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이어 도시이야기 두 번째 입니다. 이번 곳은 초등학생 시절 약 4년을 거주했던 인천광역시 서구 입니다.
서구는 인천의 서북단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서구의 특징은 한마디로 '정말 크다'라는 점입니다. 일개 자치구임에도 면적(약 117㎢)은 경기도 수원시(약 121㎢)와 비슷합니다. 단, 인구수(약 55만명)는 수원시(약 120만명)에 절반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천광역시의 자치구 중 가장 인구가 많으며, 수도권의 모든 자치구들 중 서울특별시 송파구(약 66만명)와 강서구(약 58만명) 다음 세 번째로 인구가 많습니다. 서구가 이렇게 거대한 자치구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로, 현재 신도시 개발 사업 진행중인 청라, 루원 시티, 검단 신도시의 개발이 완료되면 자연스레 경계가 되는 아라뱃길 북쪽을 검단구로 분구할 것이 가장 유력한 가설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서구는 크고 광활한 만큼 하나의 자치구 안에도 정말 다양한 모습이 공존하는 곳입니다.
2021년 현재, 40대 이하 세대의 인천 시민들 중 인천과 부평을 구별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 세대의 부평구 사람에게 '어디 출신'이냐고 물으면, 무조건 '인천' 출신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윗세대 어르신들만 하더라도 종종 인천과 부평을 따로 구별하고는 합니다. 이것은 고양과 일산, 성남과 분당 혹은 판교, 화성과 동탄 등의 사례와 같이 구도심과 신도시, 소득과 자산 격차 때문에 구별하는 것과는 조금 성격이 다릅니다. 인천과 부평은 실제로 각각 개별적인 도시로 발전하다가, 1940년이 되어서야 부평이 인천으로 편입됩니다. 위성지도를 통해 보면, 부평은 드넓은 분지지형으로 인천에 편입된 이후에도 원인천(중구, 동구, 미추홀구 등)과는 별다른 교류 없이 독자적으로 발전합니다. 부평에서 영등포까지 이어지는 넓은 평야가 탄탄하게 이어져 있으며, 넓게 잡으면 관악산까지 분지 지형이 이어집니다. 분지안에 넓은 시가지를 만들기 쉽다는 이점 때문에 처음으로는 조선 건국 후 이성계가, 두 번째로 6.25전쟁 당시 서울 수복 후 이승만이 '인천'이 아닌 '부평'으로 수도를 옮기고자 했습니다. 그만큼 인천과 부평은 그야말로 '개별' 도시였기 때문에 서로를 구별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모델 이소라 씨를 '부평 사람'으로 말하는 '인천 사람' 이혜영 씨. 본의아니게 이혜영 씨를 옛날 사람처럼 이야기 해버린...
서구와 부평구는 1968년부터 1988년까지 '인천직할시 북구'로 같은 행정구역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앞서 말씀드린대로 두 자치구는 부평구가 분지 지형이기 때문에 지리적, 교통적으로 산으로 분절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서구는 '구 경인고속도로'를 따라 부평보다는 원인천 지역과 더 밀접하게 개발이 됩니다. 과거 서구 사람들이 흔히 '시내' 나간다라고 하면, 1호선 부평역보다는 동구 동인천역 혹은 미추홀구 주안역쪽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미묘한 거리감이 상당히 재미 있는 것이, 제가 어렸을 때는 서구와 부평구를 직결해주는 원적산 터널과 수도권 지하철 7호선이 아직 개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구 석남동에 살았던 초등학생인 저에게 '부평'이라고 하면, 차를 타고 경인 고속도로를 타고 가거나, 어떤 길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빙 둘러서 가는 '먼 곳'의 이미지가 굉장히 강했습니다. 지금은 지하철 7호선이 원적산을 뚫고 개통하여 서구 석남역과 부평구 산곡역은 1정거장 거리, 부평구 부평구청역까지는 2정거장 거리 입니다(...). 새삼스럽게 교통편의 중요성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산 때문에 지형적으로 철저히 분리된 인천 원도심과 부평분지
동구, 미추홀구와 맞닿아 있는 서구의 남쪽에는 주안국가산업단지를 비롯해서 동네 주민들이 주로 '가좌 공단'이라 부르는 제철, 목재, 화학 등 굵직굵직한 제조업 단지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임금 수준이 제법 만만치 않은 업종들인 덕분에 이 산업단지는 오랜 시간동안 서구의 밥줄 역할을 톡톡히 해온 곳입니다. 안타깝게도 최근엔 노후화된 시설과 업종 특성 때문인지, '화재 뉴스'로 자주 접하게 되는 동네입니다. 인천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기사가 뜨면, 제 스스로 자연스럽게 '가좌동?'이 떠오릅니다. 시 차원에서 화재를 예방할 수 있는 조치가 이뤄졌음 하는 바람입니다. 가좌 공단의 위쪽으로는 '경인고속도로'이자 현 '인천대로'가 서구 중심부를 수직으로 관통하고 있습니다. 지난 글에서 인천의 구도심이 이 경인고속도로를 축으로 발전했다고 말씀 드렸듯이, 역시 이 축의 주변부인 가좌동과 석남동은 각각 고층 아파트 단지와 저층 다세대 주택, 단독주택 위주의 구도심 주거지역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제목에 '연이은'이 가슴 아픕니다.
구 '경인 고속도로'는 서구의 입장에선 애증의 존재 입니다. 서울, 부천과 빠르게 연결시켜준 경인 고속도로의 개통 덕분에 인천의 산업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산업도시 인천을 있게 해준 소중한 교통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구의 경인 고속도로 구간 서쪽에 간척사업이 시행되고, 이곳이 도시화가 되면서 과거에는 해안 변두리를 지나갔던 경인 고속도로가 어느 순간 서구의 중심부를 관통하게 되었습니다. 경인 고속도로의 서쪽과 동쪽은 고작 8차선 도로의 반대편임에도 불구하고 고가도로를 찾아 우회해야 진입할 수 있습니다. 고속도로 양 옆에는 방음벽이 설치되어 시가지의 단절이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또한 공업 물류 차량들이 대부분인 상습 정체구간인 만큼 엄청난 매연과 소음을 유발합니다. 제가 살던 시절에는 방음벽조차 설치되지 않았 었습니다. 고속도로 바로 옆에 살았었기 때문에, 야간이 되면 그야말로 포뮬러 경기장을 방불케하는 소음이 들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자동차가 빠르게 달리는 그 소리가 나름 불쾌하지 않고 시원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천의 정치인들이라면 누구든지 경인 고속도로 일반화 후 고가도로를 교차로로 전환, 고속도로는 지하화 하는 것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습니다. 물론 경인 고속도로 주변으로 시가지가 꽉 들어찬데다, 인천광역시 교통 흐름을 전체적으로 손봐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예산 투입이 예상됩니다. 따라서 아직도 큰 진척없이 시간만 흐르고 있습니다.
고가 고속도로도 아닌 지상 고속도로 인지라 시가지를 제대로 분리시킨 경인 고속도로
가좌동과 석남동, 신현동은 오래된 주거지역인 만큼 전통시장이 강세인 지역입니다. 인천 지하철 2호선 석남역 부근 거북시장, 가좌한신휴플러스와 진주아파트 단지 사이에 위치한 가좌시장, 신현 사거리 근처의 강남시장 등은 대형마트의 공세와 전통시장의 쇠락에도 아직도 큰 상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거북시장과 강남시장을 잇는 도로인 가정로부근에는 수많은 노포들과 작은 가게들이 들어서 있어, 인천 맛집을 탐방하는 유튜버들이 자주 찾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90년대 중후반 어린 시절에 서구에 살았던 저에게 거북시장은 '맛집' 혹은 '술집' 보다는 '게임의 성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게임 상점'을 동네 골목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던 시절, 거북시장에도 알라딘보이, 슈퍼패미컴, 세가 새턴 등의 타이틀을 구매할 수 있었던 가게가 있었습니다. 당시 게임 상점들은 게임팩 구매 외에도 대여 및 교환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저도 매일 하던 게임이 지겨워 무작정 갖고 있던 슈퍼패미컴 게임팩을 거북시장에 위치한 게임 상점에 찾아가 팩교환을 하고 왔습니다. 당시 주인 아저씨가 교환비를 받지 않고 무료로 교환을 해주었습니다. 땡 잡았다는 생각으로 집에 돌아오니 사촌형들이 왜 이상한 팩들로 교환해 왔냐고 물어봤었지요. 당시 '젤다의 전설', '프론트 미션' 같은 슈퍼패미컴 최고의 명작들을 인기 없는 게임들로 교환해 온 것입니다. 주인 아저씨가 돈을 받지 않았던 이유가 이 때문이었습니다.
당시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오락실이었습니다. 거북시장 육교 근처에만 오락실이 서너개 있었습니다. 스트리트파이터, KOF, 철권, 사무라이쇼다운, 닌자 베이스볼 배트맨, 던전 앤 드래곤, 메탈 슬러그 등 정말 셀 수도 없는 명작들과 함께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여자 아이들은 주로 펌프를 즐겼습니다. 펌프를 잘하면 인싸가 될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오락실엔 수많은 무서운 중학생 형들이 있었습니다. KOF로 이 형들을 신나게 이기다가 뒤통수를 맞기도 하고, 화장실에서 삥도 뺏기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오락실을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저에겐 존재하지 않는 선택지 였습니다. 게임에 대한 마음은 그만큼 진심이었습니다. 훗날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에 공부하러 도서관에 갔다가 에어컨 바람 등의 집중 안된다는 핑계거리 하나 잡는데 성공하면 바로 집으로 귀가했던 저의 모습을 보면, 역시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성행했던 오락실은 스타크래프트와 PC방이라는 대한민국 게임계의 혁명이 불자 소리소문없이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지금은 보기 힘들어진 그 시절 게임 상점들. 사진을 남겨두지 못해서 이 곳은 석남동 그 업체가 아닙니다.
신현동에서 좀 더 위쪽으로 가면 인천 지역사회 뿐만 아니라 전국구적인 이슈가 있었거나, 현재 이슈가 진행 중인 곳들이 있습니다. 2000년대 후반, 가정오거리 일대는 한국의 '라 데팡스(La Défense)'가 되겠다는 야심찬 계획아래 이주 및 철거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인 고속도로 지하화 사업의 지지부진한 진척과 글로벌 경기 침체의 직격타를 맞게 됩니다. 주민들이 이미 떠나간 이후 계획이 흐지부지 된 까닭에 수도권 광역시 한복 판에 철거되지 않은 폐건물들만 가득한, 전무후무한 '유령 도시'로 2010년대 중반까지 수년 간 방치되게 됩니다. 자연스레 이 곳은 라 데팡스는 커녕 전국 최대의 우범지역이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외국에서나 봄직한 사례인 동네가 '무서워서' 이사를 가는 인근 주민들까지 있었을 정도 였습니다. 야심찬 계획과는 무관하게, 본의 아니게 '마계 인천' 이미지에 큰 기여를 한 곳이 되었습니다. 한 때 유행했던 '폐허' 매니아들의 성지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렸습니다. 언론에서는 제대로 된 검토 없이 정치 논리가 앞선 도시 개발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쿨타임이 찰 때마다 격렬하게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고, 인천 지하철 2호선 가정역이 개통하면서 방치되었던 루원시티 개발도 다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습니다. 향후 청라까지 연장되는 수도권 지하철 7호선이 지나갈 예정이며, 서구의 중심에 위치하여 청라-부평구-부천시-양천구-구로구를 고속도로와 지하철로 이어주는 일(一)자 축에 위치한 입지적인 요건도 부활에 큰 요인이 되었습니다. 현재는 많은 아파트 단지가 완공 후 입주를 완료하여, '폐허' 시절도 이제는 옛 기억이 되고 있습니다.
루원 시티의 폐허시절, 여기 한국 맞습니다.
청라국제도시를 지나 아라뱃길을 넘어가면 박남춘 인천 시장이 던진 뜨거운 화두 중 하나인 '수도권 매립장'이 정말 거대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박남춘 시장은 2025년 이후 더 이상 경기도와 서울의 쓰레기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입니다. 중간중간 시골 논밭을 지나치다 보면, '김포 장릉 아파트' 문제로 뜨거운 2기 신도시 검단 신도시가 활발히 개발 중에 있습니다. 사진을 보니 스카이 라인이 아파트로 도배된 광경이 아찔하기는 합니다. 개발 논리와 문화재 보존이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 만큼, 어떤 결론이 날지 전국의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처럼 서구는 거대한 자치구인 만큼 굵직한 이슈가 꽤나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하나의 자치구 안에서 거대한 전통 제조업 단지, 70~80년대 구도심, 항구 부두, 국제도시, 쓰레기 매립장, 논밭, 2기 신도시 등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이 정도면 서구는 인천 안의 '작은 인천'이라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과연 어떻게 결론이 날 것인가. 유네스코 김포 장릉의 풍경을 뒤덮어 버린 검단 신도시의 아파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