리가 메워줄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고 실제로 몇 년간 이렇게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가슴 한 켠에는 무언가 완성된 가족의 이미지에는 항상 자녀가 있었지만, 우리 부부에게 자녀라는 키워드는 암묵적인 금기어처럼 언급된 적이 없었고 이렇게 우리는 마흔을 향해 달려갔다.
아내는 스스로에게 모성애가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고 우리 부부가 서로 원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자녀계획을 가지는 것 자체가 나에게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해온 것 같기도 하다.
문득 떠올리는 아이와 함께하는 우리 가족의 모습을 점차 뒤로하며 주말에는 한가로운 카페에서 강아지와 커피 한잔을 곁들이는 시간을 즐겼고, 이런 삶이 우리 부부에게 최선이자 최대의 행복이라고 굳게 믿어왔다.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우리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잠시 고민하던 내가 대답했다.
"나에게는 완성된 가족의 이미지를 갖고 있어"
며칠 후 아내가 말했다.
"아이를 가지자. 더 늦기 전에."
여기에 몇 가지 이야기가 덧붙여졌다.
"시험관 같은 난임센터까지 가까이하면서 노력하고 싶지는 않아. 우리 둘의 노력으로 인연이 닿는다면 아이가 생길 거야."
"사실 나는 모성애에 대한 자신감도 없지만 외동아들인 당신에게, 당신의 부모님에게 아이를 선물하고 싶어."
나는 감사했고, 아내의 의견에 동조했다.
사실 매사에서 인연이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기도 했기에 난임센터를 통한다는 것은 나에게도 쉬운 문제가 아니기도 했다.
서로의 진지한 자녀계획을 이야기하고 아직은 찾아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사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오지 않았다면 아이를 가질 생각은 전혀 안 했을 거야. 사업의 실패 후 그래도 좀 더 살만해지고 마음의 여유가 생겼으니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게 아닐까?"
이런 대화 끝으로 우리는 조금 더 돈독해졌고, 조금 더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미뤘던 여행도 다녀왔다. 물론 몇 년간 아이의 공백을 대신해준 대신할 수 없는 우리 강아지와 함께.
감사하게도 몇 달 후 아내가 출근 준비를 하는 내게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아직은 아주 연한 색으로 보이지만 두줄로 보이는 임신테스트기였다.
후에 알고 보니 아내는 이미 며칠에 걸쳐서 계속 확인을 거듭했고, 어느 정도 스스로의 확신이 들 때 나에게도 보여준 것이었다.
이후에도 매일 임신테스트기로 확인을 반복하며 추정 3주 차가 넘어간 시점에서 산부인과를 방문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공식적으로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