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변 많은 사람들의 최대의 화두 중 하나는 '부동산' 입니다. 근래 집값 폭등으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시를 '부동산 가치'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아 졌습니다. 회사 인트라넷 게시판만 봐도 '이곳의 입지는 어떤가요? 앞으로 가격이 많이 오를까요?', '지금 집을 사기엔 너무 늦었나요?', '학군이 어떤 편인가요?', 'XX노선 언제쯤 완공될까요?' 등의 부동산 관련 질문들을 하루에도 몇 개씩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정작 본인이 살고 있는 도시가 품고 있는 고유한 역사와 정체성 등에 대해선 무관심한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부동산 가치'에만 집중하게 된 계기로 근래 부동산 시장의 호황 뿐만이 아니라, 역사적인 배경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의 잦았던 외세의 침략, 기존 도시의 역사와는 무관하게 일본 제국의 편의에 맞추어 국토가 개발되었던 식민지 시대, 그리고 6.25 전쟁 등을 거치며 전국토가 황폐화 되었습니다. 6.25 전쟁이 끝난 직후엔 서울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의 많은 도시들의 상태는 역사라는 것을 따지기가 힘들 정도로 깨끗한 도화지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전쟁으로 파손된 수원 화성>
하지만 이 책의 작가인 문헌학자 김시덕 교수는 위와 같은 '서울은 역사가 충분하지 않다'라는 관점을 비판합니다. 작가는 서울의 역사는 '사대문'안의 '조선 왕실' 혹은 '양반'들의 역사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 합니다. 작가의 주장에 따르면, 1963년 서울 대확장으로 인해 서울에 편입된 이상, 백제의 도성 역할을 해온 강동구 '풍남동 토성'도 분명 우리가 주목해야 할 서울의 역사 중 일부분입니다. 또한 일제 식민지의 '경성부'도 일제의 잔재라는 명목 아래 파괴 해야하고 감춰야 할 가슴아픈 역사가 아니라, 이 또한 보존해야 할 서울의 다양한 역사 중 하나입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서울을 세계적인 도시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높으신 분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서울의 외곽이나 혹은 보이지 않는 골목들로 쫓겨나야 했던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보잘 것 없어보이는 풍경들도 사대문안의 조선 왕실의 문화만큼이나 '현대 대한민국'의 중요한 서울의 역사라고 '선언'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조선의 백성'아니라, '대한민국의 시민'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과연 작가가 이 책에서 탐방한 서울이란 도시의 경계는 어디까지 일까요? 가장 손쉽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은 행정구역상의 '서울특별시 25구' 안쪽입니다. 하지만 행정 편의로 인위적으로 묶인 구역인 탓에 서울의 역사를 제대로 탐방하기 위해선 25구 안쪽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작가는 이야기 합니다. 예를 들면, 서울의 서남쪽인 강서구, 양천구, 영등포구, 구로구, 금천구 등은 대각선 반대편인 강북구, 도봉구, 노원구, 중랑구 보다는 근접 도시인 부천, 광명, 시흥, 인천과 역사적, 물리적, 심리적으로 밀접한 관련성이 있습니다. 서울의 영역이 강의 북쪽에서 건너와 서서히 서남권으로 급속도로 뻗어가면서 이들은 도시 경계를 구분할 수 있는 그린벨트를 미처 지정하기도 전에 마치 한 도시처럼 개발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서울의 남동쪽인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강동구 등은 은평구, 서대문구, 마포구 보다는 근접한 성남, 과천, 하남 등이 더 친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제대로 된 서울의 역사 탐방을 위해, 먼저 서울과 밀접한 주변도시들까지 존재하지 않는 행정구역인 <대서울>로 '선언'합니다.
<양천구와 부천의 경계, 이 동네에 거주하시는 분들은 같은 서울의 도봉구보다는 부천이 더 친숙할 것입니다.>
이 책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작가의 마지막 탐방 장소인 '은평 뉴타운' 입니다. 책이 쓰여진 날의 기준으로(2017년) 한참 도시 재건 사업이 한창이었던 이 지역은 '고층 아파트 대단지'와 '한옥 마을'의 형태로 개발되고 있었습니다. 서울의 역사를 보존하고 싶어하는 작가의 성향상 일견 '고층 아파트 단지'에 좀더 비판적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입니다. 작가는 지금은 도시의 미관을 헤칠지라도 나중에 오랜 세월이 흐르면, 현대의 고층 아파트 단지도 20세기~21세기에 한국 서민들이 선호했고, 거주했던 자연스러운 역사의 일부분으로 남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현재 작가가 탐방했던 곳들의 낡은 건축물들도 결국은 그때 그 시절의 흔적을 담고 있는 건물이니까요.
반면, '신라시대의 이름모를 서민들의 공동묘지' 구역이 '조선시대 양반'들과 무관하기 때문에 철저히 파헤쳐지고, 서울 역사의 일부의 모습에 불과한 '양반'들의 주거 형태인 인공적인 한옥 마을로 개발되는 것에는 매우 비판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21세기의 한옥 마을도 후대의 사람들에 의해 '21세기 초의 사람들은 이처럼 한옥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복원 열풍이 있었다'라고 해석될 여지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현대 서울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신라시대의 흔적들이, 최근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조선시대 양반'들의 색채들로 덮여진다는 점을 봤을 때,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작가의 아쉬움에 공감이 갑니다.
<실제로는 건축왕 정세권에 의해 개발된 식민지 시대 신도시라는 북촌 한옥 마을, 서울 역사의 '일부분'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가 보존해야 할 서울의 모습으로 굳어지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여태까지 '잊고' 있었고, 언젠가는 도시 재개발로 인해 앞으로 '잊혀져갈' 서울이 간직한 역사적 이야기들을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 오랜 시간동안의 작가의 땀과 노력이 담겨 있는 책이 바로 이 '서울 선언' 입니다. 고도 성장으로 인해 빠르게 변화하는 우리나라 도시의 특성상 반드시 누군가는 했으면 좋겠다라고 개인적으로 막연하게 생각만 했던 일이기 때문에 이 책이 더욱 반갑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이란 도시에 관심이 있는 많은 분들에게 한 번쯤은 읽어보길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