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직장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월급' 입니다. 따라서 직장인들에게 가장 '좋은 직장'이란 고연봉과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하는 직장일 것이라는 점이 일반적인 통념입니다. 하지만 『2022 트렌드 모니터』에서 조사한 설문결과를 살펴보면 직장인들은 여전히 '연봉'을 좋은 직장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지만, 연봉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 또한 명확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좋은 직장에 대한 물음에 절반이 넘는 직장인들이 '연봉'외에 다른 중요한 점들이 있다고 응답하고 있습니다. 회사일도 결국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이러한 결과가 나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요즘 직장인들이 생각하는 '좋은 직장'이란 궁극적으로 어떤 직장일까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기업문화, 특히 회사의 입장에서 많은 인력을 관리해야하는 대기업 일수록 연봉은 '협상'의 대상이 아닌 경우가 많았습니다. 근속 기간과 업무 성과에 따라 상승 비율이 칼 같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연봉 협상 기간에 대부분의 직원들은 자신의 연봉을 '통보'받습니다. 따라서 같은 회사에 소속된 직원들끼리는 큰 이변이 없다면 연봉의 높고 낮음이 연공서열에 비례하게 됩니다. 동종업계의 다른 회사에 근무하는 직원들끼리는 연봉이 소속된 '회사'에 따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직이 비교적 자유롭지 않은 문화 때문입니다. 개인의 능력보다는 연봉 정책이 비교적 후한 회사에 다니면 많이 받는 것이고, 짠 회사에 다니면 적게 받는 경우가 많았지요. 우리의 전통적인 기업문화에서 연봉은 회사에서 정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연봉을 많이 주는 회사일수록 좋은 직장으로 인식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점점 이직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고, 이직 빈도가 늘어나면서 위와 같은 인식이 점차 변하기 시작합니다. 연봉도 철저히 시장 논리에 따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특히 2021년에 IT 업계의 개발자 인력난에 따른 급격한 연봉 상승 현상을 지켜본 직장인들은 더 이상 연봉이 다니고 있는 회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지요. 특정 기간동안 대세로 떠오르는 산업이 있고, 내가 해당 산업에 종사하면서 협상의 카드가 될 수 있는 기술력과 능력만 있다면 연봉은 눈에 띄는 차별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결국 '우리 회사는 연봉이 너무 짜다'는 말은,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직할 능력이 없다'와 동의어가 되어 버렸습니다. 따라서 스스로 만족할 만한 연봉을 못 받는 것은 물론 회사의 문제도 있지만, 일정 부분은 '개인'의 문제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마냥 회사 탓을 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습니다. 내가 연봉은 당장 불만족스럽게 받아도 직장 자체는 '좋은 직장'이 있을 수 있고, 반대로 높은 연봉을 받아도 그 직장 자체는 '좋은 직장'이라 말할 수는 없는 상황들이 생기게 된 것이지요.
높은 연봉이 좋은 직장을 정하는 우선 순위에서 밀린 또다른 이유로는 월급이 주는 만족감 자체가 과거에 비해 줄어든 현상도 한 몫 했다고 생각합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주거 비용과 물가 때문에 수도권에 위치한 회사에 다닐수록 '월급 모아서 차 사고 집 산다'라는 말이 점점 꿈같은 이야기가 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높은 연봉을 받더라도 의식주의 해결이 팍팍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비교적 높은 연봉을 받는 IT 개발자들이 주로 근무하는 수도권 지역들 근처의 주거 비용(매매/전세/월세)과 물가를 보면 '헉'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그러면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결국 요즘의 직장인들이 생각하는 높은 연봉 외의 좋은 직장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내가 '존중과 대우'를 받으면서 일한다는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직장에 한 번 뿌리내리면 퇴직할 때까지 충성을 바쳐야 한다는 이전 세대들과는 달리 MZ 세대라 불리는 요즘 세대들은 직장과 자신을 동등한 위치에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장은 철저히 내가 받는 급여만큼 일하는 곳이며, 직장에 대한 필요 이상의 충성심은 나의 미래를 책임져주지 않는 다는 인식이 강하지요. 그러한 인식은 사기업을 다니면서 정년을 채우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 MZ 세대들은 앞으로 국민연금 수령이 불투명하다는 전망도 많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MZ 세대들은 직원이 현재 직장에 보여주는 충성심 만큼 직장도 직원에게 충분한 존경심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특수한 상황 때문에, 기존에 비슷비슷했던 회사들의 복지가 회사별로 각각 세분화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이렇게 차별화된 복지는 '블라인드(Blind)'같은 익명 커뮤니티를 통해 다른 회사 직원들과 활발하게 공유됩니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와 비슷한 수준이라 여겼던 다른 회사들의 직원 친화적인 복지와 우대 정책를 보고 있다가, 우리 회사가 그런 점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면 그 직원은 급격한 박탈감을 느낍니다. 현금화해서 계산하면 얼마되지 않는 사소한 복지 정책일지라도, 회사가 그 동안 얼마나 작은 비용을 아끼려 '치사하게' 굴었는지를 계산하게 됩니다. 또한 회사가 나를 대하는 방식이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소모품' 정도라는 느낌을 받을 때, 그 직원은 그 동안 세상물정 아무것도 모르고 바보같이 일만 했구나라는 무력감을 느낍니다. 결국에는 회사가 시도하는 모든 일들에 대해 시큰둥해지며, 평소에 열심히 일해야 겠다는 근무 의욕은 더욱 저하됩니다.
이처럼 변하는 인식에 따라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고 충분한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서 회사들은 '좋은 직장'이 되는 방향으로 빠르게 대응해야 할 것입니다. 복지를 직원들에게 회사 차원에서 '특별히 베푸는'것이 아닌, 직원들이 회사에 특별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수단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평소에 직원들을 통제하고 관리 해야할 대상으로 보기 보다는, 다소 번거로울 수 있어도 언제든지 소통과 동기부여가 필요한 개개인의 인격체로 대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게다가 '좋은 직장'이 되는 것은 마냥 직원들에게만 좋은 일은 아닙니다. 회사의 사내문화와 근무 방식 등이 브랜드화 되는 시대입니다. 회사와 직원이 Win-Win 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잘 짜여진 복지, 사내문화, 소통 방식 등이 회사의 혁신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외에 보여주기 식이 아닌 진심으로 직원들이 만족할 수 있는 '좋은 직장'이 되는 것은 회사 차원에서도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