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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화위복 Mar 10. 2021

[슬램덩크] 황태산 이야기


1. 등장배경


상양-해남-산왕이 예선전-결승리그-전국대회의 각각 끝판왕과 같은 존재라 한다면, 능남은 그야말로 북산의 오리지널 라이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위 세 팀과의 경기가 전체적으로 북산이 뒤쳐지는 전력차이를 극복해내며 추격하는 구도라 한다면, 능남과의 경기는 엎치락 뒤치락하는 시소게임 흐름의 맛이 있지요. 능남의 첫 등장인 연습게임부터 채치수-서태웅과 대결구도를 형성하는 변덕규-윤대협을 보면, 분명 작가는 능남이란 팀을 일회용이 아니라 중요한 고비에서 다시 만날 라이벌로 설정해놓은 것이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밸런스적 변수가 생기게 됩니다. 초기 출판사의 압력으로 인해 '농구'라는 소재를 버무린 불량소년만화에 가까웠던 슬램덩크의 인기가 계속 높아지게 되자, 작가는 불량과 개그의 요소를 줄이고 농구 자체에 대한 비중을 점차 높여나가게 되지요. 이러한 흐름의 변화의 분기점은 송태섭과 정대만의 등장이었습니다. 작가에 의하면 단순히 불량씬 캐릭터용으로 설정해놓은 송태섭과 정대만을 농구부원으로 편입시키면서, 북산의 전력은 한층 강화가 됩니다. 북산의 최대 약점이었던 가드진이 이달재-신오일에서 송태섭-정대만으로 교체되고, 강백호와 서태웅이 경기마다 성장하면서 각 포지션별로 탄탄한 구성을 갖추게 되지요.


가드진의 보강과 포워드진의 성장으로 인해 능남이 초기 연습게임에서 북산의 안습의 멤버와 대등한 경기를 펼쳤던 것을 감안하게 된다면, 두 팀의 전력차는 상당히 벌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전국대회 출전 결정전에서 북산과 능남의 전력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선 능남쪽에서도 뉴 페이스의 등장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상황이었지요. 그렇게 해서 등장한 것이 황태산입니다.



2. 황태산의 포지션이 포워드인 이유


사실 능남은 센터에 도내 최고급 변덕규와 포워드에 윤대협이 버티고 있는 반면 가드진이 매우 취약합니다. 작중에 여러 묘사를 통해 안영수와 백정태의 기본기나 스태미너, 그리고 멘탈적인 부분이 충실하다는 표현이 많지만 송태섭-정대만의 기량에는 비할바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능남의 뉴페이스는 정상급 가드가 되어야한다는 것이 당연한 예상이지요.


황태산의 첫 등장은 능남-해남 전이었는데, 작가는 이 경기를 북산의 게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꽤나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묘사합니다. 그 이유는 첫 번째로 능남이 해남과의 대결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북산과 마지막까지 치열한 경기를 펼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서이고, 두 번째로 윤대협이 이정환과 대등한 레벨로 성장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의도를 감안한다면 만약 뉴페이스인 황태산이 가드로 등장했을때, 능남과 해남의 매치업은 상당히 재미가 떨어질 공산이 컸었습니다. 윤대협이 포워드의 포지션으로 전호장 혹은 김동식(???)과 매치업을 하는 것도 어색한데 반해, 능남에서 공백기를 가지고 갑툭튀한 황태산이 이정환과 대등한 대결을 펼친다는 것도 뭔가 어색하게 되죠. 따라서 작가는 한 가지 꼼수를 발휘하여 윤대협을 포인트가드로 출전시킵니다(작가가 가장 싫어하는 '완벽한 캐릭터' 윤대협은 이렇게 탄생합니다). 황태산의 뛰어난 득점력 덕분에 윤대협은 스코어러의 부담에서 벗어나 이정환과 포인트가드 맞대결을 할 수 있었고, 이러한 황태산의 범상치 않은 기량과 포지션적으로 강백호와 매치업이 될 것이라는 암시는 독자들에게 북산vs능남전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여주게 됩니다.



3. 강백호에게 처음 벽을 느끼게 해주는, 그래서 매력적인 캐릭터


작가는 추후의 인터뷰에서 김판석을 가리켜, '강백호에게 처음으로 피지컬적인 좌절감을 주는 캐릭터'로 그릴 계획이었다고 했습니다. 사실 강백호의 사기적인 성장은 타고난 피지컬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으니까요.


황태산은 강백호에게 처음으로 '멘탈적인 좌절감'을 주는 캐릭터입니다. 스타에 비유하자면, 공방에서 반타작정도 하는 유저가 프로게이머와 게임에서 졌다고 벽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그저 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러나 오히려 소위 공방을 씹어먹는 정도의 유저에게 벽을 느끼지요. 이길 듯 하면서 결국은 지게 되니까요.


강백호는 표면적으로 이정환-서태웅-윤대협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기량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선수들에게 크게 좌절하지도 않지요. 그러나 작가는 황태산을 다소 우스꽝스러운 외모와, 개그적인 행동들, 그리고 공격력은 엄청나지만, 수비력은 강백호의 허접한 훼이크에도 곧잘 넘어가는 수준으로 설정해 놓음으로써 강백호로 하여금 '저 놈 정도는 내가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자꾸지게되는 상황을 만들어 놓게 되지요. 사실상 강백호의 수비는 황태산의 그것보다 더욱 구멍이었으니까요.


능남전 이전까지 강백호는 상양의 장신숲을 상대로 수 많은 리바운드를 잡아내었으며, 성현준과 이정환을 넘어 덩크를 꽂아넣습니다. 또한 해남전에서 약점으로 지적받던 골밑슛까지 몸에 익힌데다 무림전의 휴식으로 능남전 초반부터 신체적인 컨디션이 최고조였기 때문에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렇게 강백호를 의도적으로 띄워준 작가는 이후에 강백호의 최대 약점인 대인방어를 황태산을 통해 철저하게 파해하게 됩니다. 특히 능남은 경기 초반 윤대협-변덕규보다 황태산을 더 안정적인 득점원으로 판단하여 노골적으로 공을 투입하고 강백호는 머리부상까지 당하며 철저하게 농락당하게 되지요.


강백호를 누구보다 잘 아는 양호열의 '백호에게 있어서 인생 최대의 굴욕일거야' 라는 대사가 이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해 줍니다. 이후 멘탈이 무너진 강백호는 경기 막판 활약하기 전까지 북산의 좋은 흐름에도 '버로우'를 타게 됩니다.



4. 밸런스 조정을 위해 긴급 투입된 캐릭터, 의도는 대성공


대부분의 캐릭터가 NBA 선수들을 모델로 한 슬램덩크에서, 황태산은 작가가 창조한 오리지널 캐릭터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어찌보면 이렇게 긴급하게 투입된 황태산은



- 송태섭, 정대만의 가세로 기울어진 능남과 북산간의 밸런스 조절

- 윤대협vs이정환의 흥미로운 대결구도를 만들어준 조연

- 능남->북산->능남->북산의 시종일관 변화하는 경기에서 초반 분위기 주도

- 강백호에게 처음으로 벽을 맛보여준 라이벌

- 깨알같은 개그(+엄할 것같은 유명호 감독의 포용력 부각)


라는 1석 5조의 효과를 불어넣는 대성공의 결과를 낳은 매력적인 캐릭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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