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race Nov 02. 2020

섬에서 9년간 시간의 비밀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의 속도로 산다

진화의 비밀은 죽음과 시간에 있다. 억겁의 영원은 고사하고 수천  조 상상하기 힘들어하는 인간의 속성. 단지 70년밖에 살지 못하는 생물에게 7,000 년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갖겠는가? 그것은 100 분의 1 불과한 찰나일 뿐이다. 하루 종일 날갯짓을 하다 가는 나비가 하루를 영원으로 알듯이 우리 인간도 그런 식으로 살다가는 것이다.

<코스모스> 칼 세이건, 79P.


20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9년 정도를 섬에서 직장 생활했다. 지금 와 돌이켜보면 어떻게 섬에서 9년간을 버틸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섬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섬'이라는 곳에 막연히 추측하는 그 어떤 곳이라는 그 느낌만 있을 뿐이다. 노래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섬마을 선생님' 같은 로맨틱한 섬은 결코 아니다. 추측하는 그곳은 고립되고 낙후된 그 어떤 곳일 수도 있다. 한때 내가 섬에서 살았다고 하니 바로 한쪽 다리를 들어 바다에 넣을 수 있냐고 사람들은 물어보았다. 교육 때는 영어로 자기소개하면서 그곳이 고향이라고 하니 어떤 교육생은 내 고향이 영국에 있는 그 아일랜드인 줄 알았다고 한다.


타향살이하면서 매번 하는 후회는 '절대 내 고향을 이야기하지 말 것'이다. 이곳도 혈연, 지연으로 엮여있는 시골인지라 마을 이장, 동네 유지, 의원, 공무원들을 처음 만나면 대번 '집이 어디냐'는 것이다. 상대가 물어보는 건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아니라 고향이 어디고 아버지가 누구이고 하는 것이다. 그때마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집이라고 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순간 방심해 그 섬에 대해 말하고 만다. 열이면 열 내가 섬이 고향이라고 하면 상대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다. '섬 촌년 출세했네' 하는 표정이다. 매번 그런 일을 겪으면서도 이젠 즐기듯 섬이라고 할 때가 많다.


섬에서의 9년은 나비의 하루 날갯짓처럼 단 며칠의 기억으로 망각 속에 압축되어 있다. 대부분 그러듯 나의 이십 대 시절도 결코 편했다거나 행복했다고 볼 수는 없다. 완장 차고 풀 베는 인력 감독하고 산불 끄고 출장 다니고 매일 의미 없는 회의로 이어진 날들이었다. 다만 그때가 특별했던 건 지금은 사라져 버린 것들이 존재하던 시절인 데다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섬이 내 기억 속에 아직까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 시절의 애환이 지금은 사라진 추억의 물건들과 함께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타자기, 삐삐, 애니콜 전화기, 카세트테이프, 워크맨, 피시통신, 카폰, 자동차(르망, 프라이드, 엑셀), 작업 감독하던 완장 등 셀 수 없이 많다.


무엇보다도 나의 20대엔 윤상의 밤의 디스크쇼가 있었다. 밥벌이를 위해 나의 황금 같은 이십 대를 그렇게 반도 끝 섬에서 버텨야 했다. 매일 밤 윤상의 밤의 디스크쇼를 통해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목소리에 젖어 잠들곤 했고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이별의 그늘'을 듣곤 했다. 그러다 윤상을 이상적인 남성의 형상으로 보게 되었고 급기야 윤상이 진행하는 음악프로그램의 애청자로 전화통화까지 한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지금 와 윤상을 보면 아무런 느낌도 없는 데다 그때 왜 좋아했을까 내심 허무하다. 나중에는 윤상의 모든 레코드판과 커다란 전축까지 사들였다. 그 많은 나의 윤상 레코드판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기억조차 없다.


그 외에도 변진섭의 감미로운 발라드풍 노래를 위안 삼아 무료하고 단순하고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섬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그렇게 살아내는 게 참 힘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때의 나는 너무도 젊었고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더더욱 암울했다. 그 당시 한젬마라는 나와 동갑인 서울대 출신이 막 책을 펴내 그녀의 책을 사본 기억도 있다. 그 당시 그렇게 부담스러운 시간을 견디는 데는 어쨌든 윤상의 밤의 디스크쇼와 변진섭 노래가 다소 위안이 되었다


남들은 나이 들면 전원생활을 꿈꾸지만 , 한참 사람들 많고 북적북적한 데서 치열하게 살아야 할 20대에 유배하듯 반도 끝 섬에서 전설처럼 살았기에 아직도 도시생활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그렇게 도시생활에 대한 갈망을 내려놓고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생존을 위한 생존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건 그때나 지금이나 안정된 직장에 취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쉬움


매일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면서 앞으로 얼마나 수많은 시간을 여기서 보내야 하나 문득 지겹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당장 그 지겹고 무료하고 발전 없는 일을 때려치우고 새롭고 낯선 세상으로 뛰쳐나갈 그 어떤 용기조차 없었다.


그 당시 몇 년 일해서 번 돈으로 당장 외국으로 나가 외국에서 학교 다니며 직장을 다녔더라면 지금의 나의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까 생각을 종종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일을 실행할 용기도 능력도 없었거니와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낯선 세상에 대한 두려움 또한 컸었다. 그 자리를 박차고 새로운 세계로 뛰어들기 위해서는 그냥 뭘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아닌 그걸 뛰어넘는 더 강력한 에너지가 필요한 건 사실이다.


지금 와서는 가지 않은 세계에 대해 막연히 상상하는 낙으로 보내고 있다. 어쨌든 젊은 시절 단 몇 년이라도 외국생활을 해본다는 건 자신의 남은 인생에 상당히 유익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나마 작년 나이 오십에 한 달간의 미국 대학에서 연수를 받았던 게 나의 이번 생애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미국 연수일 것이다.


그 당시 철철 넘치게 한가하고 남는 시간에 많은 책들을 읽었으면 그나마 독서 소양이나 지적 역량은 더욱 확대되었을 텐데 그러하지도 못했다. 지금이야 온갖 베스트셀러를 비롯해 시간이 없고 읽기 싫어 안 읽는 것일 뿐 책의 홍수 속에 살고 있지만 그때 기억 속의 독서는 낡고 바랜 에세이집뿐이라는 것과 그 어떤 책도 나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하이텔이나 PC통신 천리안의 파란 화면을 통해 외부 세상을 확인할 뿐이었다. 9년간 영어공부를 했더라면 지금 보다 나았을 것인데 그 시간은 그렇게 이룬 것도 쌓아둔 것도 없이 지나가버렸다.


그렇게 시작해 직장에 들어온 지 이년 후면 삼십 년이다. 우연히 오래전 알고 지냈던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 사람들이 너무 변해 버렸다고 생각했다. 왜 저렇게 세월의 흔적이 보일까. 오랫동안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건 내 속에 다양한 마음의 내가 있었다. 나는 변하지 않은 거 같은데 상대에게서 그 무수히 스쳐한 세월의 흔적을 보았다는 건 나의 마음이 상대를 만났던 그 시절로 돌아가 지금의 상대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시간은 지역에 따라가는 속도가 틀리다고 한다.


우리는 보통 시간이 단순하게, 기본적으로 어디서든 동일하게, 세상 모든 사람의 무관심 속에 과거에서 미래로, 시계가 측정한 대로 똑같이 흐른다고 생각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주의 사건들이 과거와 현재, 미래의 순서대로 벌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과거는 정해졌고, 미래는 열려 있고……. 하지만 이 모두가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시간의 특징적인 양상들 하나하나가 우리의 시각이 만든 오류와 근사치들의 결과물이다. 앞서 언급한 지구가 평평해 보이는 것이나 태양의 회전이 그 예이다. 그러나 인간의 지식이 성장하면서 시간에 대한 개념은 서서히 베일을 벗게 되었다. 우리가 ‘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구조들, 즉 층들이 복잡하게 모인 것이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카를로 로벨리, P.10~11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의 역사>에서 시간은 높은 지역과 낮은 지대가 똑같지 않다고 한다. 높은 지역은 낮은 지역에 비해 시간이 빨리 지나가고 낮은 지역은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한다. 그렇다면 빨리 늙는 사람은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쪽의 높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다. 나는 20대 시절을 우리나라의 최 남단 반도 끝자락 섬에서 보냈기에 그 시간이 참으로 느리게 갔을 것이라는 재미난 추측을 해보았다.시간에 대해서도 우리는 흐른다고 생각했지만 결코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기억이 시간의 흐름을 좇아 28년 전 직장에 입사한 까마득한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시간의 흐름보다는 기억의 어떤 층들이 복잡하게 모인 것으로 나의 기억 속에선 압축된 단 며칠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 섬에서 나의 생활은 냉동된 채 느리게 가는 시간 속에 내 던져졌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그녀가 엘리베이터에 타면 불편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